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탄두”에 가려진 특급 정보 많다
  • 김당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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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자 기자회견에서 밝혀진 ‘6대 기밀’정밀 분석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강명도·조명철씨 합동 기자회견(7월27일)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이후 첫 귀순 회견인 데다 강씨는 북한 권력 서열 3위인 강성산 총리의 사위이고 조씨는 정무원 건설부장(장관)을 지낸 조철준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김주석 사망 이후 어쩌면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정보를 쏟아버린 데다 북한 정권의 사실상의 국경폐쇄로 인해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조문론, 주사파 배후설 같은 ‘곁가지’에만 매달려온 터이므로 언론의 관심은 컸다.

 기자회견 다음날〈한겨레 신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매체는 강씨의 말을 인용한 ‘북한, 핵폭탄(핵탄두) 5개 제조(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 기사로 실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자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조선일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전날의 보도 내용에 대해 스스로 의혹을 제기했다. 과연 핵폭탄 또는 핵탄두 5개 제조(보유)설이 근거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대북 정보관리의 혼선과 한·미 공조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정부(또는 국가안전기획부)가 ‘미묘한 시기’에 회견을 주선한 것과 관련해 북·미 3단계 고위급 회담에 찬물을 끼얹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북한 언론도 강씨의 회견 내용을 전면 부정했다. 평양방송은 “거액의 공금을 횡령한 인간쓰레기”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일축했다. 공금 횡령 주장은 일부 설득력이 있다. 강씨 자신도 밝혔듯이 그는 중국에 머무는 동안 중국에 판 강판과 중고 자동차 결제 대금을 제때에 회수하지 못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대금 착복 의혹을 받았다. 자본주의를 쓰레기 취급하고 외국인과의 무분별한 접촉을 금하는 북한 사회의 기분으로 보면 강씨는 조국을 배반한 ‘인간 쓰레기’인 셈이다.

 그러나 강씨는 확인할 수 없는 핵폭탄 첩보로 국내외적으로 ‘말썽’을 일으켰지만 더 없이 요긴한 최신 고급 정보도 제공했다. 다만 언론이 ‘핵폭탄 5개 보유’같은 확인할 수 없는 첩보에만 주목했을 뿐이다. 강씨는 오진우 인민무역부장이 타고 다니는 벤츠 자동차 번호(211-5555)같은 구체적 정보에서부터 북한 경제난의 주요 원인이 팀스피리트 훈련이고, 한국 정부는 이 훈련을 방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정반대로 공격용으로 받아들이고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핵 개발 목적은 군수공장을 민수용으로 바꿔 경제난을 해소하고 미국의 공격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방어용이라는 점 등 대북 정책의 기조를 바꿀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를 테면 이같은 정부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더 강화해 경제난을 가중시켜 붕괴를 앞당길 것인가, 아니면 이 훈련을 중지해 북한의 숨통을 터주고 불안감을 해소시킴으로써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 것인가 하는 정책기조 결정의 중요한 근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두 사람의 회견에서 처음 밝혀진 새롭고 색다른 시각이 담긴 내용만 간추린 것이다.

반체제 지식인 그룹 있다

 두 사람의 귀순 동기는 여느 귀순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 다 김정일 체제 및 김정일 개인에 대한 반감을 들었다. 다만 김정일의 지시로 18호 관리소에 수용된 적이 있는 강씨에 비해 순탄한 길을 걸어온 조씨는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확신을 귀순 동기에 덧붙였다. 특히 조씨는 두고온 가족과 친지들이 자신의 귀순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주목할 만한 대답을 했다. 조씨는 이 곤혹스런 질문에 대해 “부인과 아들이 하나 있다”라고 전제하고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행위가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이고 “다만 저 하나 잘 살자고 여기 왔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조씨는 또 부모·처자와 제자들이 다 거기에 있는데 북한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들로서는 “왜 함께 남아서 투쟁하지 않고 혼자만 잘 살자고 남조선으로 갔느냐”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씨가 말하려던 핵심은 “북한 체제를 인정하건 부정하건 나에 대해 좋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런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김일성대학 교원으로 있을 때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제자들을 접했고 비록 조직화한 것은 아니지만 “남아서 투쟁”하려는 반체제 지식인 그룹이 있다는 점은 다른 귀순자들의 증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목이다.

