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에서 생활로”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9.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동가요’ 방향전환 움직임… 비슷한 운율· 노랫말 한계 안치환씨 · 노찾사 등 ‘대중 속 뿌리 내리가’ 모색

이른바 운동 가요는 몇점짜리 가요상품일까. 안정희구 성향이 큰 대중에게 체제변혁의 구호를 담고 있는 노래는 얼마만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또 80년 광주항쟁을 분수령으로 양산된 운동가요들은 사회주의 붕괴로 표상되는 90년대에 그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서울 동숭동의 소극장 학전에서는 90년대 노래운동의 방향을 가늠케 하는 공연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1일부터 14일까지는 가수 김광석 안치환의 ‘가을 콘서트’. ‘거리에서’ 등 대중가요 감각으로 노래하는 김광석과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시 살아나’로 알려진 안치환은 모두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출선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외사랑’ ‘사랑했지만’ 같은 사랑노래와 함께 ‘노동자의 길’ ‘광야에서’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의 운동가요가 한 무대에서 불려졌다.

또 지난달 6일부터 25일까지 같은 공간에서는 ‘노찾사’가 “운동가요의 대중 속 뿌리 내리기”를 모색하는 장기 공연을 개최했다. 전반적으로 노래운동의 침체기인데도 불구하고 이 공연은 총 1만1천여 명을 동원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김광석 안치환의 가을 콘서트도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이같은 외형적 결과를 볼 때 운동가요에 대한 일반인의 잠재적 욕구가 크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노찾사’ 사무국장 최병선씨는 “그간의 노래들이 대형집회 형식에 맞는 큰 노래였다면 앞으로는 일상에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게 하는 생활가요를 많이 부를 계획이다”라고 밝히고 있어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다시 말해서 ‘운동권’이라는 포장을 열어서 제도권 안에서 같이할 수 있는 ‘좋은 노래’로 활동범위를 넓혀나가겠다는 것이다. 가수 김광석씨는 좋은 노래를 “솔직해야 하고,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웃사람도 더불어 생각하게 하는 노래”로 규정한다. 그는 또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바람을 담고 있는 운동가요의 당위성을 인정하지만, 그 부분만 강조 되어서도 안되고 반대로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면만 강조되어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방법론에 있어 뚜렷한 합일점 제시 못해
이같은 말을 종합해볼 때 90년대 노래운동의 방향은 기존의 운동가요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불리는 생활가요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아직 뚜렷한 합일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음악적인 결과물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까닭은 그간의 활동무대가 대체로 대형집회 공간이었으며, 대학생을 중심으로 진보적· 투쟁적 성향이 강한 30대 전후세대를 만족시켜왔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폭넓은 대중성을 획득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동안 이들을 성원했던 계층의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찾사’ 8월 공연을 본 한 관객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우경화를 우려 한다”고 했던 것은 그 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이 같은 갈등은 가수 안치환의 활동에서도 심화돼 나타난다. 일반인에게는 ‘운동권가수’로 인식되는 안치환의 노래들이 정작 대형 집회 공간에서는 “지나치게 서정적이고 우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운동가요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공연은 ‘운동가요’와 ‘대중가요’ 사이에 소리 없이 두터워진 벽을 허물고 대중가요계로의 진입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찾사 2집 음반의 상업적 성공으로 대중가요와 운동가요 사이에 마련된 공간을 더 확장시키는 작업”이라고 이 공연을 평가하는 노래평론가 이영미씨는, 그 공간이 앞으로 더 성장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호성이 뚜렷한 운동가요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점을 볼 때 노래운동의 방향전환은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노찾사’ 2집 음반이 50여만장 판매되었던 것에 견주어 3집은 불과 8만여장이 판매된 것도 하나의 보기다.

