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 김훈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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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방 협진제도


최근 입법예고된 의료법개정안은 양의사와 한의사의 진료영역을 합치는 종합진료제도를 설정하고 있다. 국민의료의 앞날에 큰 변화를 몰고올 이 제도를 놓고 의료계에서는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양방 협진제도
姜錫均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장. 원광대학교 한의대 교수 역임. 찬

강석균 “한·양방 협진에 대한 수요와 신뢰 높다”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는 작년 5월말 설치된 이래, 한·양방 협진을 시험해온 의료기관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진료결과를 근거로 헙진제도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1만2천여명의 환자를 한·양방 협진체제로 진료해왔다. 절반 정도는 입원환자였다. 물론 환자의 수가 의료의 성공이나 질의 수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양방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의 수요와 신뢰가 높다는 사실은 입증된 셈이다.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를 찾는 환자 중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이같은 의료수요가 매우 절박한 고통에 근거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국민의 의료수요가 집중되는 곳에, 거기에 대처할만한 새로운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양방 사이에서 국민이 겪는 혼란을 어느 정도라도 진정시켜나가야 한다.

한·양방은 인간관과 우주관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유체계인데, 이것을 임상에서 서로 뒤섞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지구상에서 국민의료가 한·양방으로 이분화되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거기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협진제도는 한의학과 양의학의 기초를 통합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독자성과 고유성을 인정하면서 의료현장에서 양쪽의 장점을 모두 흡수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방진료부를 운영하면서 한·양방 사이에서 어떤 문제들이 도출되었는가.

 우선 한의사는 양의사들이 사용하는 최첨단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하는 경우에는 의료법 위반이 된다. 그래서 한의사는 환자를 진단하기 위해 간단한 기구를 사용해야 할 경우에도 양의사들에게 부탁하고, 그 결과를 3~4일 후에야 통고받는다. 그러나 이나마도 국립의료원이니까 할 수 있었다. 일반 한의사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당뇨환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당뇨를 진단하려면 한의학적인 진단만으로는 미흡하다. 혈당량의 수치를 알아야만 병세의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의사는 혈당량 측정기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비싼 돈을 들여 문명의 이기를 구입해놓고도 그것을 환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한의사가 외과 내과 산부인과처럼 전문과목을 표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것인데, 이는 한의학의 기본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또 그렇게 성급히 분화된 전문과목 의사들이 과연 국민의 의료수요에 부응하는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한의사는 한명의 의사로서 인간의 모든 질환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의사이다. 말하자면 한명의 한의사는 하나의 종합병원이어야 옳다. 그러나 그러한 한의학의 포괄적이고도 종합적인 원리가 개별적 진료과목에 대한 전문성과 충돌되는 것은 아니다. 병에 대한 포괄적 이해 위에서 전문성을 표방하는 것은 한의학의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다. 또 이 법률개정안이 의료의 현실에 적용되려면 앞으로 4~5년 걸릴 것이고, 그동안 한의과대 졸업생들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수련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로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는 한방 전문과목 제도를 채택했는가?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한방과 안에 '제1진료실' '제2진료실'을 설치했다. 이 진료실이 사실상 전문과목인 셈이다. 이 '진료실'은 양방 쪽의 전문과목 의사들과 임상경험 및 지식을 교환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제도에 반대하는 한의사들도 있다. 모든 과목을 다 진료하는 개업의 쪽에서는 당연히 반대할 수 있다. 이같은 제도가 채택되면 개업의의 수입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제도를 개정해야 하는 마당에 특정 의사들의 수입을 걱정할 수는 없다.

양방의료가 압도적인 현실에 비추어 이같은 제도는 결국 한방이 양방에 흡수돼 설 자리를 점차 잃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한의사들의 피해의식이 이 문제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이 제도는 언젠가 실현되어야 할 제도의 첫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자는 것이다.

 

반 朴贊國 경희대학교 한의대 교수. 한의학 박사.

박찬국 “국민 전체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일이다”

이 제도가 한·양방 의학과 의료를 근본에서부터 포함해 의료를 일원화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정책입안자들은 설명하는데….