보위부장은 조순백이다

 강씨는 귀순 동기를 밝히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강씨의 말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해 12월 중국에 수출한 강재 6백t과 일제 중고승용차 50대의 대금을 직접 회수하러 중국에 갔다. 강씨는 ‘외국인과의 무분별한 접촉’으로 관리소 수용 전과가 있는 자기의 중국행을 도와준 사람은 “장인 강성산 총리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부장 겸 국가안전보위부장 조순백”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영변 핵단지를 지키고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영변 핵단지 책임자(이름은 밝히지 않음)로부터 93년 10월에 들었다”면서 핵폭탄 5개 보유 첩보를 밝힐 때도 다시 한번 “국가안전보위부 조순백 부장이 저와 상당히 가깝고 또 아들이 저하고 같이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강씨는 또 자신이 부사장으로 있는 금수산 의사당 경리부 산하 릉영륜전합영회사의 지도원인 조명식(조순백 부장의 아들)과 중국에 함께 갔다가 대금 회수 문제로 체류 일정이 길어져 조씨를 먼저 돌려보냈는데, 북경에 있는 동안 연길에 상주하고 있던 국가안전보위부 요원 친구로부터 자기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밝혔다.

 결국 ‘북한의 안기부장’이 보증한 사람을 한국에 데려온 것이니 안기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을 것이다. 더구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이름과 얼굴은 지난 10년간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김일성 사망 이후 정부 및 언론이 밝힌 북한 권력 기구표 어디에도 국가안전보위부장이 누구인지는 나온 적이 없었다. 국가안전보위부장은 권력 서열에서도 가명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추정은 조명철씨의 증언에 비추어 보아도 가능하다. 조씨는 동생 조동철의 장인으로서 김정일 서기실에서 15년간 김정일을 보좌하고 있는 최용호에 대한 질문에 “그 분은 당중앙위 서기부 부부장급인데 이름조차 가명으로 돼있어 당내 부서 사람들도 잘 모른다. 김정일 비서를 ‘김정일 동무’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인데 내 짐작으로는 김정일 서기실에서 문화·재정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질적 2인자는 장성택

 이밖에도 강씨는 김정일 비서의 매제이자 ‘최측근’으로 89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당중아우이 청년 및 3대혁명 소조 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의 지위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김정일 체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인 장성택은 김정일이 한때 그를 국가안전보위부장으로 기용하려 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차기 핵심인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강씨는 “장성택은 이미 작년 12월에 제가 중국에 오기 전에 청년 및 3대혁명 소조 사업부장으로 있다가 조직지도부 1부부장으로 임명받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강씨는 본디 김정일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장으 겸임하다 이를 자기가 신임하는 윤승관에게 내줬는데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윤승관과, 그와 가까운 고갑종 조직부 검열담당 제1부부장을 함께 해임시킨 뒤 장성택을 제1부부장을 등용하고 조직부장 자리는 아예 없애버리고 말았다고 밝혔다.

 “조직부 1부부장 자리는 당중앙위 비서들보다 오히려 더 권력을 많이 쓰는 부서”라는 강씨의 말로 미루어 볼 때 장성택은 김정일 체제에서 이미 실질적인 2인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 밝혀진 김일성 가계도

 김일성의 가계도는 북한 체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북한 사회는 김일성의 친인척들이 권력층의 핵심에 포진해 있는 족벌 체제인 까닭이다. 강씨의 진술은 기일성 사망 이후 언론 매체가 다투어 실은 김일성 가계도의 상당 부분, 특히 외가 부분을 새로 보충할 수 있게 해준다. 강씨의 집안 자체가 김잃성의 외가 쪽으로 먼 인척 관계(강씨의 할아버지가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아버지와 육촌 형제)이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강성산 총리는 김일성의 이종 사촌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에 친인척 관계가 아님이 밝혀졌다.

 강씨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이른바 만경대 가계(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가계)와 칠골 rkp(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 가계)쪽에서 왔다고 하면 “어디서나 다 통한다”는 것이다. 강씨가 밝힌 김일성 가계도에 따르면 이들 친인척들은 현재 북한 사회의 곳곳에서, 특히 인민무력부내 김정일 사적관(관장 강덕수), 혁명사적 지도총국(비서 강영현) 등에서 김일성·김정일 가계 우상화 작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김일성이 광복후 47년 만경대 학원을 세워 과거 항일 독립운동 당시 동지들의 자녀를 챙겨 거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일성이 만주와 국내에서 ‘데려다 키운’ 이른바 혁명 윶자녀들은 만경대 학원→김일성대→옛 소련 및 동유럽 유학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 권력의 핵심인 당·정·군의 주요 조직에 배치돼 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체제 보위를 위해 ‘하나회’라는 정치 장교 집단을 키운 것과 비슷하다.

