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기호로 표현한 소외의 아픔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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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열음문학상 당선작



具炳天씨의 《포유강 사람속》
 《포유강 사람속》은 기호놀이의 즐거움을 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주민등록번호가 620366-1894710인 남자와 620928-2486451, 651209-2947730인 두 여자이다. 주인공이 주민등록번호로 표시된 것은 모든 가치를 기호로 환원하겠다는 선언이다. 실제로 사람이름이나 인칭, 화자가 일절 제시되지 않고 주민등록번호로 기호화한 인물이 시종일관 행위의 주체로 서술된다. 내용은 참사랑을 잃은 남자가 광고 기호에 의해 지배되는 도시를 떠돌다 마침내 주민등록증을 분실하면서 존재가 소멸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행위의 묘사는 거의 모두 광고카피와 수치로 이루어진다. 광고와 수치의 더미 속에서 주인공들의 인격은 완전히 무시된 채 끝없이 이어지는 환시(幻視)만이 이 소설의 두드러진 이미지로 남는다.

 《포유강 사람속》은 신세대 작가의 작품 가운데서도 매우 극단적인 소설이다. 기호화의 방식이 그렇거니와 주인공이 보여주는 내부분열은 '소설의 파괴'까지 연상시킨다. 주민등록번호 620366-1894710인 남자는 최소한의 존재인식마저 없다. 철저한 방기뿐이다. 작가 具炳天씨(29)는 이 작품의 주제를 '무기력'으로 요약한다.

 神마저도 설계되고 광고되는 그 무엇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믿는 63세대의 비극을 '경험해보지도 못한 휴머니즘을 찾는 일'이라고 여기는 그는 이 소설의 엄청난 일탈을 오히려 휴머니즘에 대한 집착이라고 설명한다.

 "후기 산업사회의 철저히 소외된 인간을 그림으로써 역으로 소외의 아픔을 부각시키고 싶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소설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절규하는 장면은 작가의 그같은 소망의 편린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동거녀의 간통을 확인한 주인공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었던 동사무소로 다시 찾아와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를 제출하는 내면은 "싫어! 다시 컴퓨터에 갇히기는 싫어, 내 몸에도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구! 최초엔 나도 하나의 의미였어. 기호로 돌아가긴 싫어! "와 같은 몸부림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포유강 사람속》의 극단성은 평단까지 극단으로 나누어놓는다. 정보화사회 또는 후기 산업사회의 광고언어를 앞세우는 젊은 세대의 첫 출현이라는 환영과 새로움을 앞세운 사이비 문학이라는 질타가 동시에 튀어나오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에 대한 우발적이고 거친 섹스 묘사는 너무 노골적이고 천박하다는 지적이다.

 구병천씨는 이같은 평을 주의깊게 들으며 "주인공 남녀가 동거를 시작한 것으로 설정되어있는 소설의 말미가 간통소설로 떨어져 버린 점은 인정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광고언어를 앞세우는 소설이 性을 다루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조심스레 내놓는다.

 스물다섯살에 대학에 처음 입학하여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반인 구씨는 1천만원이라는 상금과 함께 주어진 '흥청거림'이 곧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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