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에어컨을 끄라고 하는가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4.08.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흥청망청’유도…소비효율 높이는 데는 관심 없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직에 출마한 김철수 상공자원부 장관은 최근 ‘엄청나게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주요 가트(GATT) 회원국을 돌며 선거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쁜 해외 일정에도 불구하고 김철수 장관이 지난 7월8일 ‘불시에’찾아가야 했던 곳이 있다. 전국의 전력 수급 상황을 24시간 확인하고 통제하는 한국전력공사 중앙급전소이다.

 김장관 방문 당시 이상고온 현상으로 냉방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었다. 김장관이 중앙급전소를 방문하기 하루 전 이미 최대 수요치(2천4백96만5천kW)는 정부의 비상 예상치를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정부와 한전에서는 지난 73년 1차 석유파동 이래 처음으로 ‘제한 송전’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극비로 분류된 계획에 따라 일부 지역·일부 시간대에 전력 공급이 일방적으로 차단되는 제한 송전은, 지나 20년간 단 한번도 우리나라가 경험해 보지 못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발전소 짓는 것이 오히려 낭비

 계속되는 폭염으로 7월22일 전력 예비율은 위기 수준인 3% 이하로 떨어졌다. 비상시를 위해 남겨놓는 예비 전력량이 73만5천kW에 불과해 1백만kW를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라도 고장을 일으키면 제한 송전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상공자원부는 급히 화력발전소 3기의 정비기간을 앞당겨 재가동시켰고, 계획된 발전소 건설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공보처는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에 나섰고, 한전 직원들은 절전 캠페인을 위해 거리로 몰려 나갔다.

 해마다 여름이면 정부는 ‘전력을 아끼자’고 난리를 친다. 매년 엄청난 재원을 발전 부문에 물붓듯이 하는데도 증가하는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한다. 내년도 전망은 더욱 불안하다. 박희천 교수(인하대·경제학)는 “우리나라의 전력 문제는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공급 위주에서 수요관리 위주로 일대 전환하지 않는 한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단언한다.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 발전소·정유소 같은 공급 체제만을 확충할 수 만은 없다는 것이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제쳐 놓더라도 입지난과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고 박교수는 지적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전력 문제는 공급 부족이나 수요 과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소비 과정에서의 ‘낭비’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문 용어를 빌리면 전력의 ‘소비효율’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낮다는 것이다. 같은 1kW라도 효율이 높은 기기를 사용하면 사용시간과 에너지 효과는 높아진다. 약 1백만kW를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소 한 기를 건설하는 데 1조5천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만약 이 돈을 전력 소비의 효율을 높이는 수요관리로 돌리면 몇백만kW를 절감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공급을 늘리기보다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익 위해 소비자 피해 방치

 에너지를 흥청망청 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절전 잠재력은 대단히 크다. 만약 미국 혹은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 전체 전력 수요가 5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여러 논문이 주장하고 있다. 가령 백열전구를 콤팩트형 전구식 형광등으로 교체하면 효율은 4배 이상으로 향상되고 수명은 8배로 늘어난다. 또한 효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투자에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낮다.

 전력 소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효율 강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적정 전기요금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기 요금은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싸다(도표 참조).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존 에너지 자원이 없는 일본에 비해 무려 2배 이상이 싸다.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은 “우리나라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가격을 더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에너지 효율 규제를 선진국형으로 하루빨리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86년 이후 소비자 물가는 43%가 올랐으나 전기요금은 오히려 22%나 인하되었다. 그러나 낮은 전기요금을 정부가 고수하는 숨은 이유는 물가안정이 아니다. 전체 전력의 61%를 소비하는 산업체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생산자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는 결국 세금으로 산업체의 싼 전기요금을 보전해 주고 있어 이중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꼴이다. “산업체는 전기요금이 싸므로 전력 소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는 관심이 없다”고 이원장은 지적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태우 정부 말기에 에너지 효율 기준을 산업체에 적용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재벌들의 막강한 ‘반대 로비’에 부딪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한전의 ‘생산 독점’도 문제

 절전 기술 개발로 선진국의 전력 소비효율은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소비효율을 높여 전력 수요는 2010년까지 오히려 40%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이미 최저의 에너지 효율을 반드시 지켜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전기 소비 제품은 무조건 생간과 유통이 전면 금지된다. 우리나라도 전기냉장고, 룸에어콘, 조명기기와 승용차 4개 품목에 효율기준 등급표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기준이 낮고 강제력이 없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잇다. 재벌들은 최저 에너지 효율제 도입을 적극 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이 수요관리 위주로 전환되지 못하는 것은, 생산자 위주의 산업정책과 한국전력공사의 완전 독점적 구조에도 그 이유가 있다. 한 에너지 경제학자는 “한전 입자에서는 절전보다는 매출을 증대하는 쪽으로 기업 경영이 가게 된다. 수요관리를 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매출이 줄어드는 사업에 어떻게 예산을 책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룸에어콘 보급률은 16.1%(92년)다. 2006년에도 선진국 보급률인 60%에 휠씬 못미치는 46.9%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전력 낭비의 모든 비용을 감당하는 일반 소비자에게 이 더운 여름에 룸에어콘을 끄라고 ‘홍보’할 자격이 없다. 우리나라의 전력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