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장관, 밑져야 본전?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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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사무총장 선출 가능성 낮지만 ‘UR에 대한 이해’ 높이는 효과

외국이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의 최대 수혜자로 한국을 지목하는 데 반해 국내의 평가가 너무 나쁘다고 불평하는 통상 관료들은, 이제 전혀 다른 차원에서 국내외의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데 대해 놀라고 있다. 지난 6월22일 김철수 상공부장관이 내년에 출범할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입후보한 것에 대해 국내 여론은 들떠 있으나 외국인들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냉담하다.

 7월1일 열린 외신 기자들을 위한 기자간담회가 좋은 예였다. 이 기자간담회에는 주한 일본 특파원 몇몇만 관심을 보였을 뿐 분위기가 썰렁했다. 같은 날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날을 잘못 골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우리는 김장관이 입후보한 것을, 김장관 개인이나 정부 관료들, 심지어는 한국인들보다도 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통신사의 한 기자는 한국인이 새로 출범하는 무역 기구의 리더가 될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유럽 · 중남미 후보 난립 · · · 틈새 노려
 반면 한국인을 세계무역기구 초대 사무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물밑 작전을 진행중인 한국 정부, 특히 외무부와 상공부의 분위기는 이들의 평가와는 크게 다르다. 두 부처의 발상은 출발부터 매우 ‘진지함’을 띠고 있다. 김장관 자신은 물론 재외 공관은 회원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초대 사무총장 자리를 확보한다는 발상은 당초 외무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관가의 정설이다. 외무부는 사무총장 후보를 낸 나라들에서 자국 후보를 밀어달라고 요청해 온다는 현지 한국 공관의 보고를 받았는데, 간부회의 석상에서 ‘아예 우리가 후보를 낼 수는 없느냐“는 얘기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 후보가 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을 가늠해본 것으로 알려졌는데, 참석자들은 유럽과 중남미 세가 대립한 데다 중남미는 후보 단일화마저 이루지 못해 한국에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경쟁 세력의 분열외에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사무총장 직을 독점해온 유럽 유력 인사들의 관심이 크게 분산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올해는 유럽집해위원회 총재 자리를 포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 서유럽연합(WEU)등 비중있는 국제 기구의 고위직 ‘매물’이 쏟아진다.

 현재까지 사무총장 입후보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김장관 외에도 카를로스 살리나스 멕시코 대통령, 레나토 루기에로 이탈리아 전 무역장관, 루벤스 리쿠페로 브라질 재무장관 등이 있고, 필립 버든 뉴질랜드 무역장관도 비공식으로 입후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입후보자 최종 정리 시한인 7월15일이어서, 그 때까지 입후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개발도상국에 기대 걸어
 외무부는 왜 갑자기 국제 기구에 실무 책임자를 앉혀야겠다는 전에 없던 발상을 하게 됐을까. 물론 새로 출범하는 세계무역기구의 중요성 때문읻. 이 기구의 사무총장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한 해 6천8백만 달러(5백44억원)의 예산을 쓰고, 전문 인력 1백75명이 근무하는 직장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47년 간의 진통 끝에 탄생한 막강한 국제 무역 기구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기구에 한국인 전문 인력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탓에 한국은 그동안 다자간 무역 협상에서 무역 규모에 걸맞는 영향력을 행사해 오지 못했다는 평을 들어 왔다.

 설령 사무총장이 되는 데 실패하더라도 입후보 행위를 통해 세계무역기구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더구나 정부는 곧 우루과이 라운드 최종 협정을 비준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국내에서 독자 후보를 내자는 아이디어는 손해를 볼 것이 별로 없음이 분명했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사무총장 후보를 냄으로써 세계 여러 나라, 특히 사무부총장 직을 노리는 일본이 허를 찔렸다”라고 자찬했다.

 외무부가 ‘옹립’할 만한 후보는 자연스럽게 김철수 상공자원부장관으로 좁혀졌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박사 학위까지 미국에서 취득한 그는, 영어 실력이 뛰어난 데다가 통상 분야에서만 20년 이상 종사해 왔다. 73년 상공부 서기관으로 특채된 그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전과정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87년부터 4년간 다자간 무역협정(MTN) 협상그룹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올해 4월 마라케시에서 열린 각료급 회담에서는 아시아 대표로 임시 의장을 맡았다. 풍부한 실무 식견과 경험 외에도 그는 국제 사회에서 통상 관련 전문가들에게 신사로 통한다.

 한국은 같은 처지의 개발도상국에 기대를 걸고 있다. 회원국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그들에게 강대국보다는 약소국이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약자의 처지에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우리가 ‘정직한 중개자’임을 자처하는 선거 전략이다. 상공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 소련이 유엔 사무총장을 독점해 오지는 않았다. 한국이 아 · 태경제협력각료회의(APEC)에서 무역투자위원회(TIC) 의장국이 될 줄 누가 생각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부자 나라 중심의 기구라는 성격을 벗어나고 있는 세계 무역기구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과는 달리 회원국이 똑같은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장점이 있다.

 그러나 연말까지로 예정된 사무총장 선출전에서 한국 후보가 유력해지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사무총장은 안드라스 체페 가트 총회 의장이 주도하는 회원국의 합으 l과정을 거쳐 선발되는데, 이 과정이야말로 정치가 은밀히 판을 치는 단계다. 벌써 미국은 살리나스 후보를 지지하고, 유럽 국가들은 루기에로를 지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미국과 유럽 회원국들에게 한국은 아직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극렬히 반대했던 이력을 가진 보호무역주의 국가라는 평판을 듣고 있다. 한국 정부의 기대처럼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을 지지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김철수 상공부장관의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입후보는 그 결과에 상관 없이 한국이 국제 기구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늘려가고 있음을 반영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 통상 관료들의 활약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제 기구내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허 근 전 제네바 대사는 굵직굵직한 기구의 후보감으로 거론됐었고, 선준영 현 외무부 차관보만 하더라도 가트의 하부 위원회 가운데 가장 조정이 어렵다는 상계관세위원회 의장을 역임하고, 섬유류 수출 개도국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국제 기구의 실무 직에 근무하는 한국인도 점차 늘고 있다. 외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무부는 최근 국제 기구의 한국인 전문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석 · 박사급 이상 전문 인력 40여 명으로 풀을 만들어, 매년 2,3명씩 지원하게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 정부의 이런 노력에 대해 유럽계 신문의 서울 특파원은 “한국 정부는 확실히 세계무역기구 출범을 계기로 국제 기구에 야심적으로 참여하려는 것 같다”라고 평하면서도, 실제로 그럴 능력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의 솔직한 대답은 “아직까지 한국은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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