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 언론전략에도 차질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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競選서 移通까지 신세졌으나 ‘진실 보도 촉구’로 반발 불러



 모든 대통령 주자들이 다 그렇지만, 민자당 김영삼 총재의 대선 전략에 있어서 언론이 지니는 비중은 각별하다. 특히 노대통령의 당적 이탈 이후 종래 여권 후보가 누려 왔던 상당 부분의 범여권 프리미엄을 유보당하거나 포기한 채, 동요하는 당을 수습하고 가속도를 상실한 ‘대세론’을 되살려내야 하는 상황인 만큼 김영삼 진영은 대세론을 재확산하는 매개고리로 언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즉 언론을 통해 노태우-김영삼의 변함없는 관계를 강조하는 한편, 6공의 失政 부담에서 벗어난 ‘YS 홀로서기’의 가능성을 전파하려는 이중전략이 그것이다.

노대통령 탈당동기 분석에 불만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YS의 대언론 발언’,《기자협회보》의 ‘YS 장학생’ 폭로, 문화방송 공권력 투입 등이 상도동과 언론 간에 미묘한 난기류를 만들어냈다. 이는 김영삼 진영의 대선 전략이 중대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묘한 기류는 지난달 2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3당 대표회담에서 김총재가 언론의 보도 방향과 내용에 대해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데서 비롯됐다. 이날 김총재는 “내가 보기에는 신문의 진실 보도 문제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며 공동 발표 문안에 이 문제도 포함시키자고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3당대표회담의 공동 발표문에는 ‘언론의 공정성과 중립성’이라는 문안이 들어갔다. ‘진실 보도’를 촉구한 배경은 곧 측근들에 의해 “노대통령의 탈당 동기를 언론이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분석하고 김총재에게 불리한 쪽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김총재의 ‘진실보도 촉구’는 오히려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국민당은 다음날 ‘광화문 토론회’에서 그동안 언론이 여당 대통령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편파보도를 해온 사례 30여건을 적시한 자료집을 배포하는 한편, 주요 당직자들은 일제히 “언론 특혜를 받아온 그(YS)의 불평을 과연 누가 납득할 수 있는가”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말을 해야지”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김총재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논조를 유지하며 한때 ‘대변지’라는 의혹까지 샀던 ㅈ일보는 사설을 통해 “…‘왜 신문이 그런 각도에서 대통령의 탈당 동기를 분석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드느냐’ 하는 불평과 함께 그 시정을 공정성이나 중립성의 명분으로 요구해 온다면 그건 합당한 것이 아니다…언론은 공정하려고 애써야 한다. 반면 정치인들도 언론 플레이나 언론 잡아당기기, 언론 이용하기 술수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며 김총재의 발언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미묘한 기류에 직면한 김총재 진영을 더 당황하게 만든 건 공교롭게도 김총재의 ‘진실보도’ 촉구와 이에 관한 야당의 “말할 자격” 공방전이 오간 직후 터져나온 《기자협회보》 보도다. 10월1일자 《기자협회보》는 한 언론사 편집부국장이 지난 6월말께 작성한 ‘언론사 주요기자 접촉상황 보고’라는 문건과 함께, 김덕룡 의원(당시 대표비서실장)의 주도로 언론계 정치부장과 기자들을 친YS 성향으로 끌어들이고 반YS 성향의 언론인을 설득시키는 언론계 공략작업이 행해졌음을 폭로했다. 각 언론사 정치부장들의 모임을 보고한 이 ‘상황 보고’에는 계속 태도를 바꾸지 않는 모언론사의 ㅂ부장을 김의원이 직접 만나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하는 대목도 있었다.

 김의원측에서는 “무책임한 기사다. 좌시하지 않겠다”며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상도동측에서는 긴급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정가와 언론계 일각에서는 보고 문건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점, 지난 6월께부터 ‘YS 진영의 정치부장 집중공략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던 점을 들어 상당 부분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기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 보도가 나간 직후 청와대와 야당 관계자들이 잇따라 방문해 관련자료를 요청하며 관심을 나타냈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한겨레신문>을 제외한 다른 언론은 자사의 간부들이 개입된 문제인 만큼 《기자협회보》의 폭로를 거의 보도하지 않거나 묵살하고 있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도의 여파로 말미암아 이른바 ‘YS장학생’으로 거론돼온 각 언론사 간부와 기자들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이며, 따라서 김영삼 진영의 대선 전략이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언론 플레이를 대선 전략의 가장 주요한 고리로 파악하고 대처해온 김영삼 진영이 언론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시점에서 언론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상황은 ‘자승자박’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총재와 정치 운명을 함께해온 한 민주계 인사는 김총재의 정치행태를 ‘오랜 게릴라전 끝에 하바나에 입성한 카스트로’에 비유한다. “집권 여당의 후보가 된 후에도 김총재는 게릴라전의 오랜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당과 행정부라는 엄청난 공조직을 수렴하지 못한 채 소수 측근을 자의적으로 활용해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게릴라전에 의존했다. 그 결과가 노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불러들였다”고 그는 분석했다.

