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재벌의 숨가빴던 53시간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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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망 직후 ‘대응 방안’긴급 작성…KOTRA 해외조직도 총동원

한국의 주요 방송이 북한 중앙생방송을 인용해 김일성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인 7월9일 12시 3분. 대한무역진흥공사(무역공사.KOTRA) 내의 E-메일 자유게시판 ‘일일 주요 정보’란에도 같은 뉴스가 떠오르고 있었다. 무역공사의 정보관리부가 관련 정보를 게시판에 실어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식은 바로 무역공사 전조직에 퍼졌고, 숨돌릴 틈도 없이 해외 조직망에 ‘김일성 사망에 대한 주재국의 방응과 움직임’을 보고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해외 조직의 전직원은 휴가를 자제하고, 24시간 비상 연락체제를 갖춰 두라는 지시도 함께였다.

“투자 대금 회수 못할지 모른다”

 비슷한 시각 삼성그룹. 삼성물산 특수지역팀과 삼성경제연구소 아주지역실을 중심으로 한 북한 담당자들은 전화통에 매달려 있었다. 수화기 건너편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삼성물산 북경지사의 실무자들로, 김일성 사망과 관련한 정보를 타전중이었다. ‘삼성물산과 거래하는 북한내 생산공장은 정산 조업중이며, 교역물자 조달도 이상 없다’.

 이 시각 북한과 교역하거나 합작투자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다른 기업들의 풍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남북 경협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일부 그룹 실무자들은 대북 수출이나 투자 대금을 회수할 수 없는 사태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주말에도 쉴 수가 없었다.

 중국과 일본의 거래선을 동원해 상황을 파악하려 했던 그룹도 있었다. 대북 교역과 투자 사업을 알선한 두 나라의 거래선들은 현지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북한의 체제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그 다음 임무는 각 그룹의 두뇌 조직에 해당하는 부설 경제연구소들이 맡았다. 대북 프로젝트에 관해 재빨리 판단해야 하는 경영진을 위해, 앞으로 북한 체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한 기초 자료를 만드는 것이 그들이 맡은 일이었다. 각 그룹의 계열사 사장단 회의는 대부분 7월11일로 예정돼 있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4대 그룹과 무역공사의 북한 관련 시나리오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들이다. 7월11일자로 나온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일성 사후 북한 세습체제의 향방〉, 럭키금성경제연구소의 〈김일성 사후 남북관계 전망〉, 대우경제연구소의 〈김정일 권력승계 이후 북한의 정책 변화와 남북관계 전망〉,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의 〈김일성 사후에 예상되는 국내의 정치.경제 변화〉가 그것들이다. 전날에는 이미 무역공사가 〈김일성 사망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김정일의 권력 승계 : 4대 그룹은 사태 발생 직후 김정일의 권력 승계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 이유로 삼성경제연구소는 ‘북한이 김일성 사망 사실을 신속히 발표했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장례위원장은 곧 후계자를 의미한다는 점’을 들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도 ‘북한내 김정일 반대파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원치 않고,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도 북한 체제의 안정을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유력하다고 보았다. 특히 대우경제연구소는 김정일의 내부 체제 정비 과정과 관련해, 94년 10월10일로 예정된 7차 당대회를 김정일이 정권 인수를 완료하고 이를 대뇌외에 선언하는 ‘D데이’로 꼽았다.

 삼성그룹 비서실은 지도자로서 김정일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분석했다. 강점으로는 20여년 간의 후계자 수업을 통해 실질적으로 당.군.정을 장악했다는 점을 꼽았다. 북한 내부에서는 그를 김일성의 아들로서보다는 김일성 사상과 노선의 계승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가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는 선전.선동 전문가라는 점이나, 국제 감각이 있고 유화적인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거론하고 있다. 약점으로는 혁명가로서의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혁명 1세대와 어느 정도 갈등이 있고, 군 경험이 없다는 점이 꼽혔다.

 반면 김정일 체제의 출범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무역공사는 ‘북한내 강경파들의 반발이 김일성 사망과 직.간접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이러한 점에서 김정일 체제의 출발은 단기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하다’고 내다보았다. 삼성경제연구소도 ‘김일성의 사인이 자연사가 아닐 경우 북한 내부의 정권 쟁탈을 위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내다보았다.

