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할 歐美 중심적 思考
  • 박중희(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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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이곳 신문(업저버紙)을 집어들 때까지는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 한국팀이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뛰었다는걸 미처 생각치 못하고 있었다.

 이 신문에 의하면 세계 텔레비전 시청인구의 반 이상이 아시아에 산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를 제외하면 그렇게 큰 덩어리를 대표해 나온 대표가 단하나, 한국팀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선수들이 책임감이 무거워서도 뛰기 힘들었겠구나 싶어진다. 또, 월드컵 참가권에서 보는 소위??? 중심주의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투덜거리게도 됐다 싶다.

 그렇게 큰 아시아, 아프리카대륙에서 겨우 네 팀이 나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그마한 영국이란 섬에서만 세개(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팀이 본선에 나왔다. "세계가 골고구 참가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세계'字를 붙여 월드컵이냐?"라고 해대는 불평도 그런 불균형을 두고 하는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월드컵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미국 사람들이 자기 국내팀들끼리 하는 프로야구 리그전을 '월드 시리즈'라 부르는 건 우리가 다 안다. 참가 범위도 그렇지만 판정기준도 다분히 歐美 중심적인 미인대회에서 뽑혀도 '미스 월드'다(그러면 거기 안 나가고 거기서 뽑히지도 않는 딴 곳 처녀들은 죄다 '미스 어글리'들이냐?). 그건 그래도 약과다. 他洋에선 알지도 못하는 서양장기도 둘이 머리 맞대고 두다가 이기면 '월드 챔핑언'이 된다. 그런게 물론 스포츠 따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 작년에 잠깐 화제가 되려다 만 소위 '후쿠야마 논문'이라는 것도 있다. 美 국무성에서 일하는 후쿠야마는 "이제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가 전체주의 체제에 이겼으니까 인간의 역사는 이로써 끝장나는 것이고, 인류 앞날에 남은 것은 무한한 권태뿌이다."라는 요지의 '大논문'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은 속된 말로 바지저고리들이냐?" 다행히 이런 소리를 하고 나선 게 미국 자체내 일부 여론이었던 데다, 하난의 이야깃거리로서도 어딘지 김이 빠져 우리들까지 거기에 이러쿵저러쿵 끼어들 필요는 별로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서도 엿보이는 歐美 중심주의란 꽤나 뿌리 깊다는 느낌만은 새삼스럽다.

 하긴 그게 마냥 무리일 것도 없긴하다. 하다못해 우리가 신는 양말까지도 서양에서 온 '양'말이다. 우리가 사는 '極東'도 유럽이 중심이어서 동쪽 끝이다. 그런나 이미 세계화되어버린 걸 어쩔 수도, 어쩔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를 테면, 축구중계 '아나'가 "골!" 하는 걸 굳이 "드디어 공이 구멍 속에 들어갔습니다."할 것까진 없다. 서양에서 온 걸 다 빼면 남을 만한  게 많지 않다.

 

◆…그러나 많은 것이 歐美에 의해 세계화됐다는 것은 (일부러 복잡하게 하는 얘기 같지만) '세계의 歐美化'나 '歐美=세계'라는 것과 같은 얘기는 아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얘기한다면 '뉴욕 양키즈'가 이기느냐 '브루클린 다저스'가 이기느냐가 '월드'나 '세계'를좌우하지는 않는다. 물론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미국을 빼놓곤 많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것을 확대하거나 변형한 歐美 중심주의가 의외로 많고 의외롭게 우리들 사이에도 흔하다. 그예를 지금 한창 세계의 관심거리인 '고르바초프 현상'에대한 반응 같은 데서 찾아도 좋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반응의 한가지 공통점을 '에니그마'라고 했던 사하로프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수수께끼를 대하는 당혹감' 이라고 해도 어림없는 일은 아니다. 사실, 고르비와 미,소냉전의 도식이나 歐美 중심적인 언어로 해석하려 할 때 이해를 가로막는 수수께끼의 요소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은 거의 누구에게나 뻔하다. 그동안의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실질적인 붕괴, 소련이나 그 공산당 자체의 분열위기 따위, 꼭 제풀에 일부러 먹는 '자살 골' 같은 현상은 그런 바탕 위에서 수수께끼가 아니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러나 소위 '고르비 혁명'이란 것의 큰 동기의 하나가 상식화되어온 것과는 다른 데에 있다고 가상해본다. 이를테면인류의 앞으로의 역사를 결정하는 진정한 의미의 '월드컵 게임'에서의 승패가 이미 歐美 '플레이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 데 있다고 해보자. 또는 고르비 눈에 비친 도전의 위협이, 영국병 같은 것을 앓아온 '정치적인 西'이기보다는 무서운 활력에 찬 우리 같은 '지리적인 東'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는 데 있다고 해본다. 그러면 그에 관한 많은 수수께끼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가능성도 생각치 않는다. 그건 우리 속에도 도사리고 있는 歐美 중심적인 사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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