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日 의존 ‘魔의고리’ 끊으려면
  • 침재훈 (파이스턴 이코너믹 리뷰 서울지국장) ()
  • 승인 1991.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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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무역수지에 위험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금년 들어 8월20일 현재 무역적자가 96억달러에 이르렀고, 연말까지는 1백억달러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수치는 사상 최대 액수이고, 작년 무역적자 47억달러의 2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88년과 89년, 사상 최초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고 해서 요란하게 떠들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시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무역수지를 숫자로만 파악할게 아니라 입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규모로만 본다면 무역고 1천3백억달러를 올리는 나라에서 1백억달러의 적자란 크게 우려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문제는 적자구조가 매우 악성이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주요 교역대상국들과의 교역에서 유럽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 몇 년 동안 흑자를 낸 미국과의 교역도 적자로 돌아섰고, 무엇보다 對日적자는 ???우 심각해 전체 적자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대일적자를 살펴보면 악성적자 구조가 잘 드러난다. 우리가 세계시장을 향해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대일적자는 더 늘어나게 돼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일제 부품을 들여다가 조립해 수출하는 패턴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0년 우리나라 수출상품의 외제 부품률은 20.6%였는데, 85년에는 21.7%로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 외제부품이란 거의 일본제품이다.

후발개도국에 대부분 뺏긴 하위권시장
 작년 한해 동안의 대일적자는 59억달러인데 그중 42억달러가 기ㅖ류 수입에 의한 것이다. 공작기계의 대일의존도는 53%, 사무용기기는 37%, 자동차 ‘기어박스’는 76%, 전자마그네트론은 98%, 녹음기는 90%에 이르고 있다. 우리의 수출은 완전히 대일의존의 수출로 날로 악화되고 있고, 현재로서는 이 ‘魔의 서클’(devil's circle)을 도저히 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다음으로 왜 수입만 늘어나고 수출 신장률은 둔화되는가를 생각해보자. 그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독점한 선진국 하위권 시장을 거의 다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88년과 89년 우리나라 산업계는 임금인상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 기간 중 해마다 임금이 40%나 올라 우리나라는 신흥공업국 4개국 중 시간당 임금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고, 우리의 낮은 생산성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임금은 유럽 · 일본의 임금수준과 맞먹고 있다. 저임금과 금융특헤라는 2개의 인센티브가 있었기 때문에 싼값에 물건을 만들어 하위권시장을 석권할수 있었던 우리나라는 이제 똑같은 수출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후발개도국에 대부분의 시장을 뺏기고 있다.

 우리느 ㄴ그동안 중위권시장으로 뛰어들기 위한 기술개발을 하지 못한 채 하위권시장을 물려주고 있다. 88~89년, 높은 임금 상승과 노조와의 갈등으로 사업의욕을 잃은 기업들은 대부분 땅 투기와 재테크에 열중하면서 중위권으로 도약해야 할 황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 우리나라는 세계 13위권의 교역국으로 올라섰다는 요란한 선전 속에 엄청난 시장개방압력을 자초하게 됐다. 거기다가 정부가 수급조절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채 가자기 문호를 개방해 바나나의 예에서 보듯 불필요한 양을 1억4천만달러어치나 들여다가 상당량을 폐기처분해야만 하는 시행착오를 빚기도 했다.

구조적 개선책 마련해야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매달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줄어들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무역적자의 구조적 원인을 직시해 장기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적자구조를 정확히 파악해 정부가 할 일, 기업이 할 일을 구분해서 대처해야 한다. 공룡화한 재벌기업을 소형 전문특화기업으로 축소해 변화무쌍한 세계시장의 판도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느 ㄴ기업체질으 갖추게 해야 하고, 무엇보다 기술개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기술개발 투자는 88년에 매출액의 1.88%이던 것이 89년에는 1.05%로 오히려 줄었는데, 선진국의 기업들은 3~5%를 기술개발비로 쓰는 것이 통례이다.

 80년대에 우리나라 대기업은 반도체개발에 앞장서 세계시장에 우리의 존재를 알릴 만큼 성공을 거둔 선례가 있다. 지금도 기술개발에 집중투자를 하면 못할 것도 없다. 우리는 어떻게든 금세기 안에 거의 모든 공산품시장에서 중위권에 진입해야 하고, 10년 안에 상위권시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우리가 뛰는 속도보다 후발개도국들이 뛰는 속도가 더 빠르므로 우리가 빨리 상위권으로 뛰지 못하면 우리의 장래는 암담할 뿐이다.

 이제 정부와 업계, 그리고 언론은 차분하게 구조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급한 불을 끄는 식의 소방서적 접근으로는 거센 국제무역 환경에 대응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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