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아버지가 될 수 없다”
  • 편집국 ()
  • 승인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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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 회견이 발췌


 페이군 태형 선고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뉴욕 타임스>는 4월 11일자 의견(Op-Ed)란에 서양 문화와 법에 관한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의 독특한 시각을 담은 글을 실었다. 이 글은 《포린 어페어스》봄 호에 실린 파리드 자카리아 편집장과 이광요 전 총리와의 회견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주요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편집자>

미국이 다른 나라의 모범국이라 보는가?
미국에 대해 늘 경탄했던 점은, 사회의 찬반 문제에 대한 토론 문화가 열려 있으며, 공무원의 책임 정신이 강하고, 공산 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비밀성과 공포 문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사회는 총기사고·마약·극악 범죄와 공개적 풍기 문란 등 각종 문제로 얼룩져 있다. 다시 말해 문명 사회와 와해를 보는 것 같다. 각자가 자기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권리를 확대하면 사회 질서를 해치게 된다. 동양에서는 우선 질서정연한 사회를 이룩한 다음에 각 개인이 최대한의 자유를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 목표다.

오늘날 미국에 무엇이 잘못됐다고 보는가?
아마도 사회의 도덕적 기반과 각 개인의 책임 의식이 크게 약화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2차 대전 후 생겨난 자유주의적 사조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보장해줄 때 모든 사람이 풍요해지는 ‘완전 국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조는 실패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일정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인간은 선악에 대한 어떤 도덕적 감각을 필요로 한다. 서양인들은 사회에 대한 윤리적 기반을 포기한 채 훌륭한 정부라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특정 사회 체제를 다른 사회 체제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정치 및 경제 발전 모델로서 ‘아시아식 모델’이 있다고 보는가?
굳이 아시아식 모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시아 사회는 서양 사회와는 다르다. 동아시아 사회는 각 개인이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가족은 확대 가족의 일부이며, 그 다음에 친구가 있고, 더 나아가 사회가 있는 것이다. 2차대전 후 구미 각국 정부는 탁월한 기능을 발휘해 가족이 하지 못하는 책무까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방식은 대체 가족을 생산해내 마치 정부가 아버지 없는 아이의 아버지 노릇까지 할 수 있는 양 홀어머니를 양산했다. 이는 동아시아인 인 나로서는 피할수 밖에 없는 헉슬리 식의 무모한 방식이다. 그런 방식을 채택한 결과가 어떠한지는 서양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나는 그런 결과를 달가워하지 않으며 이는 대다수 동아시아인도 마찬가지라 본다. 가족이야말로 사회의 초석이다.

당신 같으면 미국이 지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우선 사회 질서를 회복하겠다. 총기·마약·극악 범죄는 모두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다음으로 학교 교육을 제대로 시키겠다. 학교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교육을 받을 수 없다. 교육을 엄격하게 해 한 세대를 이끌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춘 생산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 그러기 위해 나는 우선 한 개인을 그의 가족·친구·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살펴보는 기초 작업부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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