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감군 제의 받아들이자”
  • 지만원 (군사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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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존ㆍ핵 포기ㆍ통일’ 위한 전제조건…정상회담 주요 의제 돼야



사과가 익으면 떨어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뉴턴만은 여기에 의문을 품었다. 그 결과 만유인력 법칙이 탄생했다. 김일성 주석이 쌍방의 군사력을 10만으로 줄이자고 국제 사회에 공표했다. 한국 당국자들은 이를 ‘55년부터 반복해온 해묵은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지금의 군축 제의는 절대로 일축해 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뉴턴 같은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첫째, 지금 김일성의 발언권은 옛날과 다르다. 세계의 모든 정상들 중에서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람이 김일성이다. 세계가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10만 감군 제의에 예스냐 노이냐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군축 없이 통일 없다.
 둘째, 그의 10만 감군 제의는 이 시점에서 엄청난 명분을 가지고 있다. 통일은 평화공존으로부터 출발한다. 군축 없는 평화공존은 허구다. 양쪽이 가공할 군사력으로 대치하고 서로를 응시하면서 평화공존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의 군축 제의를 일축한다는 것은 평화공존 제의를 일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김일성은 ‘서울 불바다’용 무기를 포함한 전방 배치 병력을 후방으로 철수할 의사를 분명히했고, 휴전선을 평화적으로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이는 환영할 대상이지 일축할 대상이 아니다. 이를 일축하는 것은 한국 국민에게까지도 설득력이 없다.

 10만명으로 감축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말한다. 이는 답답한 고정관념이다. 20만 정예 군대만 가지면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른 한쪽을 기습하여 점령할 수 있다. 그러나 10만 병력으로는 아무리 많은 공을 들여도 다른 한 쪽을 기습 점령 할 수 없다. 이는 군축의 적정선을 정하는 데 유일한 기준이다. 군축의 적정선은 수세적 방어(defensive defense) 능력이다. 군축 반대론자들은 통일 후의 군사력을 이유로 들지만 이는 이유일 뿐이다.

 셋째, 상호 군축에 한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군사력은 국민총생산(GNP)의 3.2%에 불과하다. 그러나 북한 군사비는 군민총생산의 30% 정도다. 그런데도 북한의 군사비는 한국 군사비의 반밖에 안된다. 그나마 북한은 달러가 없다. 한국은 매년 40억달러어치의 신무기를 사들이지만 북한은 단 1대의 비행기를 살 달러마저 없다. 지금 북한 군사력은 한국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다. 그러나 그 군사력의 핵심 장비는 옛 소련과 중국이 지원해준 것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지원이 끊겼다. 10년 뒤 북한 군사력은 형편 없이 퇴화한다.

 물론 화생 무기와 서울 불바다용 대구경포는 많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남북한 재래식 무기 전쟁에서 북한은 이미 두손 들었다. 이것이 주는 심리적 부담은 엄청난 것이다. 지금 주한미군이 철군을 감행한다면 세계가 뭐라 해도 한국 역시 핵무기를 개발하려 할 것이다. 날이 가면 갈수록 한국 군사력이 북한을 앞서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 북한이 핵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하다. 따라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케 하려면 핵개발 동기 자체를 없애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군축이다.

 넷째, 김일성의 이번 군축 제안에는 진실성이 담겨 이을 확률이 높다. 김일성은 군축을 해야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북한 주민이 배고파할 때 북한군 병사는 배불리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병사들마저 배고파한다. 군대 내에 이러한 불안이 확산된다는 것은 김일성에게 위험한 일이다. 병사를 잘 먹이려면 감군해야 한다. 나머지 무장해제시켜야 그에게 안전하다. 북한 경제는 노동집약형이기 때문에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방위산업을 민수로 전환해야 배고픈 불만을 해소시킬 수 있다. 북한군은 경제난 때문에 감축해야 하고, 한국군은 간부 지원자가 없어서 어차피 감축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군축은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돼야 한다. 첫째, 국제 기관 감시하의 10만 감군을 제안하자. 둘째, 남북의 지뢰가 매설된 휴전선을 개발하기 위해 남북한군 혼성 ‘휴전선 공동관리 사령부’ 설치를 제안하자. 셋째, 쌍방 군사력을 예를 들어 휴전선으로부터 백km 후방으로 철수할 것을 제안하자. 만일 김일성이 이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통일이 줄 수 있는 선물의 99%를 얻는 것이다. 군축과 경제 교류 이 두 가지는 통일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만일 김일성이 이를 반대한다면 그의 진심은 국제 무대에서 의심받게 될 것이다.
池萬元 (군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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