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漢彬 국제민간경제협의회 회장
  • 박순철 부국장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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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을 아는 게 급하다"

李漢彬 박사는 지도를 좋아한다. 그이 집무실 벽에 세계지도가 걸린 것이 특기할 사실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李박사를 처음 찾았을 때 그는 대담 도중에 지도를 가져오러 일부러 자리를 떴다. 지난 7일 두 번째로 그를 찾았을 때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됐다. 그가 설명하기 위해 가져온 것은 커다란 소련지도였다. 그는 지도에서 무엇을 보는가? 李박사는 현재 국제민간경제협의회(IPECK)의 회장이다. 사회주의국가들과 민간차원에서의 경제협력을 위해 지난 88년 10월 설립된 기구이다. 李박사는 부총리, 숭전대학교 총장,  스위스 대사 등을 역임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로 《2000년을 바라보면서》등 저서도 여러권 내놓았다. 그가 한국미래학회의 회장이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한·소정상회담 이후 불어올 변화의 큰 바람을 그는 지도 위에서 읽었다. 지도는 방위와 좌표, 그리고 균형이다. 분석과 꿈이 어우러지면 지도는 ‘時空의 연속체??로 변화, 미래를 그려낸다.

· 한·소정상회담 이후 한·소관계 특히 경제관계에 대해 들뜬 기대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회담에 대한 간단한 평가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남북한 통틀어 우리 민족은 너무 오랫동안 한반도에 갇혀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60년대의 월남파병, 70년대의 중동건설진출을 거쳐 80년대에 처음으로 태평양전역이 우리의 자원 공급원으로 파악되기 시작했습니다. 중동에서 발생한 석유파동을 계기로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호주가, 그리고 알라스카·캐나다·미국의 서부가 우리의 자원공급원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이후입니다. 이러한 시야에서 보면 이제 한국과 소련이 국교정상화의 문턱에 다가선 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닫혀 있던 북태평양과 소련의 동부아시아가 우리의 가상적이 아닌 현실적 삶의 공간으로 변했다는 뜻을 갖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의미이지요. 다만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보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이 들떠서 2~3년이나 5년 이내의 단기에 무엇을 손에 넣으려고 서두르면 안됩니다.

·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경제는 여러 가지 큰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수출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소련시장이 우리 수출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요.

 그동안 우리나라의 주요시장은 미국, 일본, 유럽공동체(EC), 아세안 및 아시아 신흥공업국(NICS)의 네곳이었습니다. 그런데 88년부터 아세안과 아시아신흥공업국을 합친 서태평양니 EC를 제치고 3위의 시장으로 더올랐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추세라고 봅니다. 이제 인구 2억8천만명의 소련이 중요한 잠재적 시장으로 부상GOT습니다. 앞으로 중국이 열리면 제5, 제6의 중요한 시장이 됩니다. 소련시장이 열린다해도 당장 1~2년 안에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올해의 쌍방교역량은 12억달러 정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20억, 40억달러로 늘어나고 5~6년 안에 적어도 60억달러 정도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이것은 아세안과 아시아신흥공업국 또는 EC와 같은 큰 덩어리의 시장이 새로 생겨난다는 듯입니다.

 다만 한가지 유의할 사항은 소련의 외환시장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지요. 과거 중동건설 때는 현금 가진 상대와의 거래였습니다. 그라니 소련은 잠재력은 방대하지만 교역초기에는 현금을 못받을 가능성이 잇다는 점에 유의해야지요. 그러나 한국경제로 보아서는 2~3곳의 시장에 편중된 수출구조가 5~6개의 시장으로 다변화된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 그러나 소련의 수입규모는 연 1천억달러가 안됩니다. 특히 서방과의 교역비중은 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소련의 수입능력은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한·소의 수출입구조가 상호보완적이냐는 기본적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2년만 보면 명백히 한계가 있지요. 그러나 소련은 잠재적으로 워낙 큰 시장이니까 5~10년 정도는 내다보면서 생각할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소련이라는 대상을 경제적으로 충분히 파고들어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련관, 소련경제관을 정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어요. 소련경제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가령 우리가 소련 사람의 입장에서 고르바초프 영도하의 소련으로 하여금 그렇게 다급히 우리에게 접근하게 만드느냐? 단순히 한국이라는 대상만 보지말고 소련 전체의 지도를 치밀하게 보고 그네들이 처한 경제적 여건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련은 그동안 동유럽의 경제협력기구인 COMECON을 통해 동유럽의 경제를 자체의 중앙통제경제의 필요에 따라 통제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EC의 발전으로 동구전체가 경제적으로 EC에 기울어지는 대세가 만들어졌습니다. 소련은 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걸 용인하면서 뭔가 보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느냐가 핵심인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소련은 아직도 유럽국가입니다. 인구의 거의 95%가 우랄산맥 서쪽에 살고 있어요. 따라서 향후 21세기에도 계속 유럽정치에 대해 상당한 발언권을 유지해야 하는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소련이 계속 유럽에 대해 상당한 발언권을 갖는 강대국으로 남자면 경제적 두시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련의 인구는 유럽에 몰려 있지만 자원의 경우 유럽쪽의 것은 거의 소진된 상태입니다. 소련으로서는 유럽에 발언권을 갖는 강대국으로 남기 위해서라도 우랄산맥 동쪽 태평양까지의 시베리아를 개발해야 될 절대절명의 명제를 갖고 있습니다.

