밀어붙이다 넘어진 YS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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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기차게 공격하는 인파이터와 노련한 아웃 복서의 싸움. 거세게 몰아붙이던 김영삼 민자당 총재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불의의 카운터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노대통령은 민자당을 탈당함으로써 김총재로부터 정국 주도권을 되찾았고, 두 사람 사이의 힘겨루기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김총재 측근들은 노대통령의 탈당을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대통령의 탈당은 두 권력자간 갈등의 산물이며 김총재의 정치 행태로부터 비롯된 결과다. 김총재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마다 특유의 뱃심과‘여론 몰이’로 과감한 승부수를 던져 국면의 전환시키곤 했다. 그는 3당 합당 이후 내각제 각서 누출 사건 때는 예정된 청와대 회동을 거부하고 마산행을 결행해 결국 노대통령의 양보를 받아냈다. 지난 3월 총선 참패에 대한 반대 정파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대통령과 가진 담판을 통해 후보 선출 대회를 5월에 열기로 확정짓고, 이어 기습적으로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해 총선 참패 책임논쟁을 실종시키고 국면을 경선정국으로 전환시켰다.

 지난 8월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노대통령과의 힘겨루기에서 그는 야당의 공세와 여론에 힘입어 “본때 있게” 노대통령을 꺾고 선경으로의 낙찰을 백지화시켰다. 이어 김총재는 연기군 부정 선거 파문을 수습하기 위한 기자회견에서 “대담한 개각을 하겠다”고 말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훼손하는 선까지 나가버렸다. 이에 대해 한 청와대 비서관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황당한 발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대통령의 탈당은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공정하게 운영하겠다는 그의 의지도 의지지만,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축적된 김총재와의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김총재, 요직에 자기 사람 앉히기 힘들 듯

 여권의 한 소식통은 “김총재는 지금 3단 기어를 넣고 시속 1백80㎞를 밟고 있다. 그는 그의 장기인 밀어붙이기를 부추기는 측근들에 둘러싸여 있다. 합리적이고 사려깊은 참모는 이미 실세가 아니다”라고 말해 노대통령의 탈당이 김총재가 놓은 자충수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다른 관측통은 “김총재가 선거를 앞두고 있다지만 대통령 책임제인 우리나라에서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며, 노대통령이 물태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앞으로 있을 개각에서도 김총재가 안기부장과 내무부장관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3당 대표들은 노대통령을 ‘잘 모시기 경쟁’에 들어갔고, 노대통령은 ‘공정선거’를 천명한 마당에 좀더 강화되고 공정한 입장에 서서 인사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총재는 노대통령 탈당의 충격으로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이다. 우선 그는 가벼운 몸놀림을 위해 감량을 감수해야 한다. 동요하는 비주류 의원들을 다독거리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는 한편, 능력과 충성도 위주로 당직자를 인선해 효율적인 체제로 선거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 결속에 신경을 쓰다가는 이도 저도 안된다는 판단인 것이다. 그 다음 그는 야당 못지않은 과감한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해 자신의 이미지 제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총재에게는 이때가 자질론에 대한 일반의 의구심을 불식하고 정치력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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