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觀錫 통추회의 상임대표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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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 통합안 발표"

 "길고 어두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야권통합의 터널에 한줄기 빛이 비쳐들어왔다." 지난 6월 28일 재야인사 1백33명의 '범민주통합수권정당 촉구를 위한 추진회의'(이하 통추회의)가 발족하자 한 야당정치인이 던진 논평이다. 그러나 이 한줄기 빛은 우연히 던져진 것이 아니다. 지난 5월8일 야권통합을 촉구하는 김관석ㆍ박형규ㆍ최성묵목사, 이돈명변호사, 김찬국 연세대교수 등 재야원로 5인의 서명 이후 전국 각지의 서명운동 등 두 달여의 작업 끝에 재야가 간신히 이루어낸 결실로 바로 통추회의다.

 그동안 정치권 못지 않게 노선의 차이와 지역감정으로 분열해온 재야를 '묶어내고' 마침내는 엄청난 난산을 겪고 있는 야권통합의 산파역을 맡게 될 통추회의 상임 대표 金觀錫목사.NCC 총무, 기독교방송 사장 등을 두루 거치며 60년대 이후 기독교 사회운동의 정신적 지주이면서도 현실정치에는 '짐짓' 입장 표명을 보류해온 金목사이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통추회의 참여를 더 비중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 인권ㆍ사회문제에 대한 큰 관심과 참여와는 달리 구체적인 정치문제에 관해선 한사코 입장표명을 유보해오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현실정치에 간사하시게 된 개인적인 배경이 궁금합니다.

 과거부터 늘 그래왔습니다만 앞에 나서서 선창한다기 보다는 그저 재야의 몇몇 사람이 모여서 이 시국에 대해 걱정하다가 자연히 야권통합문제를 거론하게 됐지요. 가장 큰 장벽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지역 감정의골, 또 지난 대통령선거 때 재야가 양김씨 지지로 양분된 이후 깊어진 골, 이 두가지 골이 가장 큰 장벽이라는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밖에 이념적인 차이라든가 대립, 갈등 같은 건 별로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그때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한번 이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재야세력을 묶어 보는게 어떻겠느냐는 소박한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지난 5월8일 성명을 내게 된 것입니다. 그것으로 일단 우리의 할일은 끝났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춘천ㆍ대전ㆍ인천 지방에서 이 취지에 호응하는 지역서명운동이 뒤따랐어요. 일이 그렇게 되자 재야 내의 기독교운동 세력이나 청년들이 실무적인 일은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이 운동을 좀더 끌어가 달라고 해서 결국 통추회의 발족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실제로 통추회의에 참여한 재야인사들을 보면 지역성을 뛰어넘어 영호남의 명망가들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 일이 그리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고 서명을 발표하신 이후 상당히 갈등을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5인성명이 나가자 두 갈래 비판의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어요. 하나는 평민당측이 배후조정을 하는게 아니냐 하는 의혹이었고, 또 그와 정반대의 입장에서는 김대중총재를 2선으로 퇴진시키고 평민당을 음해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양쪽에서 그런 오해를 받으니 참 곤혹스럽고 속상했지요. 심지어는 원로라는 사람들마저 "왜 너희들만 원로냐"라는 소리도 하고. 그래서 한동안은 다 집어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운동에는 언제나 비방ㆍ오해ㆍ중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게 입증되면 오해가 풀리지 않을까 하고 밀고 간 거지요.

● 하지만 통추회의의 인적 구성을 보면 과거 김대중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인사들이 많아서인지, 아직도 평민당과 관련시켜 보는 눈길이 있습니다.

 우리 통추회의의 구성요소가 그렇게 되어 있는 만큼 그런 오해는 끝까지 있을겁니다. 하지만 재야가 과거의 분열로 상처와 진통을 겪으면서 많이 성숙하고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또 적어도 그런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야권통합을 추진하는 만큼 과거의 입장을 극복하고 되도록 그 차이를 표면화시키지 말자구 서로 다짐하고 있어요. 물론 과거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순 없고 언제나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이겨나가야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 운동을 끌고 갈 수 없습니다(김목사 자신은 대통령선거에서 끝까지 특정후보에 대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중립을 견지한 바 있다. 그렇나 최근 통추회의 발족 직전에 나돈 평민당 영입설로 말미암아 개인적으로 크게 곤욕을 치렀다. 자신의 평민당 영입설을 다룬 ≪시사저널) 36호의 기사도 거기에 한몫 거들었다고 그는 섭섭해했다).

