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이 배 곯으면 ‘궁중 반란’ 발생?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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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으로 동요 땐 김평일 등이 ‘거사’할 수도

정치 지도자로서 카리스마를 갈구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말은 원래 ‘(성령의) 은사(恩賜)’를 뜻하는 신학적 개념이다. 카리스마라는 말이 정치적 어의로서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은 독일의 사회 과학자 막스베버가 정치적 권위의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카리스마를 꼽으면서부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카리스마는 대중으로부터 심오한 정치적 충성심을 자아낼 수 있는 개인적 매력과 심리적 영향력을 뜻한다.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는 어떤 특정한 정책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의 개인적 매력을 통해 대중을 사로잡는다. 세계적으로 인도의 간디 전 총리, 이집트의 나세르 전 대통령, 독일의 히틀러가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꼽힌다.
 7월8일 사망한 김일성 주석도 이런 범주에든다. 2천만 북한 주민에게 그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을 넘어 신격화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 김정일은 어떠한가. 20년 전부터 후계 준비를 해온 그는, 예상대로 김일성 사후 북한을 이끌어갈 새 지도자로 떠올랐다. 문제는 김정일의 권력을 승계한 이후다.
 김정일이 국정을 이끌면서 직면하게 될 가장 큰 부담은 아버지가 누린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가 될 것 같다. 북한은 최고 통치권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金?? 교수(외교안보연구원 · 북한정책)는 “김정일은 아버지철검 카리스마도 없고 통치 경험도 없는 반면 해결해야 할 정치 · 경제 과제는 엄청나기 때문에 장기 집권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김정일 체제가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 하는 것은 그의 지도력뿐 아니라 군부의 확고한 지지와 중국의 지원이 필수라고 판단한다.
 김정일은 일인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권력 요소를 사실상 모두 확보한 상태다. 그는 일찌감치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 자리를 물려받아 군부를 장악했다. 따라서 아버지가 가졌던 국가 주석과 당총비서 직까지 차지하면 당 · 정 · 군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특히 당과 정무원 부장급 이상 핵심 인물의 90% 이상이 과거 김정일 후계 체제에서 승진해온 사람들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일 체제를 견고하게 지탱해갈 인물들로는, 군부에서는 혁명 1세대에 속하는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최 광 총참모장, 이을설 호위총국장을 들 수 있다. 특히 오진우는 사실상 김정일의 핵심 후견인으로 추정된다.
 당에서는 당비서인 계응태를 들 수 있다. 탁월한 정보 수집가인 그는 김정일이 82년 2월 인민무력부 특수부대를 이끌고 반김정일편에 섰던 김병하 국가보위부장을 제거할 때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김일성 종합대학 철학교수 출신으로 주체사상 이론가이자 노동당 사상담당 비서인 황장엽도 김정일 사람이다.
 김정일지지 인맥 가운데 혁명 2세대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한성용 · 전병호 당비서와 옥그렬 당 작전부장이다. 특히 오부장은 김일성의 빨치산 ehdf로서 32년 전사한 오중홉의 아들이며, 79년 군참모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군 현대화 노선을 놓고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알력을 빚은 뒤 해임돼 현재으 직책을 맡고 있다. 김용순 당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도 김정일 시대의 핵심 인물로 볼 수 있다.
 주요 핵심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는 김정일의 인척 가운데 특히 주목할 인물은 장성택이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그는, 노동당 근로단체부장과 3대 혁명소조 부장을 겸하고 있다. 김정일은 평소에도 그에게 “믿을 만한 사람은 너밖에 없다”라고 할 정도로 신임이 두텁다. 그러나 친인척 관계에 있는 강성산 정무원총리는 김정일과 다소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일의 지도력 시험할 3대 장애물
 이처럼 당 · 정 · 군 등 국가의 3대 권력 기관 곳곳에 포진해 있는 포진해 있는 광범위한 인맥으로 볼 때 김정일 체제는 현재로선 안정돼 보인다. 그런데도 김정일 체제가 백% 확고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무엇보다도 김정일 자신이 통치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김정일은 올 들어 공식 활동을 여섯차례 가졌으나 실질적인 통치 행위라 할 수 있는 ‘현지 지도’나 외빈 접견 활동은 한 차례도 없었다. 과거 현지 지도 빈도를 보아도 90년 1회, 91년 1회, 92년 7회, 93년 1회 등 정치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실질적인 국정 활동은 미약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일의 지도력을 시험할 요인은 크게 세가지다. 가장 큰 요인은 몇 년째 지속돼온 경제난이다. 다음은 미국과의 핵 문제다. 마지막으로 체제 내부에 잠복해 있는 반김정일 세력이다. 북한은 93년에 끝난 제3차 7개년 경제계획 결과 모든 기간산업 분야의 가동률이 평균 50%에 불과해 경제 파탄 상태이다. 특히 몇 년째 계속돼온 식량난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목표량은 1천5백만t이었지만 실제 생산량은 5백만t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평양에서만 2~4주 쌀 배급이 중단되는 일이 자주 빚어지고 있다. 김정일이 식량난으로 비롯한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집단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핵 문제의 타결 방향도 김정일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제는 군부가 핵개발을 대미 협상용 ‘정치 무기’가 아닌 군사 무기로 간주하고 끝까지 개발 집념을 버리지 않을 경우다. 이 때는 김정일도 군부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경우 미국과는 또다시 대치 국면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국면은 김정일 체제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것이 확실하다.

김영주 · 김성애 · 김평일의 선택
 경제난과 핵 문제가 직접적으로 노출된 위협 요인이라면, 김정일의 계모인 김성애, 숙부인 김영주, 김성애의 장남인 김평일 등은 일단 반김정일 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김정일에 의해 한 때 핍박받고 강제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잇다. 따라서 김정일 체제가 동요를 보이면 언제든 ‘궁중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이 가운데 김성애의 장남으로서 군부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는 김평일은 이복형인 김정일이 가장 견제하는 인물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김정일이 중장기적으로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군부내 개혁파 엘리트가 전문 관료 집단인 테크너크랫과 연합해 집단지도체제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이들 세력은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미국 및 일본과도 관계를 개선해 원조를 이끌어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가정은 어디까지나 김정일 체제가 붕괴했을 경우를 상정한 것으로, 현재로서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김정일의 지도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김일성 생존 때와 별 차이가 없을 경우 군부에 의한 것이든 민중 봉기에 의한 것이든 김정일 체제는 장벽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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