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달리는 무공해 자동차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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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술 선진국 수준에 근접…실용화는 정부 정책 의지에 달려



 경기도 용인에서 차로 30분 정도 더 들어가면 현대자동차 마북리연구소가 나타난다. 주로 차량 엔진 개발을 담당하는 이 연구소는 현대그룹 계열사 연구소들과 함께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특이하게 생긴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차의 전면을 덮개로 덮은 차도 있고, 어떤 차들은 아예 차체의 일부가 잘려 있기도 하다.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이런 차들은 대개 시험 제작해 실험중인 자동차들이다. 이런 차들 가운데는 가솔린이나 디젤유 대신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무공해 · 저공해 차들도 많다.

 전세계 유명 자동차 업체들이 25년 이상 개발에 매달려온 이런 차들을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한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만들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채 안된다. 그렇다면 공해가 적거나 아예 없는 차를 마들려는 경쟁에서 한국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미국 크라이슬러사에서 엔진을 개발하다 마북리연구소 소장이 된 李大雲 상무는 “국내에서 막 제작하기 시작한 무공해 · 저공해 자동차들이 세계적인 차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는다”라고 자신했다. 구미 자동차 생산국에 비해 백년 가까이 뒤진 역사를 뒤집으려는 한국이 ‘미래의 차’를 향한 경쟁에서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대 자동차는 무공해 자동차인 전기 자동차를 7호까지 만들어냈다. 저공해 자동차인 알코올 자동차는 수출도 한다.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89년 업계 최초로 프라이드, 세피아 그리고 베스타 전기자동차를 개발했던 기아자동차는 93년 대전 엑스포 행사장에 이를 선보인 적이 있다. 알코올 자동차와 압축천연가스(CNG)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 회사가 만든 태양열 자동차는 지난해 11월 호주 애들레이드 시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태양열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대우자동차도 93년에 압축천연가스 자동차와 전기 자동차를 선보였다. 승용차 사업에 진출하려는 삼성 중공업도 지난 5월 자체 제작한 전기 자동차를 뽐낸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 ‘대기정화법’에 세계가 비상
 무공해 · 저공해 자동차 개발 문제가 다시 정부와 자동차업계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들 간의 무공해 · 저공해 자동차 개발 경쟁에 불을 붙였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 당국이 최근 이미 도입하기로 했던 배기가스 관련 규제를 재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스모그 현상으로 유명한 이 주는 지난 90년 저공해 자동차 도입뿐만 아니라 무공해 차량 판매를 의무화한 대기정화법(Clean Air Act)을 채택해 자동차업계에 충격을 주었었다. 현재 미국 뉴욕 주와 매사추세츠 주가 이미 이 법을 도입했고, 동부 10개 주와 워싱턴 D.C.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법을 채택한 캘리포니아 주 대기자원국은 5월 중순 이 법의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2년마다 한번씩 열리게 돼 있는데, 한국 자동차업계를 포함한 세계 자동차업계는 92년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 주가 엄격한 규정을 완화해 주기를 고대해 왔다(미 연방법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의 법안을 채택한 주들은 앞으로 캘리포니아 주가 결정한 사항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

 이 법안을 도입할 때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전기 자동차 개발에서 일본에 앞서 있다는 점을 의식했다. 이 때문에 ‘98년까지 시판 자동차의 2%를 무공해 차로 하고, 2003년까지 이 비율을 5%로 높인다’는 대기정화법 규정은 일본 자동차업체들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미국의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전기 자동차 상용화가 늦어지면서 미 · 일간 기술 격차가 좁혀졌고, 전기 자동차 성능 개량에 막대한 자금이 들자 마침 불황을 맞고 있던 미국의 자동차업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무공해차 도입 시기와 비율을 더 낮춰달라고 계속 로비해 왔다. 93년말 대기정화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쟈넨느 샤플스가 사임한 것도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미국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국내 업계는 사태가 이렇게 진전하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대기자원국의 회의 결과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회의 결과는 국내에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초 예상과 달리 관련 규정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렇다면 전기 자동차를 비롯한 무공해 · 저공해 차량 실용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만 하는 처지다.

전기 자동차 최고시속 1백40km
 현재 차세대 자동차로 가장 유력해 보이는 전기 자동차에 관한 국내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전기 자동차 관련 기술은 각 자동차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해 오기도 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국가선도개발사업인 G7 과제의 하나로 선정, 추진돼 왔다. 이에 따라 각사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국내에서 개발한 전기 자동차는 최고시속 1백40km에 1회 충전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가 2백50km에 이르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고시속 1백50km 이상으로 1회 충전시 4백km를 달릴 수 있어야 실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李□一 기아자동차 기술연구소장은 “선진국들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주행 성능을 높이지 못하고 있어 이를 따라잡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라고 내다보았다.

 주행 성능을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문제가 또 있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과 충전소 설치 문제가 대표적인 것이다. 전기 자동차 제조원가는 현재 추산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편인데다가 전기를 충전해줄 장소가 설치돼야 한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당사자가 정부밖에 없으므로, 전기 자동차가 국내에 언제 보급되느냐 하는 문제는 정부의 정책 의지에 달렸다고 본다. 최근 상공부는 앞으로 공공기관 차량을 전기 자동차로 대체하고 전기 자동차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모든 정부 부처가 이 조처를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압축천연가스 차량의 제조원가가 싼데도 널리 보급되지 않는 것도 정부의 정책 의지와 관련이 깊다. 현재 공공기관 차량이나 영업용, 장애인용으로 그 용도가 한정돼 있는 액체천연가스(LNG) 차량과 마찬가지로 압축천연가스 차량은 배기가스 공해가 적을 뿐만 아니라 제조원가도 싸다. 그런데 정부가 막대한 자동차 관련 세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자동차를 널리 보급하려 들지는 않는다.

 알코올 자동차는 에탄올과 메탄올 자동차로 나뉘는데, 공해는 적지만 연료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현대자동차는 에탄올 자동차를 92년부터 해마다 천대 이상 브라질에 수출해 왔는데, 브라질은 풍부한 사탕수수 덕분에 에탄올을 대체 연료로 쓸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태양열 자동차와 수소 자동차는 국내에서 가장 기술이 뒤떨어져 있는 분야이다. 환경과 관련해 가장 이상적인 자동차들이기는 하지만 상품화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국내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태양열 자동차 관련 기술이 가장 앞선 일본 업체들도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다. 지난해 호주 애들레이드 경주에서 우승한 일본 혼다사도 태양열자동차 자체가 실용화되기보다는, 태양열을 활용하는 일부 기능이 기존의 가솔린 자동차나 전기 자동차에 활용될 것으로 판단한다.

태양열 자동차, 햇볕만으로 에너지 부족
 태양열 자동차의 가장 큰 결점은 출력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점이다. 현재 기술로는 일조량이 부족하거나 언덕을 오를 때, 필요한 에너지를 단지 해로부터만 확보하기는 힘들다. 수소 자동차도 역시 연료가 가진 폭발성 때문에 안전성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

 각 대체 연료 차량들이 이처럼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혼합 연료(하이브리드) 차량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될 것으로 점친다. 예를 들어 도심에서는 무공해 연료인 전기로 동력을 얻다가 교외로 나가면서 가솔린을 동력원으로 활용 할 수도 있다. 현재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다양한 조합의 혼합 연료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것들 역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실용화 시기가 결정될 전망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국내 자동차업체들에게 미래 자동차를 향한 경쟁을 부추기거나 위축시키는 것은 단지 자동차 수입대국인 미국의 법안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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