· 한·소관계의 전개에 관해 높은 기대를 갖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성급하다고,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일본기업들은 소련진출에 상당히 소극적이라는 사실도 지적됩니다. 소련이 한국에 접근하는 동기자체도 일본의 기업에 자극을 주려는 일종의 ‘한국카드??를 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습니다만….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국카드를 쓰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동기는 아닙니다. 일본은 두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며 브라질이나 호주까지 상당한 정도의 이권을 심어놓았습니다. 한국은 통상만 했지 투자라든가 수입원개발은 거의 못했지요. 한국과 일본의 사정은 상당히 다릅니다. 또한 지리적으로도 일본은 섬나라입니다. 한편 한국의 유라시아대륙에 붙은 반도이지요. 동해안이 북한을 거쳐 연해주까지 한 해안선으로 연결된 사실은 일본과 한국이 지리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련의 시베리아개발에 있어 서부·중부 개발은 아직 멀었고 결국 연해주와 동부, 그리고 오츠크해가 개발의 대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원개발, 에너지자원 조달면에서 일본이 지닌 가능성과 우리가 기대하는 가능성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또한 지리적, 산업적 보완성이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훨씬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 최근 소련경제는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성장문화, 인플레, 외채누적과 재정적자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하의 소련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소련은 미래에도 강대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중앙통제경제 가지고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거기에 따르는 정치구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반작용으로 동구 여러나라가 서방에 기울어지는 사태마저 받아들이고 잇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도기적이고 파상적인 것일 뿐입니다. 정말 내실은 소련인들이 지금부터 5년으로 보고 이/T는 경제개혁에 달렸습니다. 첫째 물가체계의 현실화입니다. 소련에서는 식료품을 비롯 모든 것이 국가 보조금 체계로 짜여 있습니다. 보조금체계를 전부 없애고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당장은 상당한 물가앙등을 가져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르바초프의 새 정치구조가 이러한 단기적 물가앙등과 실업문제를 어떻게 견뎌내느냐는 것입니다.

 중앙통제경제를 시장경제로 옮겨놓으려면 두번째로 환율의 조정이 필요합니다. 루블화와 세계 주요 화폐간에 정상적인 교환관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국내물가 현실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시장경제가 된 나라에서도 급격한 평가절하는 당해연도의 도매물가를 40% 이상 뛰게 했습니다. 소련의 경우 41~50% 정도가 아니라 2~3배 뛰는 것도 예상됩니다.

 세번째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내자본형성과 공기업의 사유화문제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성패를 결정적으로 가를 것입니다. 중요한 공장이나 산업체를 민간에게 불하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업가가 없다시피 한 체제에서 기업가를 골라내고 키우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또한 이를 장기적으로 뒷받침하려면 국내저축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저축을 유도하자면 인플레를 막아야 합니다. 이처럼 고르바초프가 시행하려는 경제개혁은 대단히 어렵지만 한번은 치러야 합니다.

· 소련과의 경제협력에서 무역거래나 직접투자에 못지 않게 기술협력도 주목을 받는 것 같습니다. 기술협력의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소련은 특히 우주항공기술에서 초강대국의 하나입니다. 재료면에서 상당한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비철금속 같은 신소재에서도 그렇습니다. 이제 국제적 데탕트의 상황에서 자국의 내부적 필요 때문에도 실질적 군축을 해야 할 처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술이 쏟아져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번 소련주간 때 소련인들이 기술 목록을 갖고 왔는데 국내 과학·실업계에서 상당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하나 소련은 우주인을 상당히 많이 우주에 보냈습니다. 우주공간에 인간을 보내 장기간 활동할 수 있다는 곳은 인체공학, 유전공학, 생물공학에서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음을 뜻합니다. 21세기에는 과학산업이 빛과 레이저, 생물공학 등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며 시장성도 클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과학진을 총동원할 것인데 우리는 국한된 과학기술진으로 몹시 안타까운 입장에 처할 것입니다.

