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보도와 공명선거는 동의어”
  • 김훈 편집위원 ()
  • 승인 200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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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 기준안은 ‘자율 부재’의 현실 무시 발상 … 유재천 공선협 언대위원장



 대통령의 탈당과 중립선언 이후 언론보도의 공정선 여부는 공명선거의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선거의 공명성을 ‘원천적으로’ 더럽혀온 양대 오염원이 관료 체계의 친여성과 보도의 편파성이었다는 각성이 사회 전체에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다. 문화방송 노조의 장기 파업과 방송위원회의 선거방송기준안(이하 기준안) 제정 움직임은 이같은 공정보도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다. 또 수많은 시민 · 종교단체가 선거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감시하는 전국 규모의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이하 공선협)의 劉載天 언론 대책위원장(서강대 교수 · 언론학)을 만나 선거 보도의 문제점과 그 대응 방안을 들어본다. <편집자>

지금 방송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준안의 공정성 여부를 놓고 언론계·학계·정계 그리고 시청자의 의견과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방송위의 기준안은 우선 소속 정당의 의석 수, 후보자의 정치적 비중 등을 고려해서 방송시간 배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이같은 조정 역을 방송사의 자율에 맡기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선거 보도의 문제는 방송사에 자율성이나 독립성이 없기 때문에 누적되어 온 것입니다. 이 기준안은 주로 미국 텔레비전방송의 법제와 관행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오랜 민주 경험을 축적하고 정치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미국 텔레비전방송의 자율성과 한국 텔레비전방송의 자율성을 혼동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후보의 정치적 비중에 따라 방송시간을 배분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자율성’을 한국 텔레비전방송에 부여하고 그 결과로써 공정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방송위 기준안은 또 순수 뉴스뿐 아니라 선거와 관련한 인터뷰·다큐멘터리·현장중계 같은 프로도 이 원칙에 준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실 이 조항이 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뉴스 보도의 경우, 후보에게 할당된 시간에 산술적 균등치를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 · 다큐멘터리 · 현장중계 같은 프로에서 등시간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특정 후보에게 엄청난 이익이나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등시간 원칙을 지킨다고 해서 공정방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등시간 원칙은 준수되어야 합니다. 방송위 기준안 중에서 명백한 인신공격이 방송되어 특정 후보에게 불리했을 때 반론의 기회를 주도록 되어있는 조항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인신공격에 대한 판단, 반론의 포맷, 시간대, 시간 길이 등에 관해서 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겠지요.

공선협은 선거 보도의 공정성을 위해 어떤 실천 방안을 마련했습니까?

 보도의 공정성 감시가 사후적 평가에만 머물 게 아니라 사전의 가이드라인으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공선협 나름대로 어떤 것이 공정보도인가에 관한 기준을 정해서 각 언론사에 준수할 것을 요청하고 YMCA 등 시민단체와 연대해서 준수 여부를 사후에 평가해서 이를 공개할 방침입니다. 또 대통령 선거법 개정 움직임에도 적극 참여해서 선거 보도에 있어서 텔레비전의 긍정적 기능이 극대화되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 방송위 기준안도 옳은 방향으로 자리잡힐 수 있도록 확정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겠지요.

지금까지 선거 관련 언론보도에 나타난 문제점은 어떻게 파악하고 계십니까?

 한국 언론의 선거 보도는 전형적인 경마 저널리즘입니다. 당선 가능성을 놓고 그 우열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이지요. 또 전형적인 통조림 저널리즘입니다. 손쉽게 받아먹을 수 있도록 각 후보가 가공해주는 정보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것이지요. 후보는 이 통조림을 공급하기 위하여 수많은 정치 이벤트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싸움 붙이기식 보도 성향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비방하면 언론은 즉각 역습을 부추기고 그 내용을 크게 보도해 왔지요. 또 후보가 대결하는 여러 국면들 중에서 지연·혈연·학연의 국면만을 집중 보도해 왔습니다. 이같은 성향과 이같은 수준의 보도에서 여 · 야에 지면이나 시간 배분을 균등히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있는 공정보도가 될 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본질적이 아닌 문제에 시간과 지면을 집중적으로 내어준 반면, 후보의 인격 · 리더쉽 · 도덕성의 문제를 따지고 밝히는 기사는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하는 유형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스케치 · 낙수 · 해설 · 가십 · 초점 같은 유형의 보도를 오랜 세월 운영하다 보니까 가십이나 주변 정황을 집대성한 것이 선거 보도의 본령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또 객관성을 확보하자는 노력으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조사 주체의 자의성에 의해 흔히 왜곡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같은 보도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혐오와 불신을 조장해서 투표율을 떨어뜨리게 되고, 그 결과는 항상 기존 정치 세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이같은 문제는 보도의 편파성만큼이나 심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누적된 악폐 위에서 무엇이 공정보도인가를 객관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어려운 일이지요. 아무래도 개념적인 조항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실성 · 관련성 · 균형성 · 중립성 등 뉴스가 갖추어야할 기본 조건을 우선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선과 악, 그 양쪽에 대해 초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립성은 아니며,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균형성은 아닙니다. 아무리 개념적이라 할지라도 보도의 실제에 적용될 수 있고 사후 평가의 준거가 될 수 있는 규정들을 만들고, 그 준거에 따라 평가 · 감시하고 그 결과를 유권자에게 널리 알림으로써 경마 보도 · 통조림 보도 · 싸움 붙이기 보도 · 편파보도를 견제해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론사의 실천 의지입니다.

신문은 특정 정당의 노선과 이념을 지지할 수 있고, 또 그런 입장 위에서 지면을 제작하는 것은 편파보도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라는 주장도 대두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란 언론 자신의 입장과 이념, 노선을 공공연히 표명할 수 있는 자유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주요 신문들도 선거 때 ‘우리는 어느 정당을 지지한다’고 공공연히 노선을 밝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이념적 · 현실적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사실상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편파보도를 하면서 미디어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중립성을 위장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 아닐 것입니다. 신문이 특정 정당의 노선을 지지한다고 공공연히 선포하면, 신문은 막대한 타격과 불이익이 따를 것입니다.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독자로부터 외면당할 테니까요. 그러나 신문이 자신의 당파성을 언론의 자유에까지 끌어올리려면 그같이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어느 신문이 특정 정당 지지를 공공연히 선언하고 나선다면 독자는 이같은 태도를 하나의 지향성으로 존중해주기보다는 그 신문의 당파성 자체를 일제히 매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문은 특정 후보에 유리한 편파보도를 할 때도 그것이 중립인 양 위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진실은 더욱 왜곡되게 마련이지요.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는 뉴스도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해 결과적으로 편파적일 수가 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선거 기간중에는 선거와 관련이 없는 사건, 말하자면 대형 사고나 사건 · 대형 화재 · 안전 사고 · 노사분규 같은 문제를 보도하는 자세도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해서 결과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 정부의 행정 시책을 보도하는 자세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런 보도 자세를 감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보도야말로 사실성에 입각해야 하고 그 사실을 해석해내는 과정 또한 공정해야 할 것입니다. 선거 기간중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는 사안에 관해서는 그것을 보도하는 태도가 선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검증할 것입니다. 구체적 사례를 놓고 따져야 할 문제입니다.

공선협은 매우 정치적인 사업을 매우 비정치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 같은데, 공선협의 성격은 어떤 것입니까?

 공선협은 근본적으로 도덕운동이고, 시민자구운동입니다. 공선협의 선거 감시 결과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 공선협은 비정치적 운동입니다. 왜 다른 선거 감시 조직과 연대하지 않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선협은 정치적 중립을 위하여 독자적으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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