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부군'의 성과는 사실성 획득
  • 강한섭(영화평론가)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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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영화의 리얼리즘,“영화작가의‘정신의 힘’에 달려 있다”

올림픽경기가 온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있던 88년 가을, 직배운동을 주도했던 감독위원회 소속 23명이 감독들은 한 모임에서 한국영화를 위한 새로운 출구로‘민족영화??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영화〈남부군〉은 직배반대운동이 한풀 꺽인 후, 그 운동의 중심인물이며 민족영화의 개념을 상업영화에 채택한 감독들 중 하나인 鄭智泳감독에 의해 제작, 연출된 작품이다.〈남부군〉은 만 2년여의 제작기간에 걸쳐서 숱한 어려움을 겪으며 완성되었다. 이제껏 한국영화에서는 다루어질 수 없었던 금기의 소재를 영화화하는 것이었으므로 충무로식 제작방식을 떠나 독립영화사를 세워야 했으며, 빨치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다룬다는 것 때문에 그 흔한 반공영화들이 받아온 군지원도 거부당했다. 또한 직배저지운동의 주모자로 감독이 구속돼 한동안 촬영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으며, 사실적 묘사를 위해 영하 25도의 추위도 무릅쓰고 산악지대를 강행군하며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전 스탭진이‘빨치산??이 되어 완성된 영화이다.

두 주일 관객 40만, 한국영화 희망 보여줘

 영화〈남부군〉이 나오게 된 작품 외적인 배경과 제작의 어려움은 그 작품에 대해 적어도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제작자에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기대를 하게 했다.〈남부군〉에 걸어온 기대는 곧 한국영화 전체에 대한 기대가 한국영화의 영원한 숙제인 리얼리즘과 상업적 성공이라는 두가지 문제는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관객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직배ㆍ수입영화의 홍수 속에서 우리 영화의 존립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출구가 될 작품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두가지 문제에 대한 기대는 최근 일련의 사실주의적‘좋은??영화들―〈우묵배미의 사랑〉〈오세암〉〈수탉〉등―의 흥행참패로 인해 더욱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혹자는 〈남부군〉의 상업적 성패에 최근 더욱 위태로워진 한국영화의 존폐 여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개봉한 지 두 주일이 지난 현재〈남부군〉이 전국적으로 40만 관객을 끌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한국영화가 살아날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남부군〉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또〈남부군〉과 비슷하게 거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마유미〉와〈장군의 아들〉  모두〈남부군〉의 관객동원을 아직 따르진 못하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게 관객을 끌고 있다는 사실로 한국영화와 존폐 여부에 대한 우려는 다시 한번 유예되었다.

 그러나〈남부군〉은 정말 리얼리즘 영화로서 성공한 것인가? 우연찮게도〈남부군〉〈마유미〉그리고〈장군의 아들〉모두가 실제사건, 즉 역사에 근거한 영화이다. 세 영화는 소재를 각기 다른 원천에서 끌어왔다.〈남부군〉은 한 빨치산의 수기이고,〈마유미〉는 3년도 안된 사건의 재현이며,〈장군의 아들〉은 실제인물을 다룬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세 영화 모두가 사실에 근거하였으되 각색, 감독의 연츨, 그리고 배우의 연기를 통해 실제 있었던 상황을 재현하여 보여주는 데 있어서는 그 사실이 어느 정도 왜곡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실주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정의를 염두에 두면 세 영화중 가장 사실적일 수 있었던 영화는〈마유미〉일 게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라 기록은 물론 관객들 기억도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남부군〉은 한 인간이 직접 체험한 40년된 경험의 기억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마유미〉보다는 더 사실적이기 힘들다. 그리고〈장군의 아들〉은 50~60년 전의 실제사건이 소설이라는 표현형식을 통해 한번의 왜곡을 거친 것이므로 위의 두 작품보다 사실적이기 더욱 힘들다.

 그러나 영화가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줌으로써 얻게 되는 영화적 재미나 감동은 위의 사실주의의 정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임권택감독의〈장국의 아들〉은 액션영화이면서도 액션은 무척 절제된 반면 그 시대의 분위기를 묵직한 화면구성을 바탕으로, 또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다양한 에피소드 등을 통해 재현함으로써 세 영화 중 그래도 재미를 가장 많이 제공해준다.〈마유미〉는 반테러리즘이라는 메시지를 재앙을 다룬 영화(disater movie)들―예를 들어〈포세이돈 어드밴쳐〉〈에어포트〉등―의 형식에 넣어 실제 사건을 재현하려 했으나 산만한 구성으로 내용과 형식이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채 감동도 재미도 또 긴장감마저도 전달하지 못한 영화이다. 그 두 영화에 비해서〈남부군〉은 2시간40분이라는 길이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재미와 함께 인간적 드라마의 힘과 감동까지도 주었다.