 강씨에 따르면 강성산도 만경대 혁명학원 1기 출신으로 김일성대학을 거쳐 체코 유학을 다녀왔다. 강씨에 따르면 특히 김일성은 6·25 전쟁 때 만경대 학원 혁명 유자녀들로

‘친위 중대’라는 것을 조직했는데 강성산(현 총리) 연형묵(전 총리) 김 환(현 부총리) 이근모(전 총리) 오극렬(현 당중앙위 작전부장) 이봉원(현 군총정치국 부국장) 최상욱(현 포병사령관) 김국태(현 당중아위 비서) 김두남(현 당중앙위 군사위원) 김시학(현직?·장의워원 서열 110위) 등 ‘김일성이 체계적으로 키운’인물들이야말로 ‘대를 이어 충성해’김정일 체제를 떠받칠 것으로 보인다.

경제난 제1적은 팀스피리트

 귀순한 두사람이 한결같이 김정일 체제의 불확실함을 예상하면서도 권력 투쟁 발생 가능성에 대하서는 부정적인 것도 이처럼 김정일을 떠받드는 지지 기반의 확고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씨는 국가 수반이 20일동안 유고 상태인데도 공식 권력 승계 발표가 늦어지는 배경에 대해 “국가주석, 당중앙위 군사위원장 같은 직의 승계가 늦어진다고 해서 권력이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미 김정일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강씨에 따르면 북한 권력 구조에서 예상되는 변화는 일반적인 관측과는 상당히 역설적이다. 즉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대신에 오극렬을 앉히고 △따라서 오진우, 이종옥 2인 중 1인이 상징적인 국가주석 자리를 맡게 도리 것이지만 △오진우는 권력 집중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결사적으로 사양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주석을 누가 맡는가는 권력 투쟁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씨는 “김정일은 지금 식량·경제난을 이제 혼자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어깨가 뻐근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김정일 체제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 하나같이 식량·경제난을 못 풀 경우 얼마 못가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강씨는 “민간 경제의 70%가 완전히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단정하고, 그 예로 91년부터 가동이 중단된 청진 화학섬유공장, 용광로 3개 중 하나만 가동되고 있는 김책 제철소 등을 들었다. “김정일 체제의 수명을 찍어서 2~3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경제난을 뚫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것이 강씨의 진단이다. 그러나 지난 5월까지 15년 동안이나 아버지가 정무원 건설부장을 지낸 조씨의 발언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정무원 각료들은 모두가 개방할 것을 명백히 원하고 있다”라고 장담한 대목이다. 조씨는 이들의 의사가 조직화되고‘반영’돼 실천되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장담컨대 정무원의 모든 부장(장관)들은 특히 경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개방이다. 그렇게 지향되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의 배경과 관련해 눈에 띄는 대목은 한·미 합동 팀스피리트 훈련에 고나한 다음과 같은 증언이다.

 “팀스피리트 훈련을 할 때마다 북조선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왜냐하면 북조선에서는 그것을 방어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북조선에 대한 공격 훈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훈련이 시작되면 북조선 전체에 비상이 걸려 대응 기동 훈련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팀스피리트 훈련만 개최되면 노동적위대원들은 공장과 농장을 텅텅 비우고 산에 가서 진지를 차지하고 대학생들도 교도대 진지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니 농사가 안된다. 북한에서 제일 귀한 게 원유이다. 기름을 보장해줘야 농기계나 뜨락또르(트랙터)를 가동해서 밭도 갈고 씨붙임을 하겠는데 팀스피리트 훈련만 하면 인민군 전투기술 기지들이 모두 기동 훈련에 들어가기 때문에 북조선 정부에서 기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원유가 기동 훈련에 쓰이기 때문이다. 또 농장원들 자체가 적위대 훈련을 하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된다.”