 럭키금성그룹은 북한내 정세 변화를 주도할 세력으로 세 집단을 주목했다. 첫 번째 세력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핵심세력으로 김일성의 친인척이나 노령의 빨치산 출신, 혁명 2~3세대, 3대 혁명 소조나 만경대 혁명학교 출신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테크너크랫(전문 관료) 중심의 급진개혁 세력으로는 모스크바 군사 유학파 출신 영관급 장교와 정무원을 중심으로 한 중간급 행정관료, 소련.동유럽 유학파들이 있다. 세번째는 당주체사상 이론가 집단이나 국가보위부.사회안전부 핵심 요원, 6.25 전쟁 고아 출신 군관, 군부내 핵심 정치군관과 같은 주체사상을 고수하는 극좌 수구세력이다. 초기 김정일 체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었다. 권력을 공유할 세력으로는 혁명 1세대 핵심 인사들이나 테크너크랫들이 꼽혔다.

 ■김정일 체제의 장래 : 각 그룹은 김정일 체제의 장래와 관련하여 다양한 시나리오(도표 참조)를 만들었다. 각 시나리오가 상정한 김정일 체제의 수명은 1~2년(현대경제사회연구원)에서 5년(대우경제연구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이다. 한 가지 공통점은 김정일 체제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집권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리라고 본 점이다.

 김정일 체제의 장래를 결정지을 변수들에 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리지만, 권력 투쟁의 향배와 경제난 해결, 세습체제에 대한 대외 인정과 대외 관계 개선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이 위기 관리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 불만 세력이 반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밑으로부터의 붕괴는 가장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북한의 하부 구조로 보아 힘을 결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므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았다. 동유럽처럼 민중 봉기로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김정일 정권이 무너진 뒤 권력을 장악할 세력에 대한 평가에서는 급진개혁파가 승리하리라고 점치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김정일 체제가 점진적인 개방.개혁 정책으로는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분석이다. 대우경제연구소는 ‘북한은 최소한 겉으로라도 핵개발을 포기하고 미.일과 수교해 경제 지원을 요청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김정일이 집권하고 나서 2~3년간 경제난을 해결하는 속도는 느린데 개방.개혁 정책에 따라 내부요구가 급속히 빨라지면 급진 개혁파가 세를 얻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럭키금성경제연구소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개방과 개혁의 물결을 막아내지 못할 경우 체제 유지 자체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90년대 후반에는 통일에 준하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았다.

 ■북한의 정책 변화와 남북관계 : 북한의 대내외 정책변화에 대해서는 4대그룹의 의견이 일치한다. 북한이 정권 안정차원에서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신속히 추진할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무역공사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김정일 체제가 들어서면 절대 권력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북한 내부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무역공사는 이에 따라 북한이 대외 문제에 대해 뚜렷한 정책을 내세우거나 활동을 할 수 없으며, 남북 대화가 재개되기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았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고조됐던 남북 경협 실시에 대한 기업체들의 기대는 무너지고, 남북 경협 문제도 출발점에서 다시 상당한 기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태가 된다’.

 삼성과 현대 그룹은 4대 그룹 가운데서도 미.북한 고위급 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시기를 가장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의 정권 인수 작업이 끝나는 대로 대외적으로 체제를 인정받기 위해 서둘러 제안해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남북 경협과 관련해서는 분석 기관이 모두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남북 교역이나 임가공사업은 핵 문제로 말미암아 긴장이 고조되던 상황에서도  별 차질 없이 진행된 전례에 비추어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대규모 합작투자 사업에 대한 논의는 당분간 유보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이 대남 정책 부서 조직정비를 끝낼 때까지 경협 진전은 힘들다는 것이 무역공사의 시각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정권 유지에 자신을 가지게 되면 점차 식량.생필품.에너지.외화난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 경협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경제연구소는 한국 기업들의 대응책과 관련해, 94년 7월부터 95년 초까지는 북한 체제 정비 상황을 보면서 교역확대나 남포공단 개발에 대비해야 하고, 95년부터는 북한의 4차 7개년계획에 기초한 사회간접자본 사업 참여와 생산시설의 북한 이전 계획을 수립하고, 북한의 건설이나 대규모 합작투자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97년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

 11일 오후 5시 다시 대우그룹. 해외 출장중인 김우중 회장이 빠진 상황에서 긴급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이 날 오전부터 시작된 주요 그룹들의 긴급 사장단 회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회의였다. 이 회의의 결론은 다른 그룹 사장단 회의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북 투자 사업의 방향이나 투자 자금회수 문제에 조급하게 대처해선 안된다. 이런 행동은 사업 파트너인 북측을 자극할 수도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북한 정세가 유동적이니만큼, 앞으로 생길 수도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김일성 사망 쇼크 이후, 길고도 길었던 이틀 반나절의 상황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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