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칼럼] 얼음은 구체적으로 녹아내려야
  • (본지 칼럼니스트·서울대교수)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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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팎이 탈냉전의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6·25전란을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참극으로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화해·평화의 기운이야말로 기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고르바초프·부시대통령간의 회담과 노태우·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은 다 같이 “이제 이미 얼음이 녹고 있음을??세계와 역사를 향해 크게 선포한 회담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냉전종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만일 우리가 이 선언 자체의 중요성에 현혹된 나머지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우리 현실 안에서 실천돼야 하는가를 소홀히 한다면, 그같은 선언이야말로 역사적 위증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냉전체제의 해체는 적어도 두가지 수준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하나는 의식사고·가치관의 근본적 변화로 나타나야 하고, 다른 하나는 제도적 변혁의 모습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사고와 의식수준에서의 탈냉전이란 상대방 체제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전환을 요청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신봉자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뿌리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인식이 냉전의식의 본보기다.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악이며, 그 惡性은 영원불변이다. 고로 그것은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박멸돼야 한다.??꼭같은 논리로, 공사주의자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그러한 부정적?전투적 인식을 갖는다. 바로 이같은 인식이 철저하게 바뀌어야만 냉전종식이 가능하다. 신사고는 다름 아니라 바로 이같은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전환을 말한다.

 

남북 ‘군축문제'다룰 민간기구 창설 필요

 우리는 주변에서 강렬한 전투적 냉전의식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다. “공산주의 체제는 反인간적?反민족적?폐쇄적 체제요. 강제수용소와 같은 무시무시한 전체주의 체제다??라는 자본주의적 냉전인식이 있는가 하면, 다음과 같은 사회주의적 냉전의식도 강하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세력에 항상 포위되어 위협받아왔기에 그들의 군비증강은 당연하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강제적 분업체계로 인해 인간을 본질적으로 비인간화(소외)시키는 反인간적?反공동체적 체계다.??

 이같은 냉전思考가 80년대 후반에 와서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고르비 등장 이후 동유럽의 변화를 거치면서 이러한 흑백논리식 냉전사고는 거대한 바벨탑이 무너지듯 와해되고 있다. 다만, 한반도의 남녘과 북녘에서만 아직도 그 냉전의 바벨탑은 오만하고 으스스하게 우뚝 서있다. 이것이 무너지지 않고서는 냉전해체란 빈말·빈약속으로 끝나고 말 터이다. 그러기에 냉전의 얼음이 한반도에서 녹아내리려면 사고와 인식의 일대전환이 요청된다.

 둘째로 냉전해체는 구체적 제도개혁을 통해 가시화되어야 하고 그 개혁의 효과가 국민의 몸에 와닿아야 한다. 통일·군축·평화등 상징에 대한 강조로서는 부족하다. 한두가지 보기를 들자. 냉전의  島로 남아있는 한반도에서 냉전의 얼음을 효과적으로 녹이려면, 먼저 남북간의 군사대결을 완화해야 한다. 이것은 곧 군축문제다. 군인들을 중심으로 한 군비통제의 차원이 아니라 군비축소를 과감히 추진할 뿐만 아니라 군비축소를 비군사적 사업에 어떻게 전용될 것인가를 국민들에게 명쾌히 제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군비축소로 생긴 국가예산을 서민주택건립, 생산시설 투자, 민주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등에 활용하여 그 효과를 국민이 몸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냉전종식이 확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집권세력의 코페르니쿠스적 거듭나기

 뿐만이랴. 남북분단을 빙자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해왔던 악법들을 이 기회에 철저하게 개폐해야 제도적 탈냉전이 이룩된다. 아직도 국회에서 反민주적 악법의 개폐 문제가 시원스럽게 처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집권세력 안에 냉전의 얼음을 더욱 차갑게 냉동시키려는 反역사적 세력이 굳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 노·고르비회담으로 한반도의 냉전빙벽은 녹을 듯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말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 까닭은 두가지다. 첫째로 外治에 큰 성과를 거두워온 정부가 內治에 있어서는 방향없이 표류해왔기 때문에, 밖에서 얻은 외교성과가 과연 효과적으로 내치에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북방외교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통일의 가능성을 더 어렵게 한 것 같이 여겨졌다. 그러므로 이번의 노·고르비회담의 역사적 성과도 과연 통일의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일로 이어질 것인가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겉으로는 탈냉전의 세계적 흐름에 호응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公安制를 강화하고 싶어하는 충동에 사로잡힌 세력이 집권세력 가운데 버티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이 코페르니쿠스적 거듭나기를 하지 않는다면 얼음은 녹는 듯하다가 다시 냉동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온 국민은 우리 의식 속에 있는 냉전빙벽을 허물어 버리면서 세계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의 고도 한반도에서 분단의 빙벽을 녹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도 말로만 탈냉전을 외칠 것이 아니라  과감한 군비축소안을 제시하고, 군비축소로 얻어지는 수조원의 재원을 가난한 국민들의 등을 따뜻하게 해주는 일과 절망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구체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확고하게 몸에 와닿는 탈냉전 정책시행을 이제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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