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토대 위에 ‘우리식 사회주의’ 건축
  • 김훈 부장 ()
  • 승인 199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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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사상 궤적 / ‘종자론’으로 독자적 리얼리즘 틀 마련 · · · ‘생명체론’으로 체제 정당화

북한에서 김정일의 명의로 발표된 저작물(논문 · 연설문 · 저서등)은 모두 4백여 가지에 달한다. 그 중 한국통일원 등 관계기관에 전문이 입수되어 분석된 문건은 1백70여 가지이다. 김정일은 청년 시절부터 영화를 비롯한 문학 · 음악 등 문예 전반에 큰 관심을 보여왔고, 그의 문예지도자적 성향은 그의 유복한 환경에 의해 크게 고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던 64년 당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중앙정치무대에 등장한 후 72년 선전선동부장으로 승진했다. 이 기간에 그는 사회주의 문예 이론에 관한 68편의 문건을 발표했는데, 영화에 관한 문건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가장 주목받는 논문은 <영화예술론> (1973)이다. 이 논문에는 그의 주체문예이론의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자(種子)’에 관한 사상이 내비치는데, 그후 ‘종자론’은 여러 문건과 저술을 통해 체계화 · 이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 문예창작과 문예비평의 성서적 준거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종자론은 ‘민족적 형식 안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다’는 김일성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주체 리얼리즘은 전화시킨 예술관이다. 종자론은 모든 문예작품의 주제와 디테일들이 핵심적 사상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조직되고 관련을 맺어나가는 그 유기체적 연결의 미학을 강조한다. 《조선의 별》《민족의 태양》《불멸의 력사》 등 북한이 ‘불후의 고전작 명작’이라고 내세우는 소설과 영화 들은 모두 김정일이 <영화예술론>에서 제시한 원칙에 따라서 제작한 작품들이다.

 김정일은 73년 당 조직 및 선전선동 담당 비서로 승진한 후 80년 10월 조선노동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당내 제 2인자로 격상했다. 이 시기에 그가 발표한 문건은 주로 김일성 유일사상을 근간으로 한 국가지도노선 확립에 관한 글들이다. 이 무렵 그의 3대 혁명소조운동이 그의 권력 신장 기반이 되어 왔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 지도노선 확립과 주체사상 체계화에 관한 그의 글 중 가장 주목받는 논문은 82년에 발표한 <주체사상에 대하여>이다.

“동유럽 공산권 몰락은 지도자 탓”
 이 논문에서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으로까지 확대시켰다. 이 이론은 김일성 유일사상을 인간의 생물학적이고도 운명적인 조건에 연결시켜, 수령은 생명체의 최고의 뇌수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충성은 ‘절대적이고도 무조건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그후 북한이 소련 및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 앞에서도 자기 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사상적 근거가 되는 것인데, 이 근거 위에서 그들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건설하자’ 혹은 ‘우리 식대로 살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걸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은 또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에 관해서 논술할 때, 공산주의 자체가 갖는 구조적인 비능률성과 경쟁력 부족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다만 해당 국가의 관료주의 부패와 부도덕, 지도자의 덕성 부족과 리더십 결여, 또는 청년들의 혁명열의 부족 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결국 김정일의 사상적 궤적은 국내 정치에 관한 한 ‘우리식 사회주의’로 귀결되고 있다고 볼 수있다. 그 ‘우리식’이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이루어지는 ‘분배의 평등’과 그 사회의 ‘도덕적 · 사상적 우월성’에 대한 강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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