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精 사라지는 진부場
  • 진부·장영희기자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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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에 밀려 5일장 명맥만 산약초 물동량은 전국 으뜸

 장터의 곳곳은 사람의 냄새로 흥건하다. 빽빽한 틈새를 지나가야 하지만 고역이라기보다는 정겨움이 앞선다. 각박한 인생살이에 흐뭇한 인정을 나누고 싶어 찾는 곳이 장터이고 보니 그곳엔 우리네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게 마련이다. 장터엔 없는 것만 빼놓고 다 있다. 어디서 쏟아져 들어왔는지 갖가지 물건들이 주인을 기다린다. 이 좌판도 기웃, 저 좌판도 기웃, 가슴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등이 굽은 할머니의 눈길은 형형색색의 옷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손자 놈에게 쥐어줄 물건을 찾는 할머니의 손자사랑을 이 장터에서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장날은 새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날이거니와 그리운 이들의 '오작교' 역할도 한다. 갑자기 어깨를 치며 "평안하신가"하는 목소리가 장바닥에 메아리 친다. 시집간 20리 밖 고모네 소식도, "건어물을 사더라"는 장꾼들 말에서 사돈집 제삿날도 알아챌 수 있다.

 발가벗은 삶 속에 응석을 부리며 씰룩쌜룩 꼬리를 떨던 남사당의 한마당과 약장수가 신들린 몸짓과 말투로 장꾼들을 호리던 만담과 재롱섞인 촌극은 이제 보고 들을 수 없지만 지금도 적잖이 '옛장'은 선다. 모양새나 풍물은 세태에 따라 크게 변했지만 아직도 옛장터의 맥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부면 33개리에서 1천여명 모여들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에는 3일과 8일에 어깁없이 장이 선다. 珍富場. 태백산맥의 거봉 오대산의 서쪽 자락인 계방산과 박지산에 둘러싸인 진부는 예부터 약초와 산채로 알아주던 장이다. 지금도 고사리 더덕 도라지 드룹 곰취 참나물 등 산나물과 당귀, 천궁 등 산약초의 물동량이 많기로 전국에서 손꼽힌다.

 장이 선 날에는 진부면내 33개리에서 이른 아침부터 1천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5천여평의장터가 북적거린다. '뜬구름 잡는' 대관령을 넘으면 지척인 강릉에서도 구경삼아 사람들이 몰려오고, 충북 제천에서도 도경계선을 넘어온다.봉평장(2,7일장)을 거친 장꾼들은 이들보다 먼저 와 전을 벌이기에 바쁘다. 어물전 채소전 곡물전 옷전 약전 유기전 등 좌판들이 즐비하게 마련된다. 진부는 이들의 부산한 행차로 서둘러 새벽 잠을 깬다.

 그러나 첫 장이 선 구한말 이래 1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진부장도 옛날과는 사뭇 달라졌다. 곡물전은 있으되 초라해졌고 갓전이니 드팀전이니 하는 것들은 온데간데가 없다. 농촌공동체 문화의 구심점이었던 5일장은 생활용품의 판매장소로 모습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허섭쓰레기 덤핑물건과 시겟돈을 마련할 목적의 행상꾼이 들락거리는 곳으로 변질되고 있는것이다.

 

마실 나온 사람들의 '만남의 장'

 장날은 장날. '장선 날 장에 오지 않으면 안달난다'는 말처럼 그래도 아직 흥청거리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장날은 즐거운 날'이라생각하는 이들 촌사람들에게 있어 장날은 거센 도회바라 속에서도 꼭 지켜내야 할 풍속으로 여겨진다. "황영감 술을 더 자시면 안되겠어. 얼굴색이 어째 좋지 안혀" "우짠 일로 통 보이질 않으셨어유. 제천댁은 해산날이 돼가지유. 형님 내가 한번 놀러갈께유."  장터는 술친구를 찾아 장에 나온 ?老들과 마실삼아 장에 나온 아낙네들의 '만남의 장'으로 화한다.

 뭐니뭐니해도 장은 장돌뱅이들과 고객들의 불꽃튀는 흥정으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실한 마늘이 어데 또 있으면 나와보라 그라요, 아지마니는 좋은 건 좋다 그라요. 대화마늘인데 비싸다고 해" "무조건 천원. 싸다 싸. 나물도 데치고 빨래도 삶고 하는 양재기가 천원" "시시한 커피 몇잔이나 술 한번만 안먹으면 부모님께 효도하고 아내한테 사랑받을 수 있는 신비의 영약, 희향이 왔어요." 장꾼들의 호객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요긴한 물건이 아니어도 손님들의 귀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홍정이 벌어지는데 사는 이들의 버팀은 장꾼들의 능란한 상술을 이겨내지 못한다. "헐하게 해달라"는 자신의 말이 번번이 묵살되지만 부르는 값이 비싸지 않다는 것을 아는 탓에 실랑이를 조금 벌이다가 곧 사고 만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다.