이렇게 볼 때 ‘솔아, 푸르른 솔아’ ‘사계’를 위시한 몇몇 노래가 인기 대중가요의 반열에 올랐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순수한 노래로서 대중의 정서에 다가갔던 결과인지, 아니면 87년 이후의 시대상황과 맞물렸던 일시적 현상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작업장과 거리에서 잇따라 개최된 80년대 집회공간에서 사회변혁운동의 동반관계로 꽃피웠던 노래운동이, 90년대 변모된 사회상황에서 도식적인 음악문법을 극복하지 않은 채로 대중의 공감대를 끌어내려 한다면 그 결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80년대 시대상황에서 운동가요의 양산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으며 중대한 기능을 했다”고 전제한 가수 한돌씨는 그러나 노랫말에 ‘투쟁’‘자유’라는 구호적인 단어가 반복됨으로써 ‘운동가요’라는 제한적 틀을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곧 대중들이 좋아할만 한 순수한 노래마저 도매금으로 그 틀에 가둬 더 많은 대중이 듣고 이해해야 할 상황을 차단시키는 결과를 낳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80년대 운동가요 중에는 “상품 생산 하듯 제조하는 기존 대중가요 생산 메커니즘의 근본 속성을 닮았다”는 비판의 소리를 듣는 노래도 많다. 권력의 대항논리로 전개된 운동가요가 문법상으로는 “아래로부터 이끌어가겠다”는 모순에 빠져 결과적으로 권력의 속성과 똑같은 오류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운동가요마다 비슷한 운율, 반복되는 노랫말로 노래별 특징이 없다는 사실도 한계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구호적인 어휘는 마약과도 같아서 사용할 때마다 고감도 단어가 아니면 성에 차지 않는다”는 지적이나, 운동가요 중에 ‘죽음을 예찬’하는 파괴적인 허무주의도 풍겨져 “승리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 가스실로의 행진 같은 잔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은 노래운동의 기본정신인 “건강한 삶의 정서”와는 위배된다. 기존 가요들이 일본의 트롯이나 미국의 포크송 영향을 받았다고 비난하나, 80년대 운동가요 또한 북한이나 소련풍의 음악을 모방하고 있는 노래가 많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90년대까지 이어지는 김민기의 노래
90년대 노래운동의 방향성을 논의할 때 가장 뚜렷한 전형은 김민기의 노래들이겠다. ‘아침이슬’‘강변에서’ 등 70년대에 만들어진 그의 독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 의해 애창되고 있다. 시대의 격치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그의 노래들이 일반인과 운동권에서 두루 애창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탁월한 음악형식을 갖고 노랫말이 선동적인 구호에 치우치지 않고 관조적으로 승화됨으로써 그의 노래들은 ‘역사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긴급조치가 잇따라 선포된 유신정국 속에서 “그림처럼 서정적인 노랫말 속에 한국적인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던” 그의 노래들은 불온가요로 금지당하긴 하지만 운동가요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결국 김민기의 노래가 “민중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개진하고 있었던데 견주어 80년대 운동가요는 “노래로써 이끌고 지도 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담고 있으며, 그 강도가 선명할수록 좋은 민중가요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일 것이다.

작곡가 장일남씨는 “숭고한 마음을 담고 있는 ‘아침이슬’은 음악적으로나 노랫말에서나 가곡과 다름없는 좋은 노래”라고 평가하면서 그런 곡이 많이 나와서 대중의 정서를 교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 예술 노래들은 삶을 조망하는 그림자 같은 것이지 삶을 앞서서 끌어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김민기씨의 예술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행정력을 동원하여 명령하듯 유행시키려고 했던 ‘새마을 노래’의 단명을 생각해보면, 한 나라의 문화예술은 생활 속에서 삼투압 되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그 지론이 옳을 것이다. 이 말은 “이것만이 좋은 노래라고 강요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한돌씨의 생각과 일치한다.

구호성의 논리에 함몰된 노래나 몇몇 인기곡의 모방적 형태에 있는 노래는 그것이 아무리 서정적인 가사와 유장한 선율을 기초로 하고 있어도 영원성을 갖지 못한다. “새마을 노래’‘겨레의 노래’등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운 노래운동 거개가 소기의 성괴를 거두지 못 한 까닭은 무엇인가. 생활 속에 스며들 듯 존재 하면서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노래 미학의 근본정신을 추구하는 일, 이것은 노래운동 이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