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 중국
  • 김도경 (럭키금성경제연구소 경제연구2 실장) ()
  • 승인 199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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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4~5년 전쯤 일로 생각된다. 국내 한 일간지가 ‘찬란한 과거, 비참한 현재, 무한한 미래’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관한 특집 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미수교국인 중국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찬란한 과거’와 ‘비참한 현재’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무한한 미래’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했던 기억이 난다.

 90년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 세계의 주요 경제 기관들은 중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다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은행은 2002년에 중국ㆍ홍콩ㆍ대만을 합친 대중화경제권의 실질구매력은 미국과 맞먹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가 연 9% 안팎의 성장세를 지속할 경우 2010년의 국민총생산(GNP) 규모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중국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의 발전에 대해 경탄을 거듭하면서 이러한 전망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세보다는 중국인들이 그토록 쉽게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

현란한 간판, 화려한 옷차림…관료들도 자신만만
 거리의 정경도 화려하게 바뀌고 있다. 거리는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고 활보하는 젊은이들로 인해 활력이 넘치고, 현란한 간판들이 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제 상해ㆍ북경ㆍ광주ㆍ심천과 같은 대도시  젊은이들의 옷차림은 서울이나 도쿄ㆍ홍콩 멋쟁이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동안 번 돈을 마구 쓰고 있다. 사회주의의 이념이 제법 뿌리박힌 사회에서 2~3년 전만 하더라도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돈을 쓰던 신흥 부자들이 이제는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고, 뽐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뽐낸다. 중국 사회는 이러한 졸부들을 용납하고 있으며, 수많은 젊은이가 새로운 졸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얼마 전까지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관료들을 이제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초라한 인민복 차림으로 나타나던 당 간부와 정부 관료들은 말끔한 신사복으로 갈아입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외국인들을 내려다본다. 이제 그들의 얼굴은 자신감이 지나쳐 오만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장가꾼 기질 되찾고 ‘오만해진 현재’
 물론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면서도 세계은행이나 《이코노미스트》가 전망한 대로 2010년에 중국이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 이유로 현지도부가 경제성장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정치ㆍ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 등소평 사후를 겨냥한 권력 투쟁,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갈등, 자치주 독립 움직임, 공해문제, 노사분규, 범죄, 마약 등 무한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제약 요인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수많은 정치ㆍ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 왔음을 상기한다면, 경제란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둘 때 주변 여건의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장해 나갈 힘을 갖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중국 경제는 멀지 않아 정치ㆍ사회적인 도전에 직면하여 성장둔화 같은 어려움을 겪기는 하겠지만 성장 활력의 근원을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지금 뛰고 있는 중국인들의 눈은 빛나고 있다. 과거부터 남선북마(南船北馬)를 이용하여 대륙 전체를 연결하여 장사하던 민족이 완전히 깨어났으니, 우리는 중국의 변화에 대해 좀더 긴장감을 가지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

 수교 이후 한ㆍ중 협력 관계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간다면 2000년대 중국 경제에 대한 우리 경제의 의존도는 현재 미국과 일본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합한 것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제 중국 특집을 다시 쓴다면 그 제목은 ‘찬란한 과거, 오만해지 현재, 과거를 되찾을 미래’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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