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2한국전쟁, 이윤 없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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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特需’와는 반대 상황 전개 예상… 대북 경제제재에 소극적



 일본내 조총련계의 한 기업은 지난해 3월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자 하루아침에 수천만엔에 이르는 손해를 입었다. 이 해 6월 일본 정부가 조총련계를 포함한 모든 외국인의 북한 입국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북한에 기술자를 파견해 현지 공장에 기술을 전수해주고 생산을 감독해 왔으나, 불가능하게 돼 버렸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북한에서 독자적으로 생산한 제품을 수입했는데, 도저히 그냥 팔기가 힘들어 따로 봉재와 마무리 작업을 해야만 했다.

 국제 사회는 이런 전례를 떠올리면 일본이 경제제재에 참여할 경우 그 파괴력이 가공할 수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중국이 북한에 주로 에너지와 식량을 제공한다면, 일본은 북한에 돈과 기술을 대고 있다. 북한 처지에서 일본은 서방을 향해 열린 창이자, 미래인 셈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곧 그나마 북한이 벌어들이였던 경화나 서방 세계의 기술도입이 완전히 끊기는 것을 뜻한다.

제재 땐 조총련 송금 우선 동결
 현재 일 · 북한의 경제 관계는 이른바 ‘朝朝 합영과 위탁가공 사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일본의 조총련 상공인들과 북한 간의 이런 협력 사업은 1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특히 의류 분야의 합영사업이 두드러진 편이다. 조총련 합영사업추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92년말 현재까지 조조 협력 사업은 계약 건수 1백20건에, 투자액 1억달러에 이른다.

 도쿄에 있는 조총련계 조선대학교의 강일천 교수는 조총련계 신문인 <조신시보>에 기고한 ‘조선 노동당의 신경제전략을 읽는다’라는 글에서 ‘합영사업이야말로 현재 북한의 경제 실정에 꼭 들어맞는 경제 협력 형태이고… 현 시점에서 북한 대외경제의 주역’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다. 일단 일본이 경제제재에 본격 참여할 경우 합영사업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금수 조처를 취할 경우에도 북한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예상된다. 현재 일본은 북한의 3대 교역국이다. 대북 교역의 90% 정도가 일본내 조총련계 상공인에 의한 조조무역이기는 하지만, 무역 거래가 중단될 경우 약 5억달러에 이르는 교역이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경제제재 효과가 좀더 직접적으로 나타날 분야는 조총련의 송금일 것이다. 한 · 미 · 일 3국이 주축이 돼 마련하는 구체적인 경제제재 시나리오의 핵심이 바로 북한 송금 차단인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의 대북 송금액이 얼마나 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조총련의 실세로 알려진 허종만 책임 부의장은 최근 일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송금 자체를 전면 부인했다. “(조총련계 기업들은) 탈세라도 하면 곧 망한다. (일본 국세 당국은) 우리가 젓가락을 몇개 사용하는지까지도 안다. 돈이 있으면 보내고 싶다. 오히려 본국에서 매년 4백만달러의 교육 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오고 있다.”

 그러나 서방 정보기관들은 송금액이 해마다 6억~12억달러 정도라고 추산한다. 2백5억달러(93년)에 불과한 북한의 국민총생산을 감안하면 이 송금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돈이 대외 결제에 필요한 경화라는 점이다.

 송금은 일본 금융기관과 북한의 외환 창구인 조선합영은행 간에도 이뤄지지만, 주로 북한을 방문하는 교포들이 직접 갖고 가거나 홍콩 스위스를 비롯한 제3국 은행을 통해 빠져나간다. 실질적으로 송금을 차단할 수 있느냐가 논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제재, 정부는 찬성 관료는 반대
 정작 문제는 일본 정부가 경제제재로 북한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고 싶어하느냐 하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 조처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줄곧 밝혀왔으나, 일본 관리들은 비공식적으로 제재 조처에 반대하는 형편이다. 우선 하타 총리는 북한에 대해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오랫동안 북한과 강한 유대관계를 맺어온 사회당이 이 달 말로 예상되는 내각 불신임 결의안 투표에서 결정권을 쥐고 있어 입지가 불안하다. 일 · 북한 외교정상화 교섭을 주도했던 자민당과 사회당은 북한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6월 중에 주요 인사들을 북한에 파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일본은, 북한이 경제제재는 곧 전쟁이라고 선언한 마당에 북한을 자극하는 것에 대해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비공식적인’ 심리에 좋은 빌미가 되는 것이 이른바 ‘평화헌법’이다. 6월3일 가키자와 고지(?澤弘治) 일본 외무장관은 “일본은 일본의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북한에 압력을 가하려는 국제적인 노력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헌법 테두리 안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 논란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적인 민간 연구소인 노무라연구소를 5월1일자로 펴낸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시아의 안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경제제재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법 개정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관리들은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테러 활동을 벌이는 것이 두려워 경제제재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경제제재 부작용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일본이 지게 되는 부담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과 각종 민간 연구기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제2의 한국전쟁 시나리오는 일본에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일본의 한 민간 연구기관이 밝히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전쟁이 터지면, 일단 한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을 구출하는 문제가 생긴다. 현재 한국에는 기업 주재원과 그 가족을 포함해 6천4백명 가량이 체류하고 있으며, 전쟁을 전후한 여행자 수는 약 2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된다고 해도 한국 여행에 대해 자숙을 권고하거나 금지 조처를 취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이 전쟁에 자동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 주둔한 미군부대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북한이 선제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현재 일본에는 오키나와 · 미자와 · 이와쿠니 공군기지에 F16 · F15 · FA18 · 수직이착륙기 등 1백40여 대가 주둔중이며, 요코스카 항과 사세보 항에 항공모함과 기습상륙함이 상주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 본토를 전투 기지로 이용하고자 할 때는 미 · 일 상호안보조약에 따라 일본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이것이 늦어지면, 그동안의 전쟁 피해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일본으로 몰려들 엄청난 전쟁 난민들도 큰 부담이다. 만일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6 · 25 당시 일본 경제가 큰 덕을 봤던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이 일본 정 · 재계의 판단이다.
金芳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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