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自治 없는 民主主義 없다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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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가 곧 프랑스”라는 말이 있다. 정치 · 경제 · 문화 · 교육할 것 없이 파리 없이 프랑스를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서울이 곧 한국”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서울의 비중은 프랑스에서 파리의 비중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 프랑스공화국은 사회당의 미테랑대통령의 통치하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당정부가 프랑스 전역을 수직적으로 직접 다스린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외교 · 국방 · 경제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통치권은 각급 지방정부가 맡고 있다. 州 · 市 · 邑 등 주민들이 선출한 사람들이 50만을 헤아리며, 그들이 제마다 지역살림을 맡고 있다. 이른바 ‘수직적 분권’이 이루어져 중앙의 專制를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 현실적으로 중앙정부는 사회당 치하에 있지만, 파리는 우파인 공화국연합총재 자크 시라크가 다스리고 있다. 시라크는 88년의 대권경쟁에서 미테랑에게 54대46으로 패배했지만 계속 파리시장으로 있으면서, 야당 지도자로 프랑스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부러운 것은, 좌파가 중앙정부를 잡고 우파가 파리시를 다스리는데 상호간에 별로 불협화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기야, 미테랑과 시락은 86년부터 88년까지 전자는 대통령으로 후자는 총리로 좌 · 우 동거(코아비타숑) 정부를 멋지게 운영했던 사람들이다. 7개국 정상회담이 열리면 두 사람이 나란히 참석하여 서로의 이견을 즉석에서 조정하는 절묘한 솜씨를 보이면서.

 

서울시장이 ‘임명’되는 ‘포니수준’ 이하의 정치

 우리 정치 형편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한심스럽다. 어느 外紙가 “포니자동차 수준에도 미달되는 수준”이라고 비꼬았고, 서울주재 교황청대사가 “유치원 수준의 민주주의”라고 빈정댔다지만, 아직도 인구 1천만의 서울시장이 ‘임명’되고 60억달러(약4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숫자의 예산이 국무총리실에서 편성된다. 참고로, 국회가 심의결정한 90년도 중앙정부 총 예산이 22조, 그 가운데 방위비 6조9천억을 빼면 15조 남짓하다. 실제로 서울시 예산은 국방비를 제외한 국가 총예산의 4분의1이 넘는 규모이다.

 이렇듯 막대한 시민의 세금이, 시민 또는 시민대표의 참여 없이, 시와 총리실 관료들 멋대로 편성되고 집행되는 부조리, 이런 부조리가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치고 그 엇비슷한 사례라도 있는 것일까. 비민주적이요, 권위주의적이요, 독단적이요, 관료주의적이다. 왜, 지금 국회운영을 마비시키고 있는 서울시 예산의 ‘불법전용’사고가 일어났는가도 자명해진다.

 정말, 창피하고 어처구니없는 우리의 현실, 이러고도 무슨 낯으로 감히 ‘民主化’를 떠들어대는 것일까. 52년부터 61년까지 실시된 이땅의 지방자치가 3 · 4 · 5共으로 불리는 朴正熙 · 全斗煥시대에 질식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어차피 군사통치, 군사적 정치문화가 지배하던 어둠의 시대였으니까. 그러나 6 · 29를 기점으로 하는 ‘民主化’ 6공시대에서조차 지방자치가 계속 빛을 못 보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물론, 민주주의가 지방자치 없이는 반신불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 일을 내가, 우리 일을 우리가, 우리 지방 일을 우리 지방 사람이 하는 것,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풀뿌리’이고, 그 풀뿌리가 자라나 중앙정부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것. 거듭 강조하지만 지방자치야말로 주민이 익숙한 일을 주민 스스로 결정짓는 참여민주주의요, 지방자치야말로 비근하고 잘 아는 일을 토론하고 타협하고 결정짓는 민주주의적 기법의 훈련장이요, 지방자치야말로 중앙집권 내지 중앙독재를 막는 방파제로써 정치의 중앙무대에 큰 변혁이 생겨도 지방 전역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국가 안정의 안전판이다. 三權分立이라는 수평적 권력분산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권력의 독재화를 예방하듯이, 지방자치야말로 수직적인 권력분산으로 균형 속의 안정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행정’만 있지 ‘정치’는 있을 수 없다는 관료적 사고방식

 6共출범 후, 지자제 실시는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민주화의 큰물결의 한 줄기였다. 88년 봄 12대 국회에서 지방자치법이 통과되는 등 ‘풀뿌리’민주주의가 가시권에 들어섰었다. 그러나 정부 · 여당은 13대 국회가‘여소야대’가 되어 자신을 잃게 되자 이핑계 저핑계로 구체적인 실천을 늦췄다. 그러다가 작년 12월15일의 이른바 청와대 대타협에서 금년 상반기에 지방의회 구성, 명년 상반기까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의 일정에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4당대표들은 이른바 ‘정당추천제’에 합의하였다. 모든 걸림돌이 제거된 것이다.

 그러나 好事多魔라 할까, 민정 · 민주 · 공화의 3당이 민자당으로 통합함에 따라 다시 한번 지자제 실시는 암초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지방선거에서 정당추천제를 배제하겠다는 정부 · 여당의 異論 제기, 이를테면 프랑스 사회당이 중앙정부를 쥐고 있는데 우파가 파리시정부를 쥐는 그런 상황을 한국민주주의는 용인할 수 없다는 속셈이다. 아니, 중앙정치에만 정당이 참여하는 ‘정치’가 존재하고, 지방정치에는 ‘행정’만 있지 아예 ‘정치’는 있을 수 없다는 관료적 사고방식이 3당합당으로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결국, 지방자치를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정당추천제는 작년 12월 대통령과 야3당 총재간의 합의사항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들 사이의 합의사항일 뿐만 아니라 지자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따라서 이 약속의 실행은 여야간의 정치적 흥정거리가 될 수 없다. 정치의 신의를 얻고,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을 씻기 위해서도 명실상부한 지자제 실천의 용단이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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