● 통추회의의 성격이 아직 분명히 인식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 언론에선 '재야신당 창당설'이라고 보도했는데, 이 기회를 빌어 그 성격을 분명히 해주시지요.


 일부 매체들이 재야가 마치 신당을 만드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만, 분명히 말하거니와 절대로 우리 스스로가 무엇을 하나 만들어서 신당을 창당한다는 건 추후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두어 신문이 통추회의를 보도하면서 "야권통합에 촉매제가 될 것"으로썼던데, 통추회의의 성격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낸 좋은 표현인 것같아요. 촉매란 본래 어떤 이질적인 두 물질을 하나로 만들고 접목시키는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야권통합의 촉매제 역할입니다. 독자적 당이 아니라 3자 통합을 위한과도기적인 압력기구, 여건조성기구이지요.

● 그러나 통추회의에서 촉매역할을 하려는 그 야권통합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시기적으로 보더라도 '물건너갔다'는 비관적 견해도 만만치 않은데요.

 우리 사회 일각엔 정치에 대한 허무주의와 냉소주의가 분명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젠 그런 무망한 일 기대할 것도 없다. 허망한 기대를 버리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의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도 꿈을 잃지 않고 무엇인가 추구하다 보면 그래도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 지금 말씀하신 개인적인 경험은 인권이 극도로 탄압받던 70년대에 NCC 총무를 하실 때인가요. 아니면 방송통폐합과 상업광고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80년대 기독교방송 사장 시절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아니 그보다도 가장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87년 제5공화국 말기수백명의 기독교인들이 인천에 모여 국제회의를 열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기독교인의 성명서를 채택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집회 준비과정에서 탄압도 참 많이 받고 관계자들이 끌려가고 연금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처럼 암울하고 공포감이 감도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정황으로는 입도 벙긋하기 어려웠던 남북한 불가침 평화조약, 핵문제, 군축문제 등을 선언서에 다 담았습니다. 그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한치 앞이 캄캄하고 내일 어찌 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통일문제 따위를 거론하는 게 어찌 보면 몽상가 같고 시대착오적인게 아니냐고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남북한 평화조약이나 군축문제가 동유럽의 변화와 더불어 구체적인 현실문제로 거론되고 있지 않습니까? 야권통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현실로만 보면 암담한 이야기 같지만 바람직한 일인 만큼 소망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 절망 속에 희망을 키운다는 말씀이 상당히 종교적으로 들리는데.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야권통합의 구체적 협상과정에선 종교인의 한계가 드러나지 않을까요?

 그렇지요. 그런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만날 때마다 그런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인정해왔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한계를 인정해왔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행동할 때 여건에 속박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힘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또 한국정치의 본질을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보지 않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정치현실을 놓고 자기의 욕심과 자기 당의 이익에 집착하는 주도권 싸움을 하다보니 더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정치인들에게 하루빨리 야권통합을 이뤄 정치본연의 문제를 다뤄달라고 요구하고 주문할 뿐입니다.

● 정치인들이 풀어야 할 정치 본연의 숙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숙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앞으로 창당할 범국민수권정당의 큰 과제이기도 할 텐데요.

 민주주의를 구태여 어려운 학술적 용어로 규정하지 않고 쉽게 말하면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권력과 경제력을 가능한 한 공정하게 분배하고 그 배분과정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권력ㆍ경제력의 독점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돼오다 보니 군사독재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경제적 소외계층이 생기고 지역감정과 파벌문제가 대두했습니다. 한국의 정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무엇보다도 빈부격차의 해소입니다. 이 문제 하나만 제대로 풀려고 해도 몇십년 걸리는데 지금 이 정권이나 정치인들에겐 이 문제를 풀려는 의지조차없으니 정치 전망이 암담해지는 것이지요. 거대여당이 이렇듯 방향감각을 상실한 정치를 할 때, 야권은 야권통합을 이루어 국민의 욕구를 대변하는 건전한 야당역할을 하면서 수권정당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통추회의로 다시 화제를 돌리지요. 야권통합 추진속도를 결정하는 변수는 두 야당의 태도와 함께 여권의 본격적인 내각제 개헌일정이 아닐까요? 내각제 강행이 야권의 위기감과 국민여론을 고조시켜 통합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만.

