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주의가 자유무역 막을 수 없다”
  • 제네바ㆍ남유철 기자 ()
  • 승인 199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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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에글린 가트 사무국 환경 국장 인터뷰/“그린 라운드는 잘못된 개념”



 환경주의가 고조되면서 환경 보호를 구실로 보호무역주의적인 무역 규제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역 규제 조처를 명시한 국제 환경 협약은 현재 17개에 달하며, 이는 점차 늘어날 추세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그린 라운드’라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사사저널≫ 제236호 ‘그린 라운드는 오지 않는다’와 제241호 커버 스토리 참조). 환경주의와 자유 무역이라는 두 이상이 갈등과 충돌을 보이기 시작하다 가트(GATT) 사무국은 최근 환경과 무역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사해 왔다. 이 업무를 주도해 온 가트 사무국 리처드 에글린 환경 담당 국장을 제네바 가트 사무국에서 만났다. <편집자>

세계무역기구(WTO)에 무역환경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가트와 달리 세계무역기구는 환경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인가?
 창설 이래 90년대까지 가트는 단 한 번도 환경과 무역의 관계를 다루어 본 적이 없다. 지난 90년 12월 브뤼셀 각료회의에서 처음으로 환경과 무역의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 제의를 주도한 스웨덴ㆍ핀란드ㆍ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당시 유럽공동체 국가들의 환경보호 법안 때문에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환경 문제를 가트에서도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에 보호무역주의적인 동기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논의의 출발은 엄연히 무역 현안에서 출발했다. 가트 사무국은 이 문제를 가트 체제에 수용하기 위해 개도국들과 1년여에 걸친 고된 협상을 해야만 했다. 그 결과 92년 1월 가트 역사상 처음으로 환경 프로그램이 설립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환경 문제는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 갑자기 등장 한 문제가 아니다.

개도국들과 고된 협상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개도국들은 환경 문제를 가트에 끌어들이는 것이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라고 이해한 것 같다. 당시 선진국들은 개도국의 열대림과 같은 천연 자원을 환경보호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천연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개도국들에게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환경 문제에 대한 논의는 선진국 대 선진국의 갈등에서 출발한 것이다.

가트가 당면했던 환경과 무역 간의 갈등 문제에는 어떤 것이 있나?
 미국은 멕시코산 참치의 수입을 금지시켰는데, 그 명분은 멕시코에서 참치를 잡는 그물에 미국법이 보호를 명한 돌고래가 잡혀 죽는다는 것이었다. 미국내 환경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미국 정부와 의회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트는 미국의 수입 금지는 가트 협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려 미국 정부를 당혹케 했다. 가트 협정은 동일한 상품에 대해 국내외 제품을 차별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가트는 동일성 상품에 대해서, ‘동일성’이란 완성된 제품에 국한되는 것이지 그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동일성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중요한 유권 해석을 내렸다. 이 판정은 자국의 환경법안으로 무역 상대국의 환경 정책에 압력을 넣을 수 없다는 국제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판정은 결과적으로 가트 체제에 엄청나게 중대한 정치적 도전을 가져오게 했다. 가트 창설을 주도했고 이를 진지하게 준수해 온 미국이 이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환경주의자들과 의회의 압력이 미국 행정부로 하여금 가트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도록 만든 것 아닌가?
 멕시코산 참치 수입을 둘러싼 문제는 미국 행정부에게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당시 선진국의 민간 환경기구나 정부가 가트에 가한 압력도 대단했다. 비록 강제성은 없지만 가트의 판정은 미국의 환경주의자들을 분노케 했고, 당시의 보호무역주의적인 정치 분위기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본다.

