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귀와 입을 달자
  • 오영환(한국과학기술원 교수.전산학) ()
  • 승인 199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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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1월18일 일본 쿄토 교외의 ATR연구소. 많은 관계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동통역 정화의 최종 시험을 하고 있었다. 미국·독일·일본을 위성으로 연결하여 화면을 통해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국제전화를 거는 공개 실험이다. 여느 국제 전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통화중인 세 사람이 각각 자기 나라 말로 얘기한다는 점이다. 물론 한정된 화제를 대상으로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발성하고 나서 통역돼 나오는 말을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다소 부자연스럼고 어색한 통화였다. 하지만 통역 전화는 제 기능을 훌륭히 수행했다.

 이는 7년 간에 걸친 3개국간 공동 연구의 총결산임과 동시에 다음 7년 간의 연구를 시작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인류의 오랜 꿈인 컴퓨터에 의한 자동 통역 전화가 실용화하기까지에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기술적인 난관이 수없이 남아 있다.

 컴퓨터가 인류 앞에 선보인 지 근 반세기가 지났다. 그간 컴퓨터는 눈부신 기술 발전을 보아 왔지만, 그 발전은 사람들이 쓰기에 편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관점에서라기보다는, 컴퓨터 자체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w중점을 두어온 것이 사실이다. 가까운 예로, 초창기부터 컴퓨터와 사람 간의 정보 입출력 장치로 쓰여온 자판과 CRT 디스플레이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가장 일반적이며 경제적인 기기로 남아 있는 것을 보아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에도, 사람들끼리 의사를 소통할 때와 마찬가지로 말·표정·몸짓 등 사람에게 익숙한 수단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편리한 수단이 될 것이다. 사람 말을 기계가 알아듣게 하는 음성인식기술이나, 사람 말을 기계가 하는 음성 합성 기술은,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꿈과도 같은 것이어서 고대 사회 이래 여러 장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신에게 자신의 소망을 빌 때 인간의 말을 통해 대화하는 장면이라든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열려라 참깨’라는 말로 바위문을 여는 장면 등은 이들 기술에 대한 인간의 소박한 희망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요즘 자동응답 시스템을 이용한 안내 시스템이 보편화하면서 24시간 무인 서비스를 받게 되어 편리함은 더해졌다. 그러나 이를 이용할 때 기능선택 방법 등에 관한 안내 음성이 계속되면 짜증 나기 일쑤다. 몇 마디 말이라도 기계가 알아들어 안내 과정을 짧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관광지 안내판, 현금 지급기 등 컴퓨터를 직접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면 친근감이 느껴지는 기계가 될 것이다. 또한 호텔 예약, 기차표 예약을 할때 24시간 사용자가 이용하기 편리한 시각에 전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다양한 요구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음성정보 처리 기술이며, 컴퓨터에 귀와 입을 달아주는 이러한 기술의 응용 분야는 예를 든 몇 가지 이외에도 무한히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음성언어 기술 개발 우리 손으로 해야

 다행히 근년에 들어 국어 음성에 관한 연구도 많은 진척을 보여, 비록 한정된 분야이지만 필요하다면 실용화가 가능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수백 개 이내의 단어 인식, 문장을 무제한 합성하는 기계 등이 멀지 않은 장래에 국내 기술로 실용화할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이들의 잠재 시장 규모는 방대하다. 하지만 연구 개발은 각 s나라 말의 고유한 특성에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 이러한 음성 관련 기계는 자국에서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이 제각기 대규모 국가 사업으로 이들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부 외국 회사가 우리 말의 음성 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은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이는 국익은 물론 국가적인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최근 이런 연구와 관련된 대규모 연구 계획들이 국가적으로 기획·추진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과거처럼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빛나는 성과를 거둘 때까지 지속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라며,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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