· 순진한 질문입니다만 왜 일본과 미국은 기술이전을 꺼리는데 소련은 기술이전을 하겠다고 나섭니까?

 일본의 경우 고도기술을 상업화하고 있습니다. 소련은 이것이 전혀 안돼 있습니다. 기술을 사장해봐야 득이 없습니다. 소련은 대가를 받고 우리에게 기술을 이전할 동기가 충분히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제까지 일본을 경계하고 한국을 ‘제2의 일본??이라는 사시적 안목으로 봐 그동안 기술이전이 두절돼 있었습니다.

· 한·소관계 급진전은 소련 또는 사회주의권 전문가에 대한 수요를 크게 증가시킨다 하겠습니다만. 

한·소 국교가 이루어지면 정부대 정부의 통상적인 통로는 마련됩니다. 그러나 소련이 경제적으로 갖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단순히 정부차원으로는 부족합니다. 향후 소련의 경제개혁과정에서 진행중인 시책을 빨리 그리고 계속적으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절대 필요합니다. 몇해만에 교대하는 공무원이나 외교관으로는 한계가 있고 상당히 전문성이 있는 요인이 현지에 상주하고 깊숙이 파고들어가야 합니다. 지난 40여년 동안 미국에 관해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나 향후 10년간은 소련에 관해 아는 사람이 그 몇분의 일이라고 생겨야 합니다. 소련의 경제 지리 실업 기관 조직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사람을 수천명을 배출해야 됩니다.

· 한·소관계의 개선이 한·중관계 또는 남북한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십니까?

 중국은 아직 태평양경제협력의 대화서클에 못들어 오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제 서두르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섰습니다. 중국통치자들은 한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포함하는 경로를 밟아서라도 빨리 태평양서클에 들어오지 않으면 늦겠다는 조바심이 들 것입니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결국 몇 년 안에 소련과 중국이 태평양 경제권에 들어올 전망입니다. 한편 북한은 유럽과 더불어 21세기의 세계를 좌우할 양대지원인 태평양 아시아 경제조류 속에서 유일한 ‘고도??로 남을 신세에 처해 있습니다. 북한의 의도와 동기가 어떻든 간에 서남태평양에까지 태평양전역의 경제협력체가 지급 부상하기 시작했는데 북한이 아무리 홀로 고도로 남으려고 해도 남게 되겠습니까? 북한이 태평양경제조류에 편입될 시기는 아무리 멀어도 10년 안이라고 봅니다. 소련의 경제개혁은 5~10년 안에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저쪽과 상당한 접촉과 경험을 쌓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아마 자연지세과로 북한의 통치자가 누가 되든 그 경제적 흐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정치형태는 어떻게 되든 그 시기가 되면 남북한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k나의 공동시장을, ??미니 공동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내다봅니다.

· 이렇게 큰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사항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북한에 대해서든 북방전체에 대해서든 독일의 경우가 우리에게 정확한 교훈을 몇가지 줍니다. 서독은 지난 20~30년 동안 동독에 대해 조용히 재정원조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원조제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1천3백억달러에 달하는 방대한 외화를 축적해온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동독화폐에 대해 1대1로 바꿔도 주고 소련에 대해서는 동독을 용인해주는 대가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원을 암암리에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재정력 또는 잉여재정력의 확보이며 구체적으로는 대북방사업에 쓰일 외화의 비축입니다. 향후 몇 년간 소련이 경제개혁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도 상당한 외화비축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돼야 북방에 대해 자신을 갖고 우리 권익을 보호해가며 투자도 할 수 있습니다. 외화비축은 결국 산업이 잘 돌아가야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노사협조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걸 누가 주도하겠는가 하면 결국 정부입니다.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에서 돌아와 국민에게 호소해서 국민적 합의를 얻는 것입니다. 이제 정말 북방이 열렸으니 뭔가 비축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입니다. 적어도 5백억달러는 비축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통일협력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화가 아니더라도 됩니다. 서독 마르크처럼 우리 원화가 인정되면 됩니다, 좋은 방법은 세제잉여금의 활용입니다. 과거 3년 동안 임금이 오를 때 갑근세를 더 받은 것이 있습니다. 정부나 여야당은 인기를 노려 여기저기 쓰려하지만 전액을 동결해 통일될 때까지, 적어도 남북공동시장이 될 때까지 남북협력기금으로 충당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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