 아낙네들의 '멋내기'도 볼거리 중의 하나. 몸빼(통바지)를 이리저리 몸에 대보는 農婦들은 "멋쟁이 몸빼만 고르시네"라는 장꾼의 칭찬이 싫지는 않다.

 그저께는 정선, 어제는 봉평, 오늘은 진부, 내일은 대화로 평창군 일대를 돌고도는 이들 장돌뱅이의 인생유전은 고달픈 삶만큼이나 애환도 많다. 그릇전 주인인 ?????(39)씨는 "성권엄마. 옥희엄마, 단골이 한정도 없이 많지요. 힘들다가도 이들이 생각나고 저도 진부장을 손꼽게 되지요"라고 장꾼 생활의 기쁨을 얘기하지만, 5일장 자체가 쇠락되는 현실을 어쩌진 못한다.

 장에 나선지 11년째라는????(52)씨는 "이곳 진부장도 장세가 크게 줄었다"며 안타까워한다. 수퍼마킷 등 현대적인 유통업체들이 곳곳에 들어와 5일장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씨는 장돌뱅이가 '결코 부끄럽지 않은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다가도 여심히 장을 돌아다녀봤자 다섯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 생활 앞에서는 속이 상한다며 핏대를 올린다. 대구에서 참외를 떼다 빔새 싣고와 진부장에서 팔고 있는 ??.??(44)씨도 "전통적인 5일장의 풍물은 사그라진 지 오래"라면서 그래도 배운 게 이 일인지라 쉽게 털고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고 장돌뱅이의 애환을 얘기한다.

 

수퍼마킷 등 5일장 존립 위협


 진부 면사무소 全??면장은 "진부장과 大和장은 서울 동대문 밖에서는 제일 큰 장이었다"며 장꾼과 나그네들의 '주막거리'로 불릴 정도였다고 화려했던 시절을 회고한다.  文車福부면장도 "서울 마포에서 홍천 나루터까지 뱃길로 운반된 소금과 ,강릉에서 올라오는 해물이 황소등에 실려 날라졌으며 농촌에서도 며칠밤을 설치며 짜낸 삼베와 약초, 산나물 등을 장에 가져와 소금과 기름. 고무신 등의 생필품과 바꿔갔다" 고 말한다.

 지금도 강원도내 59개 장 가운데 큰 축에 속하는 진부장이지만 거센 현대화의 물결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거리에는 가전제품 매장이 말끔한 모습으로 버티어 서 있고 생필품을 파는 수퍼마킷 등이 여기저기 문을 열고 있다.

상공회의소 자료에 의하면 장터는 조선조때는 9백5개가 열려 성시를 이루다가 82년말 8백66개, 88년말엔 7백52개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진부처럼 '큰장'은 호남지역 일부 외에는 많지 ㅇ낳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형편이다. 강원도청 林?烈상정계장은 "5일장을 활성화시키고 싶은 심정이지만 행정력이나 제반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한다.

 진부ㆍ봉평 ㆍ대화장은 李孝石이 쓴 <메밀 꽃 필 무렵>의 무대이기도 했다.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던 장돌뱅이들의 장돌림 형태는 당나귀 대신 타이탄트럭으로 바뀌었다. 앞에도 뒤에도 없던 '단 한번의 괴이한 인연'을 마든 허생원의 애틋함도 이들의 세계에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감고 중도위 쇠살쭈'와 같은 독특한 말을 만들어냈던 거간꾼들의 세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장꾼의 욕지거리에 응수하던 아알진 술집여자의 목소리도, 주막의 봉놋방도, 상여집도, 구성진 가락의 각설이패들도 이젠 전설이 돼버렸다.

 병아리장수가 먼저 대화장을 향해 떠나갔다. 간이 옷걸이대를 철거하기 시작하는 옷장수가 마지막으로 장을 뜨려할 때는 거센 바람이 천막을 까뒤집을 듯 불어쳤다. 진부장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

 백제 <정읍사>에 나오는 '저자에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이야기'가 말해주듯 장구한 유래를 가진 5일장. 사고파는 비정의 상술만이 5일장을 지배한다. 해도 그나마 사라져갈 것이라는 서글픔은 뉘엿뉘엿 해질무렵, 파장을 하는 장돌뱅이들의 뒷모습에 쓰여 있는 듯 느껴졌다. 그 뒤로 용평리조트와 지금 짓고 있는 무슨무슨 레조텔 등으로 관광 배후지와 교통요충지로서의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진부의 미래가 클로즈업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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