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물가에 날개 달지 모른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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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국회 도마 오른 2조원 규모 追更…평민 金大中총재 “9월까지 유보” 주장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요구는 ‘갈증’의 단계를 이미 넘어선 지 오래다. 꼬박꼬박 낸 세금이 어디갔느냐고 불평한다. 정보는 더 이상 이 ‘분노’를 거스를 수 없다. 재정이 해야 될 일이 많아 지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써야 하는 세출내용이 늘어나니 자연히 예산규모는 날개를 달 수 밖에 없다. 본예산으로 부족하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라도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경제기획원 예산실은 최근 1조9천8백5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정부안으로 확정, 지난 18일 개회한 제1백50회 임시국회의 심의에 넘겼다. 재원은 지난해 예상보다 더 걷혀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중인 3조1천2백30억원이나 되는 歲計잉여금이다.

 올해 추경예산은 편성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 한다면 어느정도로 해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정부와 민자당은 확정 시점까지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여왔다. 민자당은 ‘재정 인플레’가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이대었고 정부는 5대과제가 하루라도 빨리 시행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라면서 밀어붙일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또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정보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볼 때 남아 있는 돈으로 예산집행을 하겠다는 것은 전혀 하자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결과는 정보의 판정승이었다. 물가불안을 고려해 당초보다 6천억원을 줄이는 카드로 민자당의 반대 목소리를 눌러버린 것이다.

 이번 추경편성이 법정신에 어긋난다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예산회계법상 추경편성 사유(제33조)인 ‘본예산 편성 후에 생긴 사유로 인하여 이미 성립된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규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추경의 주요 골자인 5대과제가 올해 갑자기 돌출된 사유가 아니며 새로운 재원(세계잉여금)이 생겨 추경을 편성했다는 정보의 주장도 세계잉여금이 대폭 는 것은 87년부터이기 때문에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閔泰亨전문위원은 “법정신에 부합되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재정운용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를 엄격히 적용하는 데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5대과제는 불합리한 과제도 아니고 불요불급한 과제도 아니기 때문”이라며 법조문의 현실화를 주장한다.

민자당은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입장

 예산당국인 경제기획원의 이번 추경편성사유를 보면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대도시교통난 완화, 환경보전, 과학기술진흥, 민생치안, 과열진학방지 대책 등 이른바 5대 과제는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한 부문인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경제기획원 예산실 李允宰 예산총괄과장은 “5대과제에 추경의 43%가 배정되어 있다. 지금 교통체증과 오염된 물로 서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가. 이번 추경엔 또 중소기업구조조정기금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심각한 매듭을 풀어보려는 정부의 노력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추경의 불가피성을 밝히면서 물가를 우려, 편성을 하지 않을 경우도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다. 이번 추경은 교육비가 3천7백66억원(본예산대비 7.4% 증가). 교통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경제개발비가 2천2백48억원(6.9%) 늘어나고 세수증가로 지방재정교부금으로 정산해야 할 소요액이 3천1백41억원(14.9%), 예비비가 8천1백8억원이나 계산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추경편성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내역을 잘 따져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돈이 선심성, 전시적인 사업에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분배왜곡을 시정하고 사람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이는 것이라면 일단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평민당 李海燦의원은 “증가율과 규모보다 추경예산의 내역이 더 중요하다. 이 돈으로 교통, 주거, 산업구조를 조정한다면 나쁘지 않다. 고루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이라면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나름대로 심사기준을 밝힌다.

 추경예산에 대한 칼자루는 국회로 넘어갔다. 1차적으로 상임위의, 최종적으로는 예결특위(위원장 金瑢泰민자당의원)와 계수조정 소위의 ‘칼질’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심의 과정도 그리 순조로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金大中 평민당총재가 지난 20일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를 잡기 위해 임시국회에서 추경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9월 유보론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민자당은 이에 대해 최대한 야당과 협의하겠으나 표결처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제2차 추경예산 편성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축곡가수매에 소요될 4천3백억원의 양곡기금 재원마련을 합의했는데 이번 추경에 그것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투융자특별회계의 세수부족문제도 예산 팽창을 불가피하게 하는 요인으로 도사리고 있다. 증시 상황이 나빠 정부보유주식을 국민주 형태로 팔 수 없게 될 경우일반회계 예산을 늘려 재특에 전출시킬 수밖에 없데 돼 있다. 이래저래 올 예산규모는 더욱 팽창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말 확정된 본예산 자체가 ‘미숙아’여서 ‘정상아’가 되기 위해선 추경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물가다. 물론 재정부문 자체가 오늘의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물가(인플레율)와 예산규모증가율의 상관관계가 그리 크지 않다는 하계의 실증분석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걱정이다. 우선 돈이 시중에 많이 풀린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 기대심리이다. 물가안정기조를 강조하는 정부가 재정운영을 오히려 호가대할 뿐 솔선수범하지 않는 다는 불신감 증폭은 피할 수 없게 된다.

 한국외국어대 崔洸교수(재정학)는 “추경편성을 보고 1년 나라살림에 대한 예측능력 부족을 따지지만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재정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더 써야 한다면 타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팽창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민생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로 국한해야 한다. 다만 다른 요인에 의해 물가가 크게 불안한 상황에선 재정규모 확대가 매우 민감하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라고 우려한다. 고려대 李萬雨교수(재정학)도 “팽창예산은 물가를 들먹이게 할 것이 확실하다. 안정기조를 깨뜨리지 않고 폭발하는 재정수요를 맞추려면 방위비 등 경직적 비용을 대폭 줄여야 숨통이 트일 것이다”라며 경직적 비용 삭감이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일을 해야 한다. 특히 교통난 해소, 주택, 보건의료 등 민생복지와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에서 한시도 손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긴축재정이 결코 능사는 아니라는 논리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정부부터 물가올리기에 나섰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우선순위를 재조정,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세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재정운용의 효율성 극대화와 물가 안정이라는 상충되는 부문을 합리적으로 조화시켜야 할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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