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동화의 어울림
  • 이세용 (영화 평론가) ()
  • 승인 1994.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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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킹>

<라이언 킹>
감독 : 로저 앨러스
로브 밍코프

 디즈니사의 서른두 번째 만화 영화 〈라이언 킹〉은 90점을 받고도 성적이 나쁘다고 꾸지람을 듣는 학생과도 같은 작품이다.

 〈라이언 킹〉은 원작에 기대지 않고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따라 만든 디즈니사 최초의 애니메이션이지만,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한다는 자신들의 원칙을 잠시도 잊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대초원을 무대로 의인화한 동물들의 사랑.모험.투쟁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인류가 오랫동안 삶의 길잡이로 삼아온 영웅 신화의 교훈을 깔고 있다.

 드넓은 동물 왕궁의 귀여운 새끼 사자(심바)가 교활한 삼촌 사자(스카)으 꾐에 빠진다. 금단 구역에 발을 디딘 것이다. 사자왕(무파사)이 달려와 새끼를 위험에서 구하지만 대신 자신이 죽는다. 殺父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어린 사자는 죄책감에 못이겨 광야를 떠돌며 돼지처럼 천한 것들과 어울려 고민 없이 자란다. 그럭저럭 몇해가 흐르고, 청년이 된 사자는 자기 신분을 알게 된다. 심바는 단신으로 귀환해 악당 삼촌을 물리치고 왕국의 새 지도자가 된다.

 대물림하는 삶의 순환 방식과 삶의 뜻을 깨우쳐주려 애쓴 이 작품은, 특히 지도자가 될 운명(영웅)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우선 그 출발이 ‘영웅 신화’와 닮은꼴이다.

 어린 사자가 겪는 시련→소명에 대한 거부→귀환이라는 과정 역시 신화와 똑같다. 사막을 떠돌던 심바는 여우원숭이와 멧돼지에게 구조된다. 멧돼지와 어울리는 사자. 말도 안되는 이 어울림의 관계는 그 자체가 바로 시련이다. 죄의식에 쫓기고, 안락한 삶 속에 주저앉아 왕위 탈환이라는 소명을 거부하는 심바는, 그러나 아버지의 부관이었던 원숭이의 귀띔으로 야수왕의 본디 모습을 되찾고 귀환한다.

 〈라이언 킹〉은 이처럼 비극(슬픔)에서 희극(기쁨)에 이르는 뒤안길에 깔린 특수한 위험과 시련, 그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상으로는 신화와 동화의 고유한 사명을 완수한다. 그러나 〈인어공주〉에서 〈알라딘〉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애니메이션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라이언 킹〉의 그림은 호소력을 갖기 어렵다. 스카와 하이에나로 대표되는 암흑 세계의 동물과 배경 그림의 충실함에 비해, 대명천지에 등장하는 동물(특히 엑스트라들) 그림과 배경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 영화가 자랑하는 들소떼 추적 장면의 컴퓨터그래픽도 〈배트맨〉의 펭귄무리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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