 ‘의표를 찌르는 돌발적 정치행동과 측근들의 발언을 통한 언론 플레이-여론 형성-상대진영 압박’이라는 수순으로 진행된 김영삼의 전형적인 게릴라식 정치방식은 언론 외에는 기댈 곳이 없었던 야당 시절은 물론이고, ‘대세이되 소수인’ 민주계를 이끌고 여권의 대통령후보를

따내는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구사됐다. 90년 ‘내각제각서 파문’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내각제에 합의한 사실을 극구 부인해 오던 김영삼으로서는 ‘마산행’이라는 의외의 돌파구를 통해 국면을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철언 의원은 당시 이 놀라운 국면전환을 두고 “궁지에 몰린 YS가 다시 살아난 건 오로지 언론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YS에게 언론은 ‘양날의 칼’

 그러나 최근 ‘이동통신’에서 ‘관권선거파문 수습을 위한 중립내각 촉구 기자회견’에 이르는 기간에 김영삼 진영은 언론 플레이를 최대한 유효적절하게 구사하여 최대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그 반대로 언론으로 말미암아 좌절하기도 했다는 것이 정가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 게릴라전에서 오인환 정치특보, 이경재 공보특보, 이원종 부대변인 등 언론계 출신이거나 언론계에 인맥이 상당히 두터운 이른바 ‘상도동 신3인방’이 맹활약을 보인 것도 김총재의 게릴라전에서 언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동통신 사업자 확정은 노대통령과 김총재의 시각차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속성과 행정 관례에 비추어 ‘번복될 수 없었던’ 사안으로 치부됐었다. 8월20일 金重權 정무수석이 사업자 확정 발표 이후 열린 노-김 주례회동 결과를 발표할 때만 해도 상황은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21일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하러 강릉으로 가는 차 안에서 김대표는 무선 전화로 오인환 특보를 불러내 “청와대 회동에서 심각한 논의가 있었다"며 청와대 발표문과 정면 배치되는 내용을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오특보 발언’을 통해 언론의 시선을 묶어둔 김영삼 진영은 이승윤 의원을 통한 최종현 회장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반납도 고려해 보겠다“는 최회장의 심경이 김총재에게 보고된 것과 거의 동시에 언론은 ‘선경 반납’을 기정사실로 보도했다. 선경그룹의 공식 발표는 대부분의 언론이 ”선경 반납방침 확정“을 대서특필한 지 사흘 만인 27일에서야 이뤄졌고, 선경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상도동과 언론이 상황을 만들어 몰고갔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결국 이동통신 반납은 그동안 야권의 끈질긴 문제제기는 간과된 채 김총재에게 도덕성과 노대통령과의 차별성 확보라는 빛나는 성과를 안겨주었고, 장외 집회 등을 계획했던 야권에서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중국사람이 챙긴“ 김영삼의 언론 플레이에 혀를 내둘렀다.

 ‘이동통신 반납’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바탕으로 치러진 8월28일의 김영삼 총재 취임식에서도 언론의 호의는 유감없이 드러났다. 텔레비전 3사가 이례적으로 낮시간 방송 허가를 공보처로부터 받아 민자당 총재 선출 실황을 일제히 생중계한 것이다. 이날 저녁 뉴스 시간의 절반 가량이 ‘문민 시대의 개막’ ‘강력한 지도력과 개혁 이미지’라는 제목의 뉴스와 해설로 채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관권선거 폭로 정국에서 상황은 묘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문책개각과 중립내각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총재가 총리까지 포함된 듯한 여운을 남긴 데다 구체적인 명단까지 흘린 일부 측근들의 ‘지나치게 앞서가는 발언’은 언론에 의해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월권”으로 지적됐다. 뒤이어 청와대 주변에서 흘리는 노대통령의 탈당 동기와 노심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김영삼 진영은 이전과는 달리 사태를 김영삼 진영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언론의 보도태도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김총재의 ‘진실보도’ 발언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김영삼 진영은 양면에 날을 가진 ‘데모클레스의 검’을 지나치게 활용하다 스스로 상처를 입은 셈이다. 그런데도 ‘홀로서기’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대세론의 재확산을 위해서는 또다시 언론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는 데 김총재의 고민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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