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봉쇄 … 비상구 없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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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규제 · 계약조건 까다로워 ‘승인’별따기



지난해 9월 국산 장갑차가 최초로 해외에 수출됐다. 대우중공업이 만든 한국형 장갑차 K200 42대를 2천5백만달러에 말레이시아에 판매한 것이다. 80년대 초 미국 FMC사의 병력 수송용 장갑차를 참고해 만든 이 장갑차는, 말레이시아가 파견한 유엔 평화유지군의 주력 장갑차로 보스니아 분쟁 지역에서 활약했다.

74년부터 본격적으로 무기 수출을 시작한 한국은 미국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아 왔다. 제3국에 대한 무기 수출은 83년 3억달러로 최고를 기록한 후 계속 줄어들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아예 명맥이 끊기는 양상을 보였다. 83년은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미국 몰래 M16 소총을 팔았다가 들통이 나 혼쭐이 났던 해였다. 이보다 더 큰 사건은 6년 뒤에 터졌다. 89년 우리나라는 요르단에 얼마간의 방산 물자를 판매했다. 미국측은 수출품이 군복이라는 우리측 주장과는 달리 정밀무기 관련 소프트웨어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로써 10여 년간 중국을 포함한 제3세계 나라들 가운데서 3위를 차지했던 한국의 무기 수출은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미국이 우리나라의 무기 수출을 규제하는 법적 근거는 ‘무기 수출 통제법’과 ‘국제 무기이전 규제법’. 미 국무부의 사전 승인 없이는 제3국에 무기를 팔 수 없다는 이 법률에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교 협상을 통한 사전 승인 절차는 까다롭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국내 방산업체들은 81~84년 미국의 허가를 받아 수출하기도 했었지만, 85년 이후 미국의 승인 절차를 거친 수출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한국에서 생산된 미국산 무기의 제3국 수출을 원천 봉쇄한 미국 정부는, 기술을 도입해서 생산하거나 공동생산하는 무기의 수출에 대해서도 손을 쓰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생산한 무기를 다른 나라에 팔지 못한다는 점을 최초 계약 조건의 하나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방산업체들은 이런 규제들로 인해 M16이나 각종 박격포와 같은 기본적인 병기뿐만 아니라 비교적 경쟁력이 있는 K1 한국형 전차나 155㎜ 자주포 같은 제품의 수출도 규제 받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자국의 군사 기술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국내 방산업체들에게 비싼 로열티를 요구해 왔다. 84년 이후 양국 정부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지루한 협상을 계속한 끝에 89년 열린 21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 수출가의 8%를 로열티로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국측에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방산업체를 경쟁자로 여기는 미국 군수업체와 정부의 견제 앞에서 이 요구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방산업체의 한 임원은 “무기 수출이 거의 중단된 90년 이후는 이런 골치 아픈 요구조차 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남은 방법은 한국형 무기를 개발해 독자적으로 수출하는 길밖에는 없다. 한국형 장갑차도 95% 가까이 국산화했기 때문에 수출이 가능했다. 한·미 방산 협력에 정통한 미국 켄터키 대학 문정인 교수(정치학)는 “이 경우도 미국은 또다시 지적 소유권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한국형 무기에 채용된 미국 부품이나 기술에 대한 지적 소유권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제3국 무기 수출에 대한 규제는 한·미 두 나라 방산 협력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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