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는 ‘우파의 입’이었다
  • 도쿄ㆍ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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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복고 분위기 편승한 방위족 의원의 ‘계산된 망언’



 최근 일본에서 《침묵의 함대》라는 만화책이 큰 인기이다. 일본의 원자력잠수함이 미국과 옛 소련의 함대를 격파하고 연전연승한다는 내용인데, 이 만화는 단행본으로만 이미 천만부가 넘게 팔렸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그 원인을 분석한 비밀 보고서를 작년 4월에 작성했을 정도이다.

 취임 10일 만에 물러난 나가노 시게토(永野茂門) 전 법무장관의 역사 왜곡 발언은 이러한 일본의 복고 무드를 감안한다면 결코 ‘돌출된 발언’이 아니다.

 나가노 전 법무장관은 옛 일본 육사 출신으로, 패전후 자위대에 재입대하여 육상막료장 즉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옛 소련과 관련된 간첩 사건에 책임을 지고 80년 자위대를 퇴역한 그는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가 설립한 일본전략연구센터의 이사로 임명돼 ‘자주 방위력 강화’를 역설해 왔다.

 이른바 ‘군복 출신’인 그가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때 맺은 가네마루와의 인연 때문이다. 비례대표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된 그는, 그후 자위대 및 방위청 입장을 대변하는 ‘방위족 의원’으로 활약해 왔다.

 이러한 전력으로 볼 때 나가노 전 법무장관의 역사 왜곡 발언은 단순한 개인의 역사관에서 나온것이 절대 아니다. 그가 속해 있는 방위족 의원들은 이전부터 A급 전범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공식 참배, 도쿄군사재판에 대한 재검증을 주장하며 과거 역사에 대한 재평가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하타 내각 들어서자 “이 때다”
 과거의 전쟁이 아시아의 식민지 해방을 위한 ‘정의의 전쟁’이었다는 그의 발언도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일본의 보수계 <산케이 신문>은 나가노 발언이 있기 직전 ‘검증 斷罪사관’이란 시리즈 기사를 싣고, 그와 엇비슷한 과거사 재검증을 주장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과거의 전쟁은 구미 열강의 제국주의에 대항하기위한 ‘자위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이 신문은 “일본 민족의 전쟁은 인도네시아 민족을 위한 전쟁이었다”는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발언과 ‘버마 독립의용군이 일본군과 함께 진주했던 것은 버마인의 자랑이었다“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발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신문은 이어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태평양 전쟁‘이란 호칭은 도쿄군사재판 맹신자들이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나가노 전 법무장관의 발언이 단순한 개인 행동이 아니라는 정황 증거는 또 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는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과거의 전쟁은 침략 전쟁이었다”고 명백히 규정한 바 있다. 그는 또 김영삼 대통령과 가진 경주 회담에서 일본어 강제 교육, 창씨개명 등의 예를 들어 구체적이고도 솔직한 표현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사죄를 표명했다.

 그것은 역사 청산에 대해 인색했던 자민당 정권이 무너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발언들이다. 하지만 자민당과 그곳에서 분가한 신생당의 방위족 의원과 우파 의원들은 호소카와 그같은 발언들에 큰 불만을 품고 역사의 시계 바늘을 되돌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왔다.

 신생당이 주도하는 하타 내각발족은 바로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과거사 문제에서 적극 청산을 주장해온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가 연립정권을 이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생당 소속인 나가노 전 법무장관은 어떻게 보면 그러한 우파 집단의 ‘희생양’을 자처하고 등장한 일종의 확신범에 가깝다.

 <아사히 신문>은 5월7일자 사설에서 ‘나가노 법무장관은 일본의 국익에 큰 흠집은 냈다’고 논평했다. 즉 호소카와 전 총리의 ‘침략 전쟁 발언’으로 한국ㆍ중국 등 아시아 각국과 구축되기 시작한 신뢰 관계가 일시에 무너지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우를 범한 것은 한국의 외교 당국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가장 큰 속성인 ‘이중성’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사와 결별을 선언해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른바 ‘보통 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한 양날의 칼을 수시로 구사할 것이 틀림없다.
도쿄ㆍ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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