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물러앉고 ‘스님’ 나와야
  • 한승헌 (객원 편집위원 · 변호사) ()
  • 승인 199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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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나 표를 매개로 하여 권력 · 종교가 밀착해왔다. 오늘날의 조계종 사태도 근본 원인은 ‘정 · 종유착’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도였지만 기독교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아끼지 않은 성자였다. 언젠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크리스천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행실은 예수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지하의 간디가 94년 4월의 한국 불교 조계종 사태를 들었다면, 필시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붓다를 존경한다. 그러나 스님들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붓다를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기독교에 대해서보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인도를 발상지로 한 불교에 대해 더 많은 감회를 표명할 것이 틀림없다.

조계사 폭력 사태로 곪아터진 승려들 간의 추악한 싸움은 세인의 눈에 불교계를 이끌고 나가야 할 고위직 승려들이 오히려 불교(계)를 망치고 있는 사람으로 비치고 있다. 그들이 발휘한 탐욕과 음모는 세속의 수준을 훨씬 능가했다. 그런 마음, 그런 얼굴로 아무리 부처님을 대한들 그것이 무슨 구도이며 중생제도가 될 것인가 싶다.

언젠가 나는 나의 친구이자 불교계의 고승으로 꼽히는 스님과 식사를 할 때 이렇게 말하면서 맥주를 권한 적이 있다. “괴로운 세상의 중생이 마시는 것을 성직자라고 해서 피한다면 누구를 위한 불교란 말인가.” 그러자 그는 금방 내 말을 받았다. “속(俗)을 모르고서야 어쩌 승(僧)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맥주잔을 함께 들었다.

세속 뺨치는 종교인의 반윤리성
그때 나는 성경에 나오는 의인 야고보의 말을 떠올렸다. 신약 성서의 <야고보서>를 쓴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열두 지파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저런 세속에 물들지 말도록 간곡히 당부하였다. 하지만 세속을 떠나라든가 속인을 멀리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불교에서 탈속이나 환속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 몰라도, 세상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속물적인 요소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 곧 종교의 소임이라는 점에는 기독교나 불교나 인식이 같을 줄 믿는다.

다시 야고보의 말을 빌리자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닌 죽은 믿음이며, 도(道)를 듣기만 하고 행하지 못하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오늘의 조계종 싸움을 촉발한 승려들의 전력이나 지식이나 수행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에 드러난 그들의 ‘행함’은 세속을 뺨칠 만큼 반윤리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총무원장 자리를 3선까지 욕심을 낸 것이나, 주지 등 승직 임명을 둘러싸고 돈과 관련한 추문을 남긴 것이라든지, 수많은 폭력배를 동원해서 사찰 안에서 난투극을 벌이게 한 일 따위는 한국 불교의 수치스런 한 단면을 발가벗겨 보여준 셈이었다. 그렇게 감투와 돈과 세도에 연연하려면 무엇 때문에 승문에 들어갔는지 묻고 싶다.
세속을 능가하는 그런 탐닉보다도 더 큰 과오는 그들의 절묘한 술수와 거짓말에 있다. 대구 동화사 대불 건립비로 내놨다는 80억원의 행방과, 조계사 난투에 투입한 폭력배 동원 등에 관해 앞뒤가 맞지 않고 이치에도 어긋나는 말장난을 듣노라면 그저 분노와 실망을 주체하기가 어렵다.

80억원 정치자금설에 정말 떳떳한가
다음으로, 권력과의 검은 유착이 한국 불교를 병들게 했다는 점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겉으로는 정교 분리를 내세우고 뒷전에서는 불륜으로 밀착되어 왔다.
일부 종교계 인사들의 권력지향성 때문에 집권 세력과의 이면 유착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군사 독재 정권에 아부하는 성직자가 기독교계에서도 나오고 불교계에서도 나왔다.

돈이나 표를 매개로 하여 권력과 종교가 ‘상부상조’를 해왔다. 오늘날의 조계종 사태도 근본 원인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기에 시줏돈 80억원의 대선자금 유입 혐의에 대해서도 조계종측 관계자의 말은 뒤죽박죽인 데다가 검찰 또는 이상하게도 서둘러 덮어 두려고만 한다. 민자당은 80억원 정치자금설에 대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상대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마침내는 대선자금을 들추기로 하면 민주당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80억원을 두고 켕길 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정부와 민자당이 조사를 회피하면서 거듭 책잡힐 소리만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흔히들 위기는 곧 호기라고 한다. 2천여 스님이 뜻을 같이한 지난 10일의 전국 승려대회는 한국 불교사에 그야 말로 역사적인 큰 획을 그었다고 할 것이다. 이번의 조계종 사태를 통해서 불교계가 바로잡히고 정 · 불간의 불륜 관계도 끊을 수 있다면 그것은 차라리 무량한 복과(福果)요, 은총이 될 것이다. 세상에 의미 없는 불행은 없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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