 제도가 시행되어감에 따라 일원화 추세를 보이게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실생활을 놓고 생각해봐야 한다. 양의사가 한방처방을 하고 한의사가 양방진료를 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실상 일원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원화' 정책이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왔음으로 우선 '협진'이라는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이해한다.

협진제도가 도입되면 아픈 사람들이 한·양방 양쪽을 다 기웃거려야하는 혼란과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을 혼란이라고만 보지 말고, 치료를 위한 선택의 가능성으로 보아야 한다. 더 큰 문제, 더 고질적인 혼란은 양의사와 한의사가 서로를 비방·경멸하는 데 있다. 서로를 부정하고 헐뜯기 때문에 국민의 병은 더 깊어지고, 아픈 사람들의 혼란은 더 커진다. 협진제도는 국민의 아픈 입장을 보살피려는 취지가 아니라 의료보건행정을 맡은 행정가들의 편의를 위해서 추진되고 있다는 인상을 버릴 수 없다.

현업에 종사하는 양의사와 한의사를 보수교육해 서로 타방의 진료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인데….

 50~60세가 넘은 의사들을 데려다가 몇주 기초교육을 한 후 한의사에게 양방을, 의사에게 한방을 허용한다는 것은 治病하는 자의 양심으로 용납할 수 없다. 국민의 생명을 이처럼 다루어도 되는가. 그것은 일부 의사들의 수입을 늘려주는 데 기여할 뿐이다.

한의학을 완성한 중국에서도 의사들이 한·양방을 겸해 환자를 보고 있다.

 중국과 우리는 의료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 중국은 1860년대에 서양의술을 도입하고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한의학을 근본으로 삼고, 여기에 서양의술의 편리한 점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양방을 수용했다. 中體西用 정책이라는 것이다. 지금 중국의 모든 의사는 한·양방을 다 보고 있지만 한방만을 전문으로 하는 中醫師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때 서양의료를 도입하면서 중국과는 반대로 양방이 한방을 말살하고 추방하는 쪽으로 정책이 추진되었고, 거기에 따라 의료의 제도와 관행이 고착됐다. 이런 현실을 법조문 두어줄 개정함으로써 인위적으로 바꾸려 한다면 더욱 큰 혼란과 후퇴를 초래할 것이다.

의료체계가 한·양방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국민의료를 위해 불행한 일이 아닌가.

 한 · 양방을 일원화한다 해도 아픈 사람들의 임상현장을 먼저 일원화해서는 안된다. 기초교육이나 연구분야에서 한·양방의 공조체제, 공동연구체제가 선행돼야 한다. 서로의 기초를 긍정하고 다른 점을 공부해야 한다. 이것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임상현장만을 합치는 것은 醫者의 할일이 못된다. 중국 같은 모델을 지향한다 해도 30년 이상의 세월을 연구하고 시험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국민 전체의 건강을 시험대상으로 삼지 말라. 한·양방 따로따로인 제도는 국민의료를 위해 극히 불행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설정된 장벽을 또다시 인위적으로 일시에 제거하려 든다면 더 큰 장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한방의 의보 참여는 극히 저조하다. 협진제도가 도입되면 한방의 의보 참여를 높혀 국민건강에 기어할 몫이 더 커지지 않겠는가.

 한방이 의료보험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보제도 자체의 문제 때문이다. 한방의 수만가지 처방 중에서 의보에 참여할 수 있는 처방은 빈도가 높고 규격화가 가능한 수십종뿐이다. 한방은 개개인에 따라 같은 병이라 할지라도 처방이 다르다. 또 같은 병이라 할지라도 의사에 따라 처방이 다르다. 그 처방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 관계는 전적으로 정당하다. 양의사들은 이것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병에는 무슨 약을 써라, 그 약에는 이러이러한 약재를 섞어라, 그 값은 얼마이다 하는 것은 한의학이 아니다. 한·양방 협진제도로 한방의 의보 참여가 높아진다면, 그것은 한방 의료의 질적 타락을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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