 강씨는 특히 팀스피리트 훈련으로 준전시 태세가 선포되고 핵문제로 북·미간에 마찰이 극대회한 지난해의 경우 강성산 총리조차 “이 상태로 가면 오래 못갈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북조선은 정말 어려웠다고 밝혔다. 강씨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에는 김정이로도 심하게 앓았다. 북·미간에 위기가 고조될 때 김정일은 관저에도들어가지 못하고 당중앙위 청사에서 침식을 하면서 북·미 회담을 지휘했다는 것이다. 강씨는 김정일이 이처럼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전시 준비 태세까지 갖춘 까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북한의 국부 지역에 대한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위기 의식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그 근거로 북한 정부 각 부처에 비상이 걸려 해외, 특히 중국에 나가 있는 정보원들한테 지령을 내려 △미국의 진짜 공격 가능성 △전쟁이 날 경우 중국의 지원 가능성과 그 정도 △핵사찰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확한 입장 등에 관해 집중적으로 정보를 수집케 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연변 국경지대에서 당중앙위 대회정보 조사부 2과 지도원이 중국에 파견한 정보원들로부터 보고를 받는 것을 직접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강씨에 따르면 대외정보조사부는 김일성·김정일의 대내의 정책 수립을 위한 정보를 수집·보고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특히 수십명의 정보원을 파견해놓고 있는 중국의 경우 최아무개 부부장이 직접 주중 북한 대사관에 참사 직책으로 나와 있을만큼 중국을 체제 유지에 가장 긴요한 곳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핵개발은 경제회복·방어용

 앞에서도 밝혔지만 강씨는 “국가안전보위부 영변 핵단지 경비책임자로부터 핵탄두 5개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말을 93년 10월경에 들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자신이 국가안전보위부장(조순백)과 가까운 사이이고 조부장의 아들(조명식)이 자기 회상의 지도원을 함께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임자가 자기의 아들 결혼식에 필요한 식품(맥주·담배 등)을 보장받기 위해 평양의 한 호텔에서 자기와 만나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말을 했다는 것이다. 강씨가 밝힌 이 책임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의 목표는 핵탄두 20개를 보유하는 것이지만 94년까지 이 고비를 못넘기면 10개 정도로 끝내고이를 공개한다는 것이다. 강씨가 전한 이 충격적인 첩보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강씨가 국가안전보위부 영변 핵단지 책임자로부터 이를 들을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강씨가 밝힌 핵 개발 관련 정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북한의 핵 개발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강씨는 핵 개발 목적을 아래의 두가지로 분명하게 정리했다.

 “지금 김정일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핵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식량난을 해결하고 파괴된 경제를 복구하는 것을 핵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에는 군수공장이 민수공장보다 더 많은데 군수공장을 민수로 바꾸려면 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핵을 가짐으로써 군수공장에 투자되는 돈을 줄여서 인민 생활로 돌리자는 것이 김정일의 기본 목적이다. 두 번째 목적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그 전에는 공격형을 기본으로 했다면 지금은 방어 형태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핵을 꼭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 완료한 다음에는 너희들 공격하려면 해라, 이렇게 배짱으로 나갈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경제난 타개와 대미 방어용으로 핵무기를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일반적 관측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귀순자들을 통해 팀스피리트 훈련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이나 핵 개발 목적이 간간히 흘러나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분명하게 지적된 적은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정부에 중요한 ‘선택의 문제’를 제시한 셈이다. 즉 계속해서 북한을 밀어붙여 체제 붕괴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선언 같은 제스처로 북한에 대한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북한을 개방·개혁으로 이끌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이 근본적인 선택의 문제를 외면한 채 북한이 과연 핵폭탄을 몇 개 가졌느냐 하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의견이 분분한 셈이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강씨의 ‘핵폭탄급발언’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을 안기부가 그 내용을 미국 쪽에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것조차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낼 때만 해도 정부는 물론 대다수 언론도 이에 비판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또한 이률배반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다만 택일의 문제는 타당한 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왜 북·미 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를 공개했느냐 하는 지적보다는 왜 하필이면 7월27일에 공개했느냐 하는 지적이 더 온당할 듯하다. 북한은 김일성 상중에도 자기들의 ‘전승기념일’에 군사 퍼레이드와 함께 2·8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을 가짐으로써 여전히 한국에 대한 ‘무력 시위’를 했고, 같은 날 한국 정부는 북한 총리의 사위와 김일성대학 교원의 귀순 기자회견을 통해 ‘체제 우월성’을 과시했다. 이같은 ‘상호주의’가 계속되는 한 남북 관계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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