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불똥에 ‘조센징’ 수난
  • 도쿄ㆍ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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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 본부 강제 수사ㆍ여학생 폭행…‘간코쿠징’도 혐오 대상



 지난해 일본의 영화상을 독점하다시피 한 <달은 어디에 떠 있나>라는 영화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몇 차례 되풀이된다. “조센징(조선인)은 싫지만 충남이는 좋다.”

 ‘충남’이란 재일교포 영화감독 최양일씨가 메가폰을 쥔 이 영화의 조인공, 재일교포 1세 택시 운전사이다. 그런데 권투선수 시절 머리를 다쳐 약간 환각증세가 있는 ‘호소’라는 일본인 동료 운전사가 충남을 졸졸 따라다니며 앞서와 같은 대사를 연발한다. 조센징은 교활하고 정직하지 못해 싫어하지만 충남에게만은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현재 극장 상영을 마치고 비디오로 나와 아직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이러한 민족차별적 대사 대문에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하려던 계획은 보류된 상태이다. 이 영화가 안방에 소개될 경우 교포사회로부터 거센 항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조총련을 ‘위험 단체’로 규정
 이 영화의 텔레비전 방영을 둘러싼 마찰에서 보듯이 재일 한국ㆍ조선인에 대한 차별 문제는 아직도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큰 숙제이다. 최근 문제가 되는 조총련계 여학생들에 대한 ‘이지메(괴롭힘)’도 그런 일본 사회의 병적인 일면을 잘 드러내주는 예다.

 조총련 도쿄도 본부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조총련계 여학생들에 대한 이지메는 모두 1백24건에 달한다. 예를 들어 전차 속에서 여학생의 치마ㆍ저고리를 찢는다거나, ‘조센징은 돌아가라’ ‘전차에 타지 말라’등 폭언과 모욕을 가한 사건들이다.

 이러한 조총련계 여학생들에 대한 이지메는 물론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국제적 마찰이 그 원인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탈퇴를 선언한 6월, 도쿄 조선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교포 소녀는 통학 전차 안에서 ‘조센징년’이라는 욕설과 함께 예리한 칼로 교복인 치마ㆍ저고리를 35cm 가량 찢기는 수모를 당했다.

 이러한 이지메의 대상은 비단 조총련계 여학생들만이 아니다. 교토부 경찰은 6월6일 조총련 교토부 본부에 대한 강제 수사에 나섰다. 용의는 국토이용계획법 위반. 조총련계 교토학원이 이전을 위해 매수한 토지를 교토시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다. 그러나 이 강제 수사는 14시간이 지나 잘못된 수사임이 밝혀졌다. 조총련 교토부가 매수 당시 신고한 토지 관계 서류가 교토 시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총련 본부에 대한 강제 수사와 조총련계 여학생에 대한 이지메는 성격이 다르다.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가 결의되거나 한반도에서 비상 사태가 발생할 경우 조총련 조직은 감시ㆍ경계해야 할 ‘치안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89년 10월 이른바 ‘사회당 슬롯머신 의혹’이 터졌을 때도 일본 공안조사청간부는 국회 답변에서 조총련을 ‘위험한 단체’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조총련은 현재 일본의 극좌 세력을 단속하기 위해 제정된 ‘파괴 방지법’을 적용할 용의 단체로 지정되어 평시에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전 재발 땐 ‘파괴 방지법’ 발동 검토
 북한에 대한 제재가 미국이 마련한 3단계로 실시되었다면 조총련의 시련은 강제 수사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이 마련했던 제재안에 따르면, 2단계로는 ‘송금 정지’ 3단계로는 ‘금수’를 실시할 예정이었는데, 이는 모두 조총련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안들이다. 예를 들어 송금 정지는, 조총련이 북한에 송금하는 연간 6억달러를 겨냥한 조처이다. 또한 연간 4억7천만달러에 달하는 일ㆍ북 무역의 주체가 대개 조총련계 회사들이다.

