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책임규명 벗어난 주제확산이 성과
  • 박명림 (고려대 박사과정 · 정치학) ()
  • 승인 1990.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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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 40주년 관련 학술회의 總評

한국전쟁반발 40주년을 맞아 학계에서는 이 전쟁을 좀더 객관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금년 상반기부터 6 · 25관계 학술회의가 수십차례 열렸으며, 6월25일을 전후해 열린 중요한 학술회의도 10여회에 달하고 있다. 예년에 볼 수 없던 양적 증가외에 전후 최초로 소련 · 중국 · 폴란드 · 헝가리 등의 공산권 학자의 참여가 많았던 것이 올해의 특징이다. 바로 이 점이 올해 열린 한국전쟁에 관한 학술회의의 가장 커다란 성과라고 하겠다

 내용으로 볼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주제의 확산을 들 수 있다. 과거의 학술회의는 한국전쟁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전쟁책임의 규명에만 집착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는 전쟁의 전개과정 · 결과 · 영향들을 포함하여 그 주제가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것은 한국전쟁 연구의 새로운 경향이다. 한국전쟁의 영향과 의미에 대한 학술적 천착은 ‘6·25가 남긴 유산’을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연구에 있어 ‘주제의 확산’은 매우 중요하다.


‘미 · 소공중전’의 실상 밝혀져

 두번째의 특징은 구체적인 연구성과를 놓고 토론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올해의 한국전쟁 관련 발표회나 토론회는 단순한 반공강연이나 이념교육이 아니었다. 전문가끼리 구체적인 연구논문을 놓고 치열한 학술적 토론을 벌인 학술회의였다.

 세번째 특징은 주요 쟁점별 문제의식과 쟁점별 접근시도가 뚜렷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연구의 진전을 반영하는 것이며, 한국전쟁에서 집중적으로 해명해야 할 주요 주제에 대한 일정한 합의가 연구자간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올해 열린 학술회의의 주요한 성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소련공군과 중국군의 참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상당부분 공개되었다. 그결과 세계 최초로 벌어진 ‘미·소공중전’의 실상이 알려지기도 하였다. 둘째 그동안의 통설인 ‘전면적 남침설’에 대한 도전으로서 ‘제한적 남침설’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가장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기된 문제이다. 이를 두고 앞으로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보수학계에서도 분단과 전쟁에 관한 미국의 책임이 비판적으로 고찰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그동안 진보학계의 전유물이었으나 보수학계의 논리가 상당부분 설득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넷째 한국전쟁에 관한 성격논쟁이 본격화 되었다. 단순히 ‘자유수호전쟁’이냐 ‘조국해방전쟁’이냐 하는 식의 이분법적 · 이념적 경직성을 넘어, 이제는 한국전쟁의 기본적인 성격과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데 대한 역사적·이론적 연구가 진지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올해 열린 학술회의 중 가장 신선하고도 의미있는 회의는 ‘한국전쟁발발 40주년기념 주요참가자국제회의’였다. 이 국제회의는 회의성립 자체가 4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공백을 메우고도 남을 만큼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전쟁 당시에는 서로가 적과 적으로서 생사를 다투었던 남한 · 북한 · 미 · 소의 참전자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전후 최초의 일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6월17일자 ≪시사저널≫참조). 

 두번째로 살펴봐야 할 회의는 ‘제2차 한국전쟁국제학술회의’이다. 87년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이 국제학술회의에는 각국의 한국전쟁 연구자 30여명이 참가, 이틀 동안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 회의에서 발표된 몇몇 논문은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중국의 자이 지 하이가 발표한 ‘중국의 한국전 참전’에 관한 논문이었다. 비록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맥아더의 전쟁전략을 강도 높게 비판한 마이클 샐러의 논문과 미국의 경직된 휴전협상태도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로즈마리 푸트의 논문도 학문적으로 매우  돋보였다.

 세번째로는 ‘한국정치연구회’의 학술발표회를 들 수 있다. ‘진보적인 정치학 연구자’의 모임인 이 연구회는 ‘한국전쟁의 이해’라는 공동연구성과를 최근에 발표했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그 연구성과물에 근거한 것이다. 이 학술발표회는 공동의 연구성과를 놓고 토론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여타 학술회의와는 다른 독특한 면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것은 ‘목소리만 높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 진보학계가 구체적 연구성과를 가지고 보수계의 비판에 대응했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낮은 연구수준과 자료부족이 문제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한국전쟁 학술회의는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첫째는 연구수준의 문제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학술회의는 40년이라는 시간적 경과에 걸맞는 연구수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연구는 여전히 역사적 진실의 핵심에 다가서고 있지 못하며, 특히 사회과학적 분석에 있어서는 이론적으로 너무 취약한 실정이다.

 두번째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자료 부족의 문제이다. 특히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 소련과 중국측이 그것을 공개하지 않아 이 부문에 대한 논의는 추론과 상상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자료 발굴을 위한 연구자의 분발이 요구된다.

 세번째는 많은 학술회의가 아직도 ‘학술회의’라기보다는 김일성을 규탄하기 위한 ‘정치회의’였다는 점이다. 이제 이러한 학술회의는 적어도 학술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참가자의 문제이다. 이것은 두가지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하나는 비전문가의 참가가 많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와 보수의 상호교류가 적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느것은 비전문가의 참여가 많아서 전혀 심층적인 토론이 되지 못했고 여타 대부분의 학술회의는 보수와 진보의 색채가 뚜렷해서 양자간의 학술적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기성학계가 주최한 학술회의의 경우 반공적 · 보수적 시각을 가진 사람만이 참여함으로써 균형있는 접근이 어려웠다.

 41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이러한 한계가 모두 극복되어 한국전쟁에 대한 총체적인 해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전쟁이 남긴 상흔과 질곡에서 벗어나 민족통일의 길로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전쟁 연구자의 핵심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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