가트 협정국들이 환경 문제를 보는 전반적 시각은 어떻다고 보는가?
 우리는 올해 초까지 지난 2년 반 동안 환경ㆍ무역과 관련한 주요 현안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 왔다. 우후죽순처럼 생각나는 국제 환경협정과 무역과의 연관성, 환경을 구실로 한 무역 규제 조처의 투명성 여부, 환경 관련 상표나 포장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착실한 검토와 연구를 진행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 이제는 가트 협정국 모두가 환경 문제도 가트 체제 내에서 반드시 검토돼야 하는 주요한 무역 관련 현안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환경 문제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등장한 새로운 현안인 것처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환경과 무역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과 더불어 떠오른 것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에 무역환경위원회를 설치한 것도 가트를 ‘그린’(환경주의)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환경 문제를 집중 논의하는 새로운 라운드의 출범을 생각하고 있다거나 하는 생각도 전혀 타당치 않다. 환경 문제는 주요한 문제이고 세계무역기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현안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가트가 다루는 많은 무역 관련 문제 중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트 체제에서는 정식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환경 문제가 세계무역기구에서 정식 의제로 다루어지게 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닌가?
 환경 문제가 가트 문제로 편입된다는 사실이 갖는 중요성은 물론 크다. 환경 문제는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관련이 있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각국의 환경 정책을 검토하거나, 환경 보호 기준을 결정하거나, 환경 보호 협정을 협상하는 식으로 환경 문제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환경 그 자체와 관련한 문제는 가트 혹은 세계무역기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환경과 관련한 규제와 법안들로 인해 자유 무역이 침해받지 않도록 자유 무역의 이상과 이익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환경과 무역의 관계를 검토하려는 것이다.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 무역 국가들은 환경과 무역의 연계가 선진국의 새로운 보호무역주의가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환경 문제와 관련해 나는 아시아 국가들이 방어적인 입장에 설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선진국들이 동남아의 열대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열대림을 가진 국가들은 그 열대림이 지구 전체에 제공하는 환경 서비스의 값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환경 문제가 정부 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환경보호 운동은 기본적으로 민간 운동이다. 소비자들 스스로 환경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환경 의식이 높은 미국과 같은 시장에 환경을 훼손하는 제품을 내놓으면 팔릴 리가 있겠는가.

정부간 협정인 가트나 세계무역기구 체제가 환경 문제와 관련해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국과 같은 비교적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에서 환경주의는 고조될 수밖에 없다. 소득이 올라가면 소비자의 환경 의식은 높아진다. 소비자가 원하면 기업이 이를 따라 간다. 그 다음 순서는 정부가 이를 정책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 수출하려면 그 곳 소비자들의 환경 의식에 맞아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의 규제나 무역 장벽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무역기구가 가장 먼저 다룰 환경 의제는 무엇인가?
 1백50여 개에 달하는 수많은 국제 환경협정이 있다. 협정의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환경협정이 늘어나면서 무역 규제 조처를 삽입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가트 처지에서는 과연 이게 가트 협정 정신에 비추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가트 협정이나 세계무역기구 협정에서 이러한 조처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불투명하다.

미국이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막바지에 무역환경위원회를 설치하자고 고집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국이 설치를 주장했기 때문에 미국이 환경을 구실로 보호무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개도국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동기가 단순히 보호무역주의적인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차피 다루어야 할 문제를 위원회를 통해 효과적으로 다루자는 이유가 있다. 동시에 미국은 자유 무역을 최고 이상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 창설에 동의하지 않았는가. 세계무역기구 체제 안에서 환경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은 개도국 처지에서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혹시 ‘그린 라운드’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지난 90년 브뤼셀 각료회담 때 캐나다 총리가 연설에서 그 용어를 사용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용어의 연원은 모르겠으나 문제가 있는 표현이다. ‘그린 라운드’라는 표현은 마치 가트가 무역을 ‘그린’(환경주의)화한다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 그리고 ‘라운드’라는 개념에도 문제가 있다. 전원 합의 원칙 아래 가트 협정국 모두가 모든 의제를 열어 놓고 협상하는 것이 라운드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우루과이 라운드가 완전히 실행될 때까지 다음 라운드는 열릴 수 없다. 즉 10년 후에나 다음 라운드가 가능하다. 가트 체제가 해체되고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는 마당에 또 라운드가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기다릴 시간도 없다. 환경 문제를 라운드 형식이 아닌 상시 의제로 논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에 무역환경위원회를 설치한 것이다.
제네바ㆍ南裕喆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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