 더욱이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조총련은 적성국을 지원하는 이른바 ‘적성 단체’가 된다. 일본 공안경찰은 이들이 원자력발전소나 신칸센 철도 파괴, 중요 인물에 대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법을 제정한 두로 한번도 실시한 적이 없는 ‘파괴 방지법’발동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나 한반도 비상 사태라고 해서 조총련 조직과 조총련계 교포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시에도 전투원과 양민은 구별하는 것이다.

 오카다 시케다케(緖方重 ) 공안조사청이 지난 3월 중의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는 모두 68만명에 이른다. 민단계가 36만9천명, 조총련계는 24만7천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조총련의 조직활동 관여하는 사람은 5만6천명 정도이다. 이 가운데 조총련 조직을 움직이는 열성분자는 북한 노동당적을 가진 ‘학습조’ 3천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조선 국적’을 가진 조총련계 재일교포의 4분의 3은 가족ㆍ친척이 북송되어 어쩔 수 없이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사람. 조총련계 은행의 융자를 얻어 쓰기 위해 조총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 들이다. 조총련 조직과 조총련계 교포들이 결코 한통속이 아니라는 것은 최근의 조총련계 학교부지 매각을 둘러싼 알력, 오사카 지역의 조총련 학교가 지난해 김일성 현수막을 철거한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조총련의 한 간부는 “사실 전쟁이 일어나 북한의 미사일이 날라오거나 핵을 개발해 원폭이 투하되는 경우 우리도 일본인과 똑같은 운명을 맞는다”라며, 북한의 지령대로 조총련계 교포 24만명이 일치단결하여 전쟁 과업을 수행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업슨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도 북한 핵 문제로 엉뚱한 해를 입고 있는 것이 바로 조총련계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다. 민단에 소속된 교포 2세 김철수씨(46ㆍ사업)는 83년의 랑군 테러 사건, 87년의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89년의 슬롯머신 의혹 사건 때도 조총련계 여학생들이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지적하고 “같은 민족이라는 처지에서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이지메 대상이 언제 ‘조센징(이 경우 조총련계 교포를 가리킴)’에서 ‘간코쿠징(한국인)’으로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 때나 재작년 종군위안부 문제로 혐한 감정이 분출했을 대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간코쿠징은 일본이 싫으면 돌아가라’ ‘한국말로 떠들지 말라’는 수모를 수없이 당했다는 것을 그 예로 들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한국 국적과 북한 국적인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민족 차별 주범은 우월의식과 보상심리
 재일교포 역사학자 강재언 교수도 조총련계 여학생들에 대한 이지메는 일본인들의 우월의식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즉 일본인들은 ‘조선인(그는 이 단어를 한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과의 관계를 아직도 수평이 아니라 우열의 차로 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멸하는 것이다.

 이같은 경멸 의식은 때때로 ‘조센징은 뭔가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이어진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의 한국인 학살이 좋은 예이다. 강교수는 이 굴절된 일본인들의 심리가 약자인 재일 한국ㆍ조선인을 공격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일본서기≫에 나오는 ‘삼한 정벌’이라는 역사 왜곡이 바로 이러한 우월 의식을 심어준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여성 변호사ㆍ시민운동가 들은 6월22일 모임을 갖고 이지메 사건을 ‘조선의 10대 여성을 강제 연행해 종군 위안부로 만들었던 민족 차별ㆍ여성 차별과 똑같은 정신 구조에서 나온 만행’이라고 규정했다. 작가 이시가와 요시미(石川好)는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공격하는 일본 사회가 지닌 일종의 보상 심리가 이 사건을 유발하는 동기이다”라고 말한다.

 앞서의 영화 주인공 강충남은 조총련계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일본인 관객 가운데 “조센징…”이란 대사에서 조총련계 교포만을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로 재일 한국ㆍ조신인 전체가 그들에게는 ‘조센징’인 것이다
도쿄ㆍ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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