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을 움직이는 사람들
  • 파리.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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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코베츠 : 52세. 통신장교 출신으로 88년부터 2년간 연합참모부 참모차장을 지낸 군사전문가. 러시아공화국 의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지난 6월 나토 본부를 방문했다. 쿠데타 소동중인 8월20일 러시아 공화국 국방장관으로 임명됐다.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 44세. 지난 6월12일 선거에서 옐친의 러닝 메이트로 당선된 러시아공화국 부통령. 아프가니스탄에서 세운 전공으로 ‘소련 영웅’ 칭호를 받은 공군 조종사. 러시아공화국이 고르바초프를 연금 상태에서 해방시킬 목적으로 크리미아에 파견한 특별팀의 일원이었다.

이반 실라예프 : 61세. 러시아공화국 행정 수반. 쿠데타 소동 전부터 옐친이 연방 정부 총리로 밀고 싶어한 인물. 항공산업 장관을 지냈으며 1개월 전에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밀려났다.

루슬란 카스불라토프 : 소련 의회 임시 의장. 경제학자. 실언을 잘하기 때문에 공산당에서도, 민주세력 안에서도 배척받는 문제의 사람이지만 옐친만은 그를 활용할 줄 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겐나디 부르불리스 : 45세. 철학자. 옐친의 선거사무장을 맡았던 공식 대변인 겸 참모. 페레스트로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 결성된 정치클럽에서 활동. 옐친이 탱크에 올라서서 성명서를 읽을 때 바로 옆에 섰던 인물. 8월20일 쿠데타 주동자의 한사람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와 통화한 끝에 군 병력에 의한 러시아 의회 의사당 공격은 없을 것이라는 언약을 얻어냈다.

게오르기 아르바토프 ; 68세. 부레즈네프 시대부터 자주 미국을 방문하면서 동서 데탕트를 제창한 학자. 1987년 10월 공산당 중앙위원회 집회에서 옐친이 개혁에 더디다는 발언을 했을 때 옐친 편을 든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작년에 중앙위원회에서 밀려났다.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 : 45세. 몇 안되는 여성 참모 중의 한사람. 국내문제 전문가로 3년 전에 나고르니 카라바크 지역을 아르메니아에 귀속시킬 것을 주장했다. 그 후 그 지역에서 민족 분규가 터졌다.

올레그 보고몰로프 : 64세. 1969년부터 국제경제정치연구소 소장으로 일해 온 경제학자. 그는 일찍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반대하는 진언을 크렘린에 했으며 중국과 헝가리처럼 경제 자유화를 시도하자고 주장했다. 작년에 공산당에서 탈당.

파벨 부니치 : 62세. 연방최고회의 소속 경제개혁위원회 부의장을 지냈다.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정책을 “충격만 주고 치료는 안해주는 정책”이라고 비판했으며, 정치개혁도 “절대 군주제에서 계몽 군주제로 옮겨놓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스비아토슬라프 피오도로프 : 62세. 세계적인 안과의사. 그가 책임지고 있는 모스크바의 안과병원을 민영화하는 데 성공. 이 병원은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니콜라이 슈멜리오프 : 54세. 경제학자. 흐루시초프의 사위. 아르바토프가 소장으로 있는 미국 및 캐나다 연구소에서 1983년부터 일해왔다. 1987년 중앙통제 경제를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기업이 일을 잘못하는 종업원ㅇ르 해고할 경우 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타티아나 자슬라프스카야 : 64세. 정부에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야인 사회학을 개척한 학자. 소련 과학원의 시베리아 분원에 속해 있을 때 그가 제창한 아이디어들이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초가 되었다. 1988년 소련에 처음 생긴 여론 연구기관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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