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는 이제 그만
  • 이재웅(성균관대교수·경제학) ()
  • 승인 1990.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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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체로 셈이 정확하지 못한 것 같다. 무슨 물건을 살 때도 정확하게 몇 개를 달라고 하기보다 그저 두서너개 또는 여남은개를 달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의 말이나 사고방식이 정확하거나 치밀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셈이 정확하지 않다는 말은 또한 경우가 없거나 무책임하다는 뜻과도 통한다. 네것, 내것의 구분이 흐리다. 이익이 나면 혼자 챙기고 손해가 나면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도 빈번하다. 우리는 계획도 치밀하지가 않다. 그저 대충대충 검토해보고 덤벼드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無計算的“으로 착수하는 데 비하면 밀어붙이는 저돌성은 대단하다.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동안 이룩한 경제발전은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세밀하게 따져보고 손익을 계산하기 보다 대충 감만 잡고서 덤벼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어느 대기업의 간부가 한 이야기가 상당히 그럴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모하지 않았던들 조선공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손익계산을 정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겁없이 조선부문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한국이 아니면 조선공업을 아무나 할 수는 없으며 그 결과 우리는 세계 제2의 조선국이 되었다고 말한다. 무모하기 때문에 되는 일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가 부담한 희생은 또 얼마나 컸던가. 겁없이 덤벼들었던 산업들이 대부분 부실화함으로써 그들을 지원하고 구제하고 또 산업구조 조정을 하느라고 막대한 손실을 국민들에게 떠넘겼던 적이 한두번이었던가. 오늘날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불균형과 갈등 및 온갖 부작용의 원인도 바로 이같이 무모하고 무책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경제력집중 · 정경유착뿐 아니라 조선 · 해운 · 해외건설 등 대규모로 벌였던 일마다 부실화함으로써 정부와 기업의 신뢰성 및 도덕성이 크게 손상을 입은 것은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이 이런 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무턱대고 덤비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선진화를 지향하려는 마당에 좀더 이해득실을 따지고 국익과 국민부담을 깊이 고려한 후에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추진하는 치밀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우리 선수들의 축구경기를 보면서 세계의 벽이 매우 두텁고 높다는 것을 실감한다. 국내에서 경기를 할 때에는 그나마 정확하지 못한 헛발질이라도 부지런히 하면서 운동장을 뛰어다니다 보면 한두골을 얻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수준으로는 월드컵과 같은 국제경기에서 결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국이 국제경쟁에서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무턱대고 덤비는 것만 능사로 여겨서는 안된다. 고도의 전문성과 치밀한 계획의 뒷받침이 없는 무모한 추진은 앞으로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떠한 승산이나 요행수를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다.

 한동안 대기업과 정부는 우리나라가 첨단기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소리높이 외쳤다. 관계부처에서는 다투어서 첨단기술산업을 위한 장기계획과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육성법을 준비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첨단기술산업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과거에도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이다. 첨단산업육성을 위해서 정부는 또다시 몇조원의 기금을 마련하고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확대할 용의가 있는 모양이다. 대기업들의 로비도 맹렬했다. 거기에다가 투기목적의 비업무용 부동산은 아니겠지만 정부가 첨단기술산업단지를 개발해서 기업에 공장부지를 분양하자는 지원안도 포함되어 있다. 무엇인가 화끈하게 한탕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직성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이런 것은 구태의연한 것 같다. 이번에는 또 첨단기술산업 때문에 국민들이 얼마나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對蘇접근, 이해득실 면밀히 따져야

 최근에는 韓·蘇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치권과 재계의 발빠른 對蘇접근이 우리를 몹시 들뜨게 하고 있다. 북치고 나발불면 너도나도 신바람이 나서 대열에 뛰어들게 마련이다. 요즈음 국내 유수한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소련과의 교역, 직접투자 및 기술협력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기업인들은 ‘소련행 특급’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과당경쟁까지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 · 소관계 개선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의의있는 일이다. 과거에도 우리의 대내외 상황이 어려울 때 베트남 및 중동진출로 돌파구를 찾은 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총체적 난국’을 맞이 했으니 이번에는 소련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소련과의 경제협력은 단기적으로 많은 위험이 따른다고 한다. 따라서 접근을 서두르기에 앞서 소련에 대해서 무엇을 좀 알아야 하며 이해득실도 면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對蘇경제협력에 있어서도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불가피하지만 종래에 중화학공업이나 해외건설을 지원한 것 같은 한탕주의식의 무책임한 지원은 삼가해야 한다. 이제 국민도 그런 일로 바가지 쓰는 데 신물이 나고 있으니 건수만 생기면 국민을 볼모로 잡고서 한없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려는 관행은 시정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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