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바쁜 ‘무관의 실세들’
  • 김재일 부장대우 ()
  • 승인 199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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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김덕룡 · 서석재씨 ‘잠행’ 언제 끝날지 관심

김윤환 · 김덕룡 의원과 서석재 전의원.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현재 그들은 그럴듯한 감투를 쓰고 있지 않다. 김윤환 의원의 경우 한 · 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긴 하나 그 직책은 명예직이지 정치적 힘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다. 김덕룡 의원은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정무장관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그 직을 물러난 지 6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서석재씨는 지난해 1월 89년 동해 보궐선거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로 의원 직을 잃은 상태다.

 이들 세 사람은 잠행하다시피 몸을 낮추고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의 사람들은 그들의 동정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인다. 김윤환 의원은 여권에서 그가 갖는 정치적 비중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김덕룡 의원과 서 전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라는 이유 때문에 항상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현재 힘을 쓸 만한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전면에 나설 ‘잠재적 실세’인 셈이다.

 원래 김윤환 의원은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상무대 국정조사와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는 판에 오해를 살까 봐 나가지 않았다. 지난 4~5월 현역 정치인을 증인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치해 국정조사가 실종될 뻔했을 때, 그는 청와대측에 자기가 증인으로 나갈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잘못이 없더라도 증인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데 그런 위험부담을 질 각오까지 한 이유는, 마치 뭔가 켕기는 것이 있어서 증인으로 나서기를 꺼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반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김윤환 의원 · 서석재씨, 상무대 사건 부담
 지난달 중순께 김대통령이 김재순 전 국회의장과 회동할 당시 정치권에는 조기 당개편설이 나돌았다. 그때 김종필체제 청산과 함께 허주(김의원의 아호) 대표설이 대두됐다. 난마와 같이 얽힌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으로 당 지도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 일각에서 제기됐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들어 김의원과 김종필 대표는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서로 ‘가상의 적’이 된 셈이다. 그들은 대선 과정과 선거 승리 후에는 공조했으나 곧 처지가 달라졌다. 지난해 사정 정국을 거치면서 김의원은 자연스럽게 민정계의 구심점이 됐고, 이에 따라 두 사람은 계속 잠재적 대립관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김대표는 한때 국정조사 증인 채택 범위와 관련해 애매한 태도를 보여 김의원측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의원은 6월로 예정된 국회직 개편 때 자신의 희망과는 상관 없이 국회의장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그는 의원들과 만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오직 지역구 행사 참여에만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금 국정 운영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상무대 사건과 관련한 또 한 사람의 피해자는 서석재 전 의원이다. 그는 지난 연말 사면과 더불어 9개월 간의 일본 체류를 마치고 3월 귀국했다. 서씨는 일찌감치 다음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지목되었고 재기 행로는 순조로운 듯이 보였다. 그러나 상무대 사건이라는 난데없는 복병을 만났다. 그는 요즘 심기가 그리 편치 않은 모습이다. 5월 중순부터는 기자들의 자택 출입을 금했을 뿐 아니라 관훈동 사무실에도 잠깐 들렀다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에서도 상무대 사건과 관련한 그의 결백을 증언하고 있으나, 이름이 거론됐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지역구 관리에 열중이다. 그의 지역구였던 부산 사하구는 현재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종웅 의원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서씨가 그 지역을 열성적으로 관리하는 이유는 현재 인구 50만을 넘어선 사하구가 분구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부산 지역에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인기는 현역 정치인 중 단연 수위를 달린다.

 그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재기할까. 청와대측도 아무런 직책은 맡지 않고 있는 서씨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문제는 서씨의 정치적 비중을 감안할 때 그가 맡을 만한 자리가 극히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측은 신문 가십을 통해 서씨를 월드컵유치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할 가능성을 흘렸으나 서씨측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천신만고 끝의 정계 복귀가 그런 모양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 서씨측의 기본 인식이다. 그의 잠재적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관계는 최근 들어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씨에 대한 배려로 권력 핵심부가 부총리급 자리를 물색중이라는 소문도 있다. 서씨의 한 측근은 서씨가 보수 성향과 원만한 성격, 그리고 민정계하고도 친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원직을 갖게 될 경우 상당한 인적 자원이 몰릴 것으로 장담한다.

김덕룡 의원 조기 복귀 가능성
 김덕룡 의원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전처럼 신중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그는 5월23일 독일 ·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귀국행 비행기편을 돌연 바꿔 2시간여를 앞당겨 들어왔을 정도다. 언론과 주위의 눈길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조심스런 겉모습과 달리 김의원의 실제 행보는 매우 빠르다. 그는 외유에 나서기 전부터 김대통령과 자주 독대해 국정 운영을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외유에서 돌아온 후 최형우 내무부장관과 만났다. 김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의 관계도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대통령이 서청원 정무장관과 식사하던 중 조계사 사태에 대한 미흡한 대처와 관련해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을 질책했다는 말이 나오면서 김의원이 다음 문체부장관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김의원은 최근 자원재활용운동 등 지역구관리에 참신한 방법을 도입했을 뿐 아니라 지난 4월 기존의 서초문화원을 확대 개편해 서울사회교육문화진흥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올해 서초구의 국 · 중 · 고 · 대학생 1백50여 명에게 학비 전액을 지급하고,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급식을 제공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3개월간 서울과 지방 대학의 특강 요청에 응해 30여 차례 ‘개혁과 국가 경쟁력 강화의 상관 관계’에 대해 소신을 피력해 왔다.

 김의원은 자신의 정치 목표를 어디로 잡을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측근 중에는 그가 서울시장으로 목표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울시장 선거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리는 사람도 있다. 그는 지난 3월 영국을 방문했을 때 지자제에 큰 관심을 보였고, 2차 외유에 나서면서 비서진에게 서울시 지방자치에 관한 문제를 연구과제로 주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김의원측은 “서울시장 공천은 전적으로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지 가타부타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최근 정황과 여권 분위기로 볼 때 연말이나 연초 쯤으로 보였던 그의 일선 복귀는 앞당겨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중동인 김윤환 · 김덕룡 의원과 서석재씨의 ‘떠오름’은 정국 상황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그들의 거취는 계속해서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이다.
金在日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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