〈남부군〉의 재미는 사실주의의 설득력

〈남부군〉이 갖는 영화적 재미와 감동은 위에서 언급한 단순한 사실에의 충실함보다는 영화적 사실주의의 설득력에서 나온다. 그 설득력은 한 개인의 진솔한 역사의 기록보다는 그 역사를 영화가 우리에게 어떻게 얘기해주었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하는 방법은 상업영화라는 틀과 역사의 기록이 맞물려 타협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역사의 기록이 상업영화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우선 장선우의 효율적으로 응축된 시나리오로 변했으며, 정지영의 설득력있는 연출, 안성기 등의 실력있는 배우들에 의한 실제 인물들의 변신을 통해 이미 사실에서는 한걸음 물러선 허구의 세계로 변한 것이다. 원작에서보다 영화에선 이념적 갈등―특히 주인공 이태가 느끼는―보다는 로맨스가 좀더 강조되었고, 이야깃거리가 되는 인물들을 집약시킴으로써 남한 빨치산의 실록에 가까운 원작을 영화적 이야기구조로 변형시켜 만든 것이다.

 즉 영화에서의 사실주의는 흔히 말하는 사실주의의 개념과는 매우 다르다. 영화는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재료로 하기 때문에 가장 사실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영화의 특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얼마만큼 사실에 충실한가로써 한 영화를 평가하게 하기도 하며, 그 사실에의 충성도에 따라 그 영화에 대한 감동의 폭이 달라지게도 한다. 이러한 사실에의 충실도는 특히 한국영화에 대하여 불만을 터뜨리는 관객들이 아마추어적 평가기준에서 자주 드러난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사실주의는 사실에의 충실도보다는 사실과 비슷한 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선택하고 정돈하여 영상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사실주의는 항상 시대와 사회적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 절대적인 것은 될 수 없다.

 우리 영화가 7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리얼리즘을 우리 것으로 토착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은 과연 어디에 연유하는 것일까? 소재의 제한까지 강요했던 정치적 통제나 열악한 제작환경을 감수하게 했던 정치적 통제나 열악한 제작환경을 감수하게 했던 경제적 통제가 보통 지적되는 이유이자 변명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네오리얼리즘을 꽃피웠던 전후의 이탈리아가, 그리고 지금 민족영화의 실험을 계속하는 다른 제3세계의 영화들이 우리 영화보다 나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아닌 것이다.

 리얼리즘 획득의 관건은 사실 영화작가들의 정신의 힘 여부에 달려 있다. 사물을 카메라로 찍고 다시 편집의 과정을 통해 재구성하는 영화적 메커니즘이 현실과의 관게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성찰하고, 그래서 영화가 그저 기게적인 복사가 아니라 현실을 재구성하는 정신의 활동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될 때 한국영화의 리얼리즘은 성취될 것이다.

 한국영화에서의 사실주의에 대한 개념 또한 시대적ㆍ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달라져왔다. 일제하에선 나라잃은 민족적 설움을 신파 멜러드라마라는 형식 속에 상징적으로 삽입시켜놓은 것이 사실주의로 여겨졌었고,〈오발탄〉과 같은 뛰어난 영상표현을 통한 그 당시의 사회실상의 고발이 전후 한국영화의 사실주의였다. 그리고 80년대에는 억압된 민중의 삶을 표현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그것에 대한 의식을 관객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것이 비상업영화권에서 논의된 사실주의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경향이〈남부군〉을 만든 정지영감독을 포함한 여러 감독들이 채택한 민족영화의 개념―억눌린 현실의 표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남부군〉에서의 사실주의는 우리의 억눌린 현실을 표현했는가? 억눌린 현실의 뒤에 숨겨져온 역사의 단편을〈남부군〉은 상업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그리고 영화적 사실주의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변형된 이야기로써 드러내주었을 뿐이다. 즉〈남부군〉의 성과는 사실성의 승리이자, 한국영화가 치열하게 추구해야 할 사실주의의 영토확장과의 관계는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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