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입싸움 여야가 똑같다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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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 · 민주 대변인들 서로 헐뜯기…‘논평’은 이름이 무색



 지난 연말 정기국회에서 여당인 민자당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려고 하자 야당 의원들은 이를 몸으로 저지했다. 그 때 여당 돌격대와 야당 저지선의 선봉에 서 있던 민자당 박희부 의원과 민주당 조홍규 의원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졌다. 박의원은 키가 작은 조의원에게 “이봐 앉으나 서나 똑같은 사람은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조의원은 청와대의 뜻에 따라 거수기나 돌격대 노릅삮에 할 수 없는 여당 의원의 처지를 빗대 “(원내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나가”라고 맞받아쳤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던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의회 정치의 장점은 협상과 대화가 가능할 때만 발휘될 수 있다. 그리고 협상과 대화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여야 대변 인실 간의 입씨름에서는 조의원이 보여준 것과 같은 여유와 재치를 찾아볼 수 없다. 직설적인 비난과 인신공격만이 난무한다.

 특히 지난 3월28일과 29일 양일간 민자·민주 양당의 대변인실이 서로 상대방을 비난한 내용은 보는 사람의 낯이 붉어질 지경이다. 설전의 시작은 민주당 박지원 대변인이 사전선거운동 의혹이 폭로된 것은 “민자당내의 계파 갈등 탓”이라고 비꼬면서부터였다. 이에 대해 민자당 대변인실은 손학규 부대변인의 이름으로 박대변인을 “민주당의 대표적인 5공 기웃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당측에서는 손부대변인을 “지식을 팔아 권력을 찾아간 재야의 배신자”(박지원 대변인),“권사정권의 잔재들인 호랑이를 잡으러 입당했다가 전락한 호랑이의 충직한 개”(김용석 부대변인)라고 몰아붙였다.

‘5공 기웃세력’비난에 ‘5공 잔당’되치기
 나중에 민자당의 ‘5공 기웃세력’논평이 하순봉 대변인이 손부대변인의 이름을 빌린 것으로 드러나자 민주당측은 손부대변인에게는 사과하는 대신 하대변인을 “남의 이름을 훔치는 5공의 잔당”(설 훈 부대변인)이라고 표현했다.

 민자·민주 양당의 대변인실은 서로 비난할 뿐만 아니라 상대당의 대표까지도 서슴없이 깎아내린다. 민주당 박대변인은 2월 17일 김종필 대표의 국회연설에 대해 “표현은 그럴 듯하지만 백 가지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라고 비꼬았다. 그러자 민자당의 하대변인은 2월18일 이기택 대표의 연설에 대해 “길거리 시위 현장에서나 나올 법한 선동적인 문구로 가득차 있다”고 되받아쳤다.

 이밖에도 양당의 논평에는 사사건건 가시가 돋쳐 있다. 지난달 28일 하대변인은 김대중 아·태 평화재단 이사장 가택 주변의 경찰 안가와 관련해 “투정도 귀엽게 봐줄 수 있지만 지나치면 매를 들 수 있다는 걸 알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상무대 비리를 폭로한 정대철 의원에 대해서는 “증거도 없는 얘기를 하는 것은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아예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민자당의 박지원 대변인은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는 김영삼 대통령을 이대표가 환송하지 않은 것을 민자당측에서 비난하자 “자기들이야 아부에 능숙해 대통령 앞에 서기만 하면 작아질 테지만…”이라고 비난했다. 또 돈봉투 사건에 대한 민자당의 반응에 대해서는 “무엇이 제 발이 저려 하는 말 같아 얘기할 가치도 없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여야 대변인실 사이에 오고가는 내용은 남북회담장에서 서울 불바다 운운한 북한의 독설이 무색할 지경이다.
文正字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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