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라기 공원’은 만들 수 없다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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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에 모든 정보 실려 있지 않아 … 생물 형태에 관계할 뿐 자기 복제 불가능


공룡의 디옥시리보 핵산 (DNA) 부호를 모두 밝혀냈다고 하자. 영화에서처럼 공룡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을까. 미국에서 최근 발행된 《혼돈의 붕괴(The Collapse of Chaos)》(잭 코헨·이언 스튜어트 공저)는 DNA가 생명체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음은 미국의 과학 전문지 《디스커버》 4월호에 실린 ‘유전자가 모든 것은 아니다’에서 뽑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공룡이 멸종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공룡이 우리에게 주는 그 압도적인 느낌은 대단한 것이다. 얼마전 큰 인기를 모은 영화 <쥐라기 공원>의 발상은, 공룡의 피를 빨아먹고 호박에 갇혀 죽은 벌레의 피에서 얻은 DNA를 재조합해 공룡을 되살려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떨까.

 93년 중반 미국의 한 연구팀이 1억2천만년 전 곤충 화석으로부터 DNA를 추출해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쥐라기 공원>을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들뜨게 했다. 점보 여객기를 기계 설계도의 공간적 발현으로 보듯 유기체를 DNA 부호의 공간적 발현으로 보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DNA를 유기체의 정보망으로 보는 시각은 일반 대중과 언론 사이에 광범하게 펴져 있다. ‘게놈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작업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과학자들도 이러한 믿음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DNA는 유전 정보를 담은 끈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길수록 담고 있는 정보의 양도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바둑이는 네 발 동물이다’라는 말이 ‘바둑이는 개다’라는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포유류의 DNA는 양서류의 그것보다 더 적은 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DNA를 정보로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DNA를 유전 정보로 보는 생각은 ‘진화론적 수렴 현상’과도 잘 맞지 않는다. 익룡 · 곤충 · 새 · 박쥐의 예에서 우리는 다른 원인이 같은 결과를 낳는 경우를 본다. 날개는 이 동물들에 공통적인 기관이지만, 이 피조물들은 날개를 만들어내는 공통된 DNA 염기 서열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가 하면 단일 종 내에서는 뚜렷한 수렴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개구리는 수온 변화가 무쌍한 연못에 사는 올챙이에게 발달한다. 개구리 DNA에 담기 유전 정보의 많은 양은 우발적인 온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어서, 올챙이가 맞닥뜨리는 온도가 어떻든 그 결과는 개구리인 것이다.

 요즘 우리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DNA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둘러싼 하드웨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DNA가 아닌 다른 것들도 생화학적 수준에서 정보들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지만, 보통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암수 구별이 있는 대다수 생물의 알 세포는 배(胚 · embryo)자체의 유전자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다. 다양한 온도 수준에 따른 선택적 효소 통로를 가진 개구리 DNA와는 달리 포유류의 자궁내 온도는 항온상태가 유지되므로 개구리만큼 많은 정보를 DNA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 이것은 왜 포유류의 DNA가 양서류의 그것보다 염기 서열이 적으면서도 훨씬 더 복잡한 동물을 생산하는지 설명해주는 근거가 된다.

 유기체를 부화하는 DNA 대신 음악을 부호화하는 콤팩트디스크(CD)를 생각해 보자. 생물학적인 발생은 완전히 새로운 콤팩트디스크 플레이어를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를 지닌 콤팩트디스크와 같다. 그러나 새 플레이어이 품질은 부호화한 정보의 질뿐 아니라, 콤팩트디스크를 읽는 기계의 품질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보자. 하나는 표준적인 플레이어다. 이것은 콤팩트디스크에 담긴 디지털 부호를 엔지니어의 의도대로 배치한다. 다른 하나는 동전 투입식 연주 장치인 주크박스이다. 주크박스는, 거기에 돈을 얼마간 넣고 선택 버튼을 누르면 그 곡목을 연주한다. 주크박스에 보낸 신호는 돈과 번호뿐이다. 그런데도 주크박스 안의 주변기기에 의해 그 신호가 녹음된 음악으로 연결된 것이다.

아기 공룡 만드는 것은 어미 공룡뿐
 주크박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복잡성은 그 생명체의 DNA 염기 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DNA 신호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가 발현하는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의 손을 예로 들자면, 손의 발생은 골격 · 근육 · 피부 따위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각 단계는 모두 생명체 내 DNA 주변 메커니즘의 물리적 · 화학적 · 문화적 과정에 의존한다.

 과학자들은 DNA의 복제를 원형의 자기복제 시스템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DNA는 ‘스스로’ 복제하지 못한다. DNA를 시험관 안에 두고 자기 복제를 기다리는 것은,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그것이 그 자체를 복사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 복사기가 필요하듯이, DNA는 제 기능을 충분히 다하는 세포가 필요한 것이다.

 아직도 모든 것은 오직 DNA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대답은 ‘노’이다. 애벌레는 나비와, 구더기는 파리와, 인간의 배(胚)는 그가 결국 그렇게 될 할아버지와 똑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발생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여기에는 DNA에 쓰여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DNA는 어떤 유기체의 형태를 결정해주는 유일한 결정 인자가 아니지만 생명체의 형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같은 종에 속한 두 유기체간의 형태상 차이가 DNA 서열의 매우 특정한 부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많은 사례가 있다. 예컨대 선천성 색소 결핍증이 있는 쥐에서 티로시나제라는 효소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데 반해, 색깔 있는 쥐에서는 제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공룡을 되살리는 것은 어떤가. 짧게 말해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공룡 DNA가 곧 공룡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다만 공룡을 ‘규정’할 뿐이다. 아기 공룡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어미 공룡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매머드는 어떨까. 우리는 어미 매머드를 가지지 못했지만, 살아 있는 어미 코끼리가 있다. 되지 않을까. 얼어붙은 매머드는 시베리아에서 발굴할 수 있고 필요한 DNA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매머드의 DNA를 코끼리에 주입해도 그것들은 여전히 코끼리일 뿐이다.
金相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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