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들의 ‘자기 반성’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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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 총.학장들 ‘직선 폐단’지적…교수측 “부작용만 문제 삼지 말라”

해마다 여름이면 전국의 대학 총.학장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교육 현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세미나를 연다. 올해는 7월7일부터 사흘간 전북 무주 리조트에서 열렸다. 다른 때 같으면 그저 대학 총.학장들의 연례 행사 정도에 그쳤을 이 세미나가 올해에는 유난히 큰 관심을 끌었다. 행사 이틀째 되는 날, 국립 대학 총장과 사립 대학 총장이 번갈아 가며 대학 사회의 ‘뜨거운 감자’ 격인 총장 직선제 문제점을 정식으로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국 대학 총.학장들 모임에서 총장 직선제 문제가, 그것도 직선제로 선출된 당사자들에 의해 공식 거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총장 직선제가 토론 주제로 나온 것은 7월8일 분과협의회 토론 자리에서였다. 먼저 국립대협의회 발제자로 나선 강원대 문선재 총장이 말문을 열었다. 문총장은 “교수가 직접선거로 총장을 뽑는 제도는 대학을 비생산적선거 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총장 선거 때문에 교수 사회에 분파가 생겨나고 그것이 반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총장 후보 잘 모르면서 투표”

 문총장은 또 “직선제가 학내 인사에게만 유리해 훌륭한 총장 후보를 학내외에서 폭넓게 찾기 어렵게 되어 있고, 교수들이 총장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선거에 참가하기 십상이어서 입후보자들의 자질을 면밀히 검토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문총장은 개선 방법으로써 총장천거위원회 제도를 도입하거나, 국립 대학을 법인화해 이사회를 명실상부한 대학의 최고 의결기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립대협의회 발제자로 나선 경남대 박재규 총장의 발표 내용도 이와 비슷했다. 92년 12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이름으로 〈현행 대학 총장 선출제도에 관한 조사연구〉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는 박총장은 “각 대학의 총장 선출 제도를 살펴본 결과 총장 직선제가 원래 취지와 달리 대학 공동체의 분열.파당화.소집단이기주의를 조장하는 등 공통적으로 후유증을 드러냈다”라고 지적했다. 세미나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난 박총장은 “개인적으로 욕을 듣게 되더라도 문제점은 지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섰다. 물론 취지로만 본다면 직선제는 다른 어떤 총장 선출제도보다 훌륭하다. 그렇다고 그동안 누누이 말썽을 빚어온 직선제 폐단을 모른 척 넘어 갈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국.공립 대학이 사실상의 직선제를 실시하기 시작한 것은 87년 6공 정권이 출범하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지 국.공립 대학 총장은 교육부(문교부)가 낙점한 인물로 결정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대학 사회에 민주화물결이 밀어닥치면서 대학 교수들이 직접 총장을 뽑아 교육부(문교부)에 올려보낸 뒤 임명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교육부 마음대로’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교육부는 마침내 관련 법 조항까지 뜯어고쳐 총장 직선제의 앞길을 터줄 수밖에 없었다.

 국립 대학으로서 맨 처음 직선제를 실시한 곳은 전남 목포대(87년)이다. 그 뒤부터 총장 직선은 불길처럼 번져갔다. 먼저 국.공립대학을 살펴보면, 92년 대교협이 조사해 발표한 바로는, 조사 대상 35개 국.공립 대학 가운데 25개 대학이 직선제를 실시했다. 제도 도입 5년 만에 총장 직선제(추천위원회 추천과 선거후 정부 임명도 포함)는 조사한 전체 대학의 71%를 넘어설 정도로 널리 퍼졌다.

 사립 대학은 국.공립 대학과 양상이 조금 다르다. 세미나 발제에서 경남대 박총장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94년 현재 직선제를 실시하는 사립 대학은 전체 조사 대상 1백10개 대학 가운데 37%에 지나지 않고 아직도 전체 대학의 55% 정도가 재단에 의한 총장 임명이라는 옛날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사립 대학에서 총장 직선제 채택률이 낮은 까닭은 대학이 재단 소유이므로 재단이 총장을 골라 자리에 앉히는 일을 당연한 권리 행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립 대학의 경우에도 총장 직선제 채택 추세는 꾸준히 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구체저인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총장 직선은 92년 22%에서 94년 34%로 늘었다(도표 참조).

 총장 직선제를 채택하는 대학이 늘어남에 따라 이 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도 좀더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직선으로 총장을 선출한 교수들 자신이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극한 사태를 불렀던 국립 강릉대이다. 강릉대 교수들이 이참수교수를 총장으로 뽑은 때는 92년 2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정식으로 총장 직무를 수행하게 된 이총장은 채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퇴임 요구를 받게 됐다. 발단은 총장측이 교수들에게 했던 약속과 달리 기성회 예산을 교수회 승인 없이 마음대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총장과 교수의 전면적으로 번졌다. 강릉대 파문은 지난해 교육부 감사에까지 올라, 문제된 총장은 물론 전체교수의 90% 이상이 한꺼번에 징계 처분을 받는 대학 사상 유례 없는 조처로 마무리됐다.

 현임 총장의 이중 국적 시비로 아직까지 홍역을 앓는 연세대는 직선제 후유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선거 과정에서 송 자 총장 반대 진영에 참가했던 일부 교수와 동문은 92년 신임 총장의 이중 국적 사실을 들춰내 ‘총장이 되고서도 이중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므로 책임을 지고 즉각 퇴임하라’며 법원에 취임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 사건은 올해 총장측에서 총장선임 무효소송을 낸 교수 4명을 상대로 ‘예비적 반소 소송’을 냄으로써 절정에 올랐다. 연세대 사태는, 겉보기에는 ‘도덕성’ 시비이지만, 그 뿌리가 직선제 선거에 있다는 것을 양측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총장 직선제 후유증은 직선제 총장과 재단임명 총장이 동시에 나와 갈등을 빚은 경북 대구대, 직선제 문제로 총장을 교수가 고발한 삼육대 등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후보가 나온 단과대별로 교수 간에 편가르기 현상도 뒤따랐다. 대학 총장들이 직선제 자체를 반성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교협 산하 사립대협의회장인 민병천 총장(동국대)은 세미나 마지막 날 보고에서 “우리 총장들이 현행 총장 직선제를 완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의 분열과 반목을 가져오는 직선제는 어떤 식으로든 개선하자는 것이 전체 총장들의 견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직선제의 또 다른 당사자인 교수 사회가 총장들의 직선제 발언을 바라보는 입장은 사뭇 다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가까스로 쟁취해 이제 막 뿌리 내리기 시작한 총장 직선제를 조금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크게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지식인의 ‘자율 해결’능력 시험대 올라

 국립대학교수협의회 회장인 문승의 교수(부산대)는 “직선제를 실시한 지 6년밖에 안됐다. 실시 횟수도 많아야 두 번이다. 직선제의 문제점은 제도 자체에 있다기보다 운용의 미숙함에 있으므로 부작용만을 더 크게 고려해서는 안된다”라고 반론을 폈다.

 총장들의 문제 제기는 새로운 쟁점이 될 소지가 많다. 하지만 이번 대학 총.학장 세미나가 총장 뽑기 논의에 생산성을 더할 것은 분명하다. 직선제의 민주적 정당성을 전면 부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총장추천(천거)위원회를 통해 공채하는 방안, 재단이 총장을 지명하고 교수회의의 인준을 얻는 방안 등 새로운 대안도 나왔기 때문이다. 총장 직선제 개선 문제는, 이 나라 지식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자율로 해결할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시험장으로 떠오른 것이다.

朴晟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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