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883년 겨울
  • 글 · 사진 보스턴 · 김승웅 특파원 ()
  • 승인 199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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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아테네움 도서관 소장 사진 최초 입수 · 공개



 서울의 1883년 겨울 모습이 미국 보스턴 시 아테네움 도서관에 숨겨져 있다. 66장의 사진에 담긴 채 긴긴 잠을 자던 개화기 한양 모습이 《시사저널》취재 촉각에 잡혀 만 1백11년 만에 옛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을 찍은 주인공은 하버드 대학을 갓 졸업한 천문학도 퍼시벌 로웰(1855~1916)이다. 당시 일본 풍습과 언어를 익히기 위해 도쿄에 있던 그는, 수교차 미국으로 떠나던 초대 조선공사 일행의 안내역을 맡아 미국에 동행한 뒤 다시 고종의 손님 자격으로 한양에 초청받는 특혜를 누리게 된다.

 퍼시벌 로웰은 1883년 크리스마스 직전부터 다음해 3월까지 서울에 머무른다. 66장의 사진은 이석달 간의 체류 기록이다. 로웰은 이들 사진과 별도로 《조선-조용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lam)》라는 책을 쓰고 사진 66장 가운데 20장을 골라 이 책에 소개했다.

 책의 사료적 가치는 크지 않지만 그가 직접 찍은 사진 66장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개화기의 국사학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아테네움 도서관 부관장 노먼 터커씨의 주석에 따르면, 이 사진들을 입수한 때는 40여 년 전인 53년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한 고서 중개상으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것으로 돼 있다.

 이 사진들이 《시사재널》취재망에 잡힌 경위는 이렇다. 해외후원회 결성을 위해 워싱턴 D.C.를 방문한 민주당 李富榮 최고 위원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스턴에 들러 안종구 보스턴총영사(현재 나이지리아 대사)로부터 현지 정세를 청취하다가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온 아테네움 도서관의 ‘보물’ 얘기를 들었다. 기자 출신인 이최고위원은 보스턴 공항에서 워싱턴 D.C.에 있는 《시사저널》특파원 사무실에 정거리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귀뜸하고 귀국했다.

 책의 서문에 명시돼 있듯, 1883년 한겨울에 찍은 사진들이라서 장면 하나하나가 춥고,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런 한기와 외풍을 계절 탓으로만 돌릴 수 없음은, 로웰이 머물렀던 1883년 연말~1884년 3월을 되새겨 보면 한결 자명해진다.

 그 시대 자체가 한랭권에 들어서 있었다. 개화와 쇄국, 보수와 혁신, 친일과 친청으로 양분돼 있던 시대였다는 점에서, 그로부터 백여 년이 흐른 지금의 세태를 그대로 예고하고 있다. 이 시기는 특히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김홍집이 주일 청국탐사관 黃遵憲이 쓴 《조선책략》을 얻어와 소개한 직후로, ‘러시아의 남하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은 중국과 친하고(親淸), 일본과 결속하며(結日), 미국과 연합(聯美) 해야 한다’는 동북아 세력 균형론이 처음 고개를 든 시기였다,

 그 때 그 시절의 논리가 지금 북한 핵을 빙자해  미 · 러  · 중 · 일 간의 견제와 대립으로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유사한 시대적 상황이 지금의 서울과 사진사이에 놓인 1백11년의 벽을 가볍게 허물고 만다. 한복을 입고 웃을 줄 모르는 사진 속의 얼굴 하나하나가 바로 ‘우리’이고, 장면 하나하나가 바로 ‘우리집’이자 ‘이웃’임을 그제서야 알 수 있다. 그것은 흡사 출근길 대문에서 작별한 아내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쳤을때 느낄 법한 형언키 어려운 감정 바로 그것이다.
글 · 사진 보스턴 · 金勝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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