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국회 길 잃은 민주주의
  • 박중환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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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합당 후 모든 권력 대통령에게 … 감시기능 스스로 포기

 제150회 임시국회 대정부질의 첫날(정치분야)인 6월25일 오전 10시10분께, 본회의장은 긴장감과 좌절감이 함께 감돌았다. 한송이 활짝 핀 수국 모양의 대형 조명등이 본회의장을 환히 밝힌 가운데, 카메라 플래시가 첫 질의자로 등단한 金鎔采의원(민자)에게 집중됐다.

 10시25분, 김용채의원이 내각제개헌의 필요성을 지적하며 “여야가 함께 연구해보자”고 말하자 평민당 의석에선 “연구해보았으니 반대하잖아”라는 비아냥이 터져나왔다. 이어 민자당 의석에선 “조용히 해”라는 맞고함이 들렸다.

 국회 회기중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한민국 국회의 전형적인 한 단면이다.

 이 땅에 참 민주화를 도입했다는 6 · 29가 있은 지 햇수로 정확히 3년째 되는 지금의 제150회 임시국회에서 버젓이 재연되고, 앞으로도 분명히 되풀이 재연될 의회의 고질이다. 언제까지 묵과해야 할 고질인가? 이 만성적인 ‘위기의 국회’를 치유할 묘수는 없는가?

 한국 의회의 위기를 건국 이후의 독재체재가 남긴 ‘악의유산’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결론을 미리 밝히자면, 한국의 경우 국회의 위기는 의원 자신의 위기로, 의원 하나하나의 무지와 타성에서 기인한다. 변신의 때가 왔는데도 변신을 못하는, 슬기와 소명의 결여가 위기의 주범이다.

 6 · 29 이후 무소불위의 대정부 질의와 수위를 잊은 초강경 발언이 예사가 됐지만 의원 서로가 멱살을 잡고 육탄으로 대결하는 사태가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그대로 재연됐다. 또 ‘의정시찰’을 이유로 외유길에 나서는 의원들이 많지만 이들 중 방문국 의회의 회기를 골라 방청석에 얼굴 한번 나타낸 의원이 과연 과연 몇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한국 의회의 위기를 규명키 위해 멀리 유신때나 5공 의회로까지 거슬러갈 필요는 없다. 이번 150회 임시국회, 그것도 개회 첫날 하루동안의 의정 르포만보아도 위기의 실상을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36분 : 김원기의원이 등단해 3당합당의 부당성을 따지며 ‘선총선 후개헌’을 주장했다. 김의원이 민자당내 민주계 의원들을 ‘변절 야당’으로 빗대며 “여당의 행정독재”를 비난하자 몇몇 민주계 의원들은 밖으로 나갔다.

 이 시각, 의석 중앙 맨 뒷자리의 오른쪽에 자리한 金泳三대표최고위원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굳은 표정을 짓다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金鍾泌최고의원은 묵묵히 듣고 있었고, 朴泰俊최고의원은 팔짱을 낀채 간간이 목을 움직였다.

 최고의원석 옆자리의 金龍煥정책위 의장 · 朴俊炳사무총장과 나란히 않은 金東英총무 · ?廷華수석부총무 등은 질의하는 의원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들은 부총무들과 원내대책을 짜는 듯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웃는 표정을 지으며 거대여당의 원내 사령탑다운 여유를 보였다. 3당통합으로 일시에 뒤바뀐 여대야소 의정의 현주소이다.

 

질의내용 듣지 않는 무성의한 의정 풍토

 11시5분 : 김원기의원의 질의가 끝나자 방청석에는 김용채의원의 발언이 끝났을 때와 똑같은 광경이 재연됐다. 30여명의 방청객이 우루루 일어서 밖으로 몰려나갔다. 질의 의원의 지역구 주민들로, 이날 지구당 인사의 인솔로 방청했다가 지역구 의원이 질의를 마치자 서둘러 퇴장하는 촌극이었다. 단체로 인솔돼온 방청객의 대부분은 자기 지역 출신이 아닌 의원의 질의는 아예 듣지도 않았다. 인솔자의 권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 습벽은 의석에 앉은 의원이나 방청객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오후 2시45분 : 점심식사 후 속개된 본회의에서 정부답변자로 등단한 姜英勳국무총리는 준비해온 원고를 더듬대며 읽었다. 이어 강총리는 “총리는 취임 이후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본 적이 있느냐? 행사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총리의 태만 때문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월권 때문인지 밝히라”는 김원기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시작했다. “헌법대로 실시하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평민당 의석에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강총리는 못 들은 척 원고만 계속 읽어 내려갔다.

