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목공’은 보수 회귀 신호?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4.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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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치 이용 의혹...“즉흥적 대응 아닌 장기적 통일 대책 절실 ”

 이회장 총리 퇴진을 전후한 최근 여권 내부 동향은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 벌목공 수용 방침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김대통령이 남북관계와 내정에서의 부진을 만회하는 방편으로 북한 인권 카드를 꺼내들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벌목공 수용 방침은 당과 내각 등 범여권의 충분한 협의와 준비 없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총리는 4월21일 “북한 벌목공 수용 대책이 내각 차원에서 구체적 시책이 확정되기도 전에 언론에 공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청와대가 주도하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운영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 발언은 ‘통치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이총리 경질로 이어졌다. 그밖에 또 다른 증거가 있다. 4월22일 민자당사에서 열린 외무관계 당?정회의에서 정재문 의원과 박정수 의원은 “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당과 전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루 추진할 수 있느냐”라며 외무부측을 질타했다. 그렇지만 외무부 역시 충분한 준비를 했던 것 같지는 않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홍순영 외무부 차관을 “ 벌목공 문제는 일도양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국제 문제가 얽혀 있어 신중히 해결해야 한다”라며 외무부가 벌목공 수용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었다.

 사실 김대통령이 4월6일 ‘북한을 자극할것’을 우려하여 벌목공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지 불과 1주일 만에 입장을 완전히 바꿔 수용방침을 천명한 배경은 아직 베일게 가려 있다. 이에 대해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 대통령의 원래 뜻은 안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탈북 사태에 ‘우려’를 표시한 것일 뿐이었다. 내면적으로는 수용할 뜻이 있었고 실무 검토 과정에서 이를 확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자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마디로 대통령이 새로운 보고서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단정했다. 대통령이 다른 쪽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보수진영 목소리 힘 얻기 시작했다”
 이 의원의 말처럼 정가에서는 벌목동 대책은 김대통령이 ‘보수적 개혁노선’으로 통치 노선을 전환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디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대통령의 보수 회귀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라고 말하고 그 대표자로 박관용 비서실장을 지목했다. 박실장은 신설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 ‘대통령의 분신’자격으로 참가하여 그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 정부 곳곳에서 보수화 경향이 눈에 띈다. 대검 공안부는 4월20일 대검 청사에서 노동부?상공자원부?경찰청 등 관계부처 실?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산업 현장에 침투한 좌경 세력 색축’방침을 정했다. 이 북도민회 중안연합회는 4월15일 문민 정부 아래‘각계에 침투한 김일성 부자 추종세력’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다. 6공 시절 부한 관련 서적을 발행한 출판인이 이제야 구속되기도 했다. 또 김대통령은 이회장 총리 후임으로 대북 강경노선을 주장해온 이영덕 부총리를 총리로 임명했다.

 이에 대해 여권 사정에 밝은 한 국제정치 학자는 “ 김영삼 정부의 ‘색깔’문제를 제기해 온 부수 진영이 목소리가 드디어 힘을 얻기 시작했다”라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안기부?경찰청?기무사등 공안기관들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래 새 정부에 참여한 재야 출신 인사들의 동향을 계속 감시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돌 동향 보고는 공식 보고 계통을 피해, 대통령과 독대가 쉬운 인물을 통해서 은밀히 전달됐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이회장 총리도 감시의 표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알수 없으나 안기부는
지난 2월부터 정치권에 대한 전반적 정보사찰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 김대통령은 최근 귀국한 측근 인사를 통해 북측에 정상회담 의사를 전했으나 북측이 냉담한 반을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따라 김대통령은 최근 귀국한 측근 인사를 통해 북측에 정상회담 의사를 전했으나 북측이 냉담한 반을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따라 김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과 당국자간 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 아래 인권문제를 정식 거론하며 맞대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벌목공 문제에 정치권은 무기력증 노출
 이같은 정황들은 벌목동 대책이 지지부진한 국내 정치 타개용이며,북한에 대한 김대통령의 즉흥적 대응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정치권이 벌목공 문제에서 무기력증을 멋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때문에 정작 중효낭 장기 대책이 뒤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벌목공 처리 문제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다. 4월14일 한?러 외무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바르면 이달중 벌목공 일부가 들어온 수 있을 것이다”라고 혔지만 현지에 정부조사단으로 파견된 최동진 외무부 제1차관보는 4월22일 “러시아 국내 사정으로 인해 적어도 6개월은 걸릴 것이다”라고 말해 정부가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북한 주민의 중국 탈주, 러시아에 있는 북한 벌목공탈주 등이 내포하고 있는 북한 급변 가능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도 “지금은 한하하게 통일방안 문제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 갑작스런 통일을 ‘당하게’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전면적인 통일 과정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는 북한에서 급변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평화계획?충무계획 같은 ‘급변 대책’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종합적 개념 속에서 야기되는 법적?odwjd적?문화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하는 형편이다. 민주당 남궁진 의원은 “ 만약 정부가 진정으로 북한 벌목공들의 인권과 안전을 걱정한다면 보다 은밀하고 실질적인 경로를 택했어야 했다. 벌목공 수용 방침을 발표하기 전에 최소한 중국?러시아 지역 여행자들의 안전 대책이라도 세웠어야 했다”라며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정권안보용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韓宗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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