 글쎄,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제나 제도상으로 볼 때는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제를 해도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고 내각제하에서도 민주화를 이룰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치제도 개편을 장기집권 같은 정치적 편의주의에 의해 시도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려면 적어도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국민들을 설득해낼 수 있다면 내각제도 상관없다고 보지만, 현재 내각제를 추진하는 세력들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같진 않아요. 통추회의와 내각제 문제를 서로 연관지어 생각해본적은 없습니다. 내각제든 대통령제든 제도변화 여부와 관계없이 야권이 하나로 뭉치는 게 더 근본적이고 시대적인 요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통추회의 출범 기자회견에서 평민ㆍ민주 두 야당에게 독자적인 통합안 제시를 당분간 자제해달라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인 통합안과 활동방향이 정해져 있습니까?

 양당에 제시할 통합안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7월 중순경에는 내부의 의견수렴을 거쳐 대충 윤곽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에 앞서 먼저 양당은 이대로 떨어져 있으면 어느 당도 절대로 수권정당은 될 수 없음을 철저히 인식하고 또 지분문제에 있어서도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런 획기적인 인식전환이 없으면 통추회의에서 어떤 절묘한 통합안을 내놓더라도 성사되기 어렵지요. 야권통합운동의 구체적인 방향에 관해선 처음부터 소위 명망가 중심으로 두 야당과의 상층부 협상을 위주로 진행하느냐, 아니면 운동권 방식으로 밑바닥부터 다지며 국민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갈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많았습니다. 야권통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게 아니고 참으로 오랜 설득과 협상, 그리고 국민적 지지를 통해서만 가시화될 일이므로 이 두가지 방식을 병행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통추회의 내부에서는 야권통합운동의 방향과 관련해 '사층부 협상'과 '국민운동' 방식 가운데 어느쪽에 비중을 둘 것인가를 놓고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종로5가 출신의 기독교운동 세력들은 대부분 전자를, 李富榮씨를 비롯한 민연추탈퇴세력들은 후자를 주장하고 있다).

● 기득권 포기는 야권통합의 가장 큰 현실적 걸림돌이 돼온 金大中 평민당총재의 2선후퇴까지 포함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끝까지 언급을 해서는 안되는 문제라고 여깁니다. 이 문제에 관한개인의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정치적 이슈로 제기됐을 때는 재야로선 끝까지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게 제 개인적인 소신입니다. 어떤 공정한 입장에서 정치적 심판을 받아 물러나게 하거나 추대해야지, 일방적으로 몰아쳐 어거지로 처리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일이지요.

● 통합이 먼저냐, 독자적인 진보정당 창당이 먼저냐를 놓고 이견을 보인 끝에 민연추 내의 통합추진세력들이 민연추(현 가칭 민중당)를 탈퇴하고 대거 통추회의에 참여했습니다. 재야가 제도정당과 합치면 '진보'의 목소리가 묻힐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차라리 독자적인 진보정당 결성 주장도 있습니다.

 보수ㆍ혁신의 문제는 누가 먼저 제기했는지 hf라도 참 위험한 논리일 수 있다고 보는데요. 보혁구도 혹은 색깔론은 사람들을 저마다 갈라놓고 정치를 끌어가는 게 편리하다고 생각한 노희한 보수정객들의 사회적 데마고그 또는 함정이라고 봅니다. 한국 국민의 전체의식은 어떤 의미에선 대부분 혁신적입니다. 신생 중산층만 하더라도 위를 바라보는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꽤 많다고 봅니다. 이런 국민적 지향성이나 성향을 고려한다면 계층에 따라 너무나 엄격하게 보ㆍ혁으로 갈라놓는 건, 얻는 것보다 읽는 게 더 많은 위험한일입니다. 무론 새 통합야당이 실현되면 통추회의의 일부가 신당에 들어가 소회계층을 대변하는 촉매역할을 해야 하겠지요.

● 결국 김목사께서는 한국사회의 갈등을 아직은 보ㆍ혁구도가 아닌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파악하는 게 훨씬 적절하다고 봅니다. 우선 민주적으로 富를 분배하는 일이 더 급선무지요.

 

 마지막으로 통합신당에서의 본격적인 정치참여 여부를 슬쩍 타진해보았다. 김목사는 "산파가 직접 애를 낳는 걸 보았는가"라는 비유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신은 야권통합의 산파역에만 머물 뿐 직접 애낳고 키우는 일-정치하는 일-은 산모인 정치인들에게 맡기겠다는 뜻이겠다. 김목사는 오히려 자신이 마지막 일터라고 여기고 힘을 쏟는 <새누리신문>이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해 안타깝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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