 현행 헌법에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제86조 1항), 국무위원(각부 장관)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제87조 1항),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제87조 3항)고 명시되어 있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위헌행위 방관

 이 조항대로라면, 대통령이 내각을 구성할 때 먼저 국무총리로 의중에 둔 인물을 천거해 국회의 동의를 얻은 뒤, 그 국무총리가 각부 장관을 천거해 이를 대통령에게 제청해서 내각을 짜도록 되어 있다. 개각으로 인해 국무총리가 교체될 경우 조각 때와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국회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梁建교수(한양대 · 헌법학)는 “이런 절차는 문서상에 그치고,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양교수는 “88년 12월5일 강영훈총리의 임명 직후 이런 위헌시비가 있었고, 그 이후 개각 때에도 헌법절차를 지키는 과정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총리의 제청 없이 국무위원을 직접 선임하는 위헌성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그런 사례는 허다하다. 6공출범 직후인 88년 2월19일 李賢宰씨가 총리내정자로 임명된 뒤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6공 내각이 구성됐다. 그는 13대국회 개원식에 총리서리 자격으로 참석했다가 그후 임명동의를 받았다. 결국 12대와 13대국회가 이런 위헌행위를 방관한 셈이다.

 강총리의 서리 임명 때 위헌성을 제기했던 김원기 당시 평민당총무는 “그때 대통령의 탄핵으로 문제를 발전시키지 않은 것은 정치적 배려 때문이었다”며 “지금은 그런 위헌행위를 탄핵사유로 제기하려 해도 어렵게 됐다”고 왜소야당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헌법 제65조에는 대통령의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2백99석) 2분의1 이상의 발의와 재적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평민 · 민주 두 야당을 합해도 77석에 불과한 지금의 형편에선 재적 3분의1이면 가능한 총리나 국무위원의 탄핵소추 발의마저 불가능하다.

 이런 위헌문제는 국회의 탄핵 여부에 앞서 대통령이 취임선서 서두에서 공약했듯이 헌법을 지키겠다는 자세가 확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 의회정치에 정통한 한 원로 언론인은 “성문헌법이 없는 영국에서도 정당이나 황실에 법률고문을 두고 관례와 상식을 따지고 있다. 한국에는 헌법의 규정조항이 엄연히 있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이것은 정치지도자가 스스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보좌기관에 법률담당 비서관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다시금 연출된 난장판 국회

 이날 오후 강총리의 답변 도중 또다른 해프닝이 뒤따랐다.

 2시48분 : 강총리가 “안기부의 정치 간여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자 평민당 의원들은 “金泳三대표가 뒷조사를 당했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따졌다. 강총리가 “일부 오해가 있었는데 김대표가 양해했다”고 넘겨버리자 의석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김대표는 싱긋이 웃었다.

 2시56분 : 강총리는 “청와대 특명사정반 구성과 초정부적인 활동의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는 金正吉의원(민주)의 오전 질의에 대해 “5 · 7대통령특별담화에 따른 조치이다. 자세한 것은 법무장관으로 하여금 해당 상임위에서 밝히도록 하겠다”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그러자 민주당과 평민당 의석에서 야유가 쏟아져나왔다.

 6시10분 : 강총리는 “지난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서울시 예산이 盧泰愚후보의 선거자금으로 전용됐다”는 李海瓚의원(평민)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시장이 상임위인 행정위에서 보고토록 하겠다”며 또다시 ‘상임위 답변’으로 얼버무렸다. 이를 듣고 있던 이의원이 의장에게 총리 답변을 중단토록 의사진행발언을 했다. 때마침 의장을 대행하던 趙尹衡부의장(평민)이 총리의 답변을 중단시켰다. 강총리는 답변을 계속했다. 이의원이 단상으로 뛰어나갔다. 여야 의석은 고함으로 어수선해졌다. 5공 이전 흔히 보아왔던 국회의 여야 대결은 재연됐다. 민자당의 소란행위 자숙 다짐도 공염불이 됐다.

 

독자적 투표권 없어 개인의견 ‘묵살’ 일쑤

 헌법상 의원 개개인은 단독입법기관(제52조)으로서 독자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입법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보스(총재 등) 중심으로 운영되어왔다. 특히 국회는 교섭단체(20석 이상의 정파)의 원내 대표인 총무(상임위의 경우 간사) 중심으로 운영돼, 정파간에 이견이 생기면 총무 또는 간사가 대표로 나서 절충한다. 이 과정에서 총무 · 간사는 자신의 임명권자인 보스의 뜻을 따르게 마련이다. 의원 개개인의 의사는 소외되기 일쑤이다.

 재선의원인 민자당 ㄱ의원은 “이런 병폐를 막고 의회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당법과 국회의원선거법에서 규정된 ‘후보의 중앙당 공천’을 금지하고 철저한 지역구 경선제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총무 중심의 국회운영을 과감히 탈피, 의원 개개인의 독자적인 투표를 허용하는 교차투표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법부인 국회와 집행부인 정부가 사법부와 함께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면서 나라살림을 꾸려가도록 하는 것이 헌법의 3권분립 정신이다.

 국회의 대정부질의는 이러한 3권분립정신에 입각해 볼 때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독하고 견제하는 중대한 헌법행위다.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무성의한 답변을 해도 속수무책일 경우 국회의 견제기능은 상실되고 만다. 특히 거대여당이 정부를 싸고돌 경우 유신 · 5공치하에서 처럼 국회는 ‘여의도 양로원’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헌법상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하며(제66조 4항),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해야 한다.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副署한다(제82조)고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의장이 되고 국무총리는 부의장이 되며(제88조 3항),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할 때에는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진행하고 의안이 제출 · 심의 · 의결에 참가한다. 특히 총리는 국회에 출석 · 답변할 의무가 있으며(제62조), 총리나 각부 장관은 직권으로 총리령이나 부령을 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제96조).

 이 규정대로라면 국무총리는 상당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괄하며(제86조 2항), 국무회의는 의결기관이 아닌 심의기관(제88조 1항)으로 규정돼 있어 국무총리의 독자적인 권한행사는 사실상 제한받고 있다. 이런 탓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권한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는 셈이다.

 許營교수(연세대 · 헌법학)는 “국무총리는 실질적으로 불필요하게 된 헌법기관으로 대통령의 1급참모에 불과할 뿐이다”며 “인체의 맹장과 같이 실제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진다. 총리는 대통령을 위한 對국회용 방탄막이다”라고 비유하고 있다.

 

영수회담 등 파행적 ‘절충관행’ 문제

 파행으로 치닫던 대정부질의는 28일(사회분야) 밤 6차례의 정회소동 끝에 자정을 넘기자 자동유회되고 말았다. 이날의 소동은 洪起薰의원(평민)이 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서울시 예산 10억원이 盧泰愚후보 명의의 격려금으로 지원된 서울시 자료를 제시하며 따지자 “그 자료의 출처를 알아본 뒤 상임위에서 보고토록 하겠다”는 강총리의 답변과 “국정 조사권을 발동하자”는 평민당의 주장이 맞서면서 빚어진 것이다.

 28일 자동유회 사태는 29일에도 여야 격돌로 계속 이어지다 밤 9시30분께 산회돼 사회분야 대정부질의는 무산되고 말았다.

 허영교수는 “여당의 총재를 겸임하고 있는 대통령은 소속의원들의 공천권과 막대한 자금을 쥐고, 의석 3분의2가 넘는 거대여당을 통해 입법부를 사실상 압도하고 있다. 또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 헌법재판소장 등의 임명도 압도적인 여당 의석을 이용해 뜻대로 할 수 있어 사실상 사법부에도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게 됐다”며 3당통합 이후 3권이 대통령에게 편중된 정치현실을 지적했다. 여야간의 이견이 맞설 때면 국회의 문은 닫아놓고 으레 청와대 영수회담으로 타결하려는 관행이 생긴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듯하다.

 “평민당이든 민주당이든 야당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金光一 의원(민주)의 하소연을 통해 ‘民意국회’로 출범했던 13대국회가 한계에 부딪혀 있음을 실감한다. 의회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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