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국회, 벼랑으로
  • 이흥환,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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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죽었다”야권 배수진???민자, 타협 몸짓 보이지만 정면돌파 배제 못해

 장외투쟁인가, ‘一黨국회’로 가는가? 이도저도 아니면 13대 국회의 해체인가? 金泳三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표현대로, 13대 국회가 벼랑끝에 서있다. 한 야당 대변인은 “13대 국회는 죽었다”고 진단한다.

 여야 수뇌부의 판단 여하에 따라 13대 국회는 이제 그 존폐 여부가 결판날 상황에 이르러 있다.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3당합당 이후 정가의 최대 쟁점이었던 내각제개헌과 조기총선이 전면에 등장할 조짐이다.

 평민?민주 두 야당은 지난 150회 임시국회에서 巨與 민자당의 쟁점법안 날치기 처리에 반발,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함으로써 집권당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동반자살’까지 꾀하고 있어 정국은 이제 숨 막히는 파열국면에 빠져 있다.

 가을 정기국회에 이르는 올 하반기 정국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열쇠의 하나는 평민당 金大中총재가 쥐고 있다. 金正吉의원 등 4인과, 민주당 의원들을 대동한 李基澤총재가 한발 앞서 의원직 사퇴라는 카드를 내밀긴 했으나 김총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정국의 기상도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총재는 여권과 정면충돌하는 외길로 접어드느냐, 아니면 우회로를 택해 비켜가는 전략을 세우느냐,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평민당 69명 의원의 의원직사퇴서를 들고 있는 한 언젠가는 사퇴 카드를 내밀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가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김총재와 민주당 이총재는 18일 회동, 연대방안을 모색하는 등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의원직사퇴서의 일괄제출 시기는 대략 다음의 3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민주당측이 요구하는 20일을 넘겨 24~25일쯤 야권통합안 발표와 함께 곧장 제출해 정면대결을 선언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늦춰 여권의 내각제개헌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기국회 직전이나 회기중에 내각제개헌 반대라는 명분을 축적해 범야권을 결집시키는 방법, 또는 정기국회를 넘긴 후 일괄 제출하는 방법 등을 예상해볼 수 있다.

 

김대중총재의 선택, 폭이 좁다

 하지만 여권 수뇌부의 대응 전략에 따라 김총재의 행동양태는 바뀔 수도 있다. 우선 여권은 김총재의 사퇴서 일괄 제출 전에 먼저 정기국회에서의 지자제 논의를 제시, 평민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평민당이 사퇴서를  제출할 경우 여권이 사퇴서를 가지고 있다가 반려시키고 김총재는 지자제를 협의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려에 응하는 협상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총재의 이 협상전략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지자제를 받아들인다 해도 국군조직법?방송법?광주보상법 등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자칫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광주지역 출신 의원들의 동요도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주목되는 점은 언제까지 김총재가 의원직사퇴서를 가지고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평민당내에서는 趙尹衡국회부의장을 비롯해 야권통합파 5~6명 의원들의 개별행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야권통합파의 한 의원은 “김총재가 사퇴서를 호주머니에 넣고 시간을 끌수록 통합파는 더 불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평민당 李海瓚의원을 포함한 4인의 사퇴선언은 일차적으로는 민자당을 겨냥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야권통합과 관련해 평민 ? 민주 양당 지도부에게 철퇴를 내리친 것이나 다름없다.

 이기택총재가 즉각 사퇴의사를 밝히고 나온 것에 대해 4인의원측에서는 “예상외로 빠른 반응”이라고 평가하면서, 김총재도 빠른시일 안에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평민당내의 야권통합파가 당론과는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의원직사퇴서를 제출했을 경우 야권통합에 결정적인 촉진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 4인의원의 관측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이제 김총재는 의원직사퇴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김총재로서도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다”라고 못 박으면서 김총재가 어설픈 방법을 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즉 민주당의 의원직사퇴에 단순하게 동조하거나 뒤따라가는 피동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총선 정국으로 돌입할 경우 평민 ? 민주 양당으로서는 통합이 안 되더라도 서로 지역적 기반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 등 일부지역에서의 잡음이 예상되긴 하지만 최소한 연합공천으로 야권통합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시점에서 평민당의 의원직 총사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평민당의 한 중진의원은 “의원직총사퇴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기가 좋지 않다. 당장 총사퇴를 할 경우 자칫 집권여당에 칼자루를 넘겨주게 되는 위험부담이 있다”고 신중론을 펴면서 사퇴서 제출시기를 정기국회 이후로 어림잡았다. 여권이 의원직사퇴서를 선별처리해 야권 내분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외투쟁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김총재가 의원직을 사퇴함으로써 원내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기상조론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한 당직자는 “가을까지 기다리는 동안 여권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제2의 공안정국으로 평민당을 옥죄면서 음해하려 들것이 뻔하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야당 의원들은 늦어도 내년 3월쯤에는 총선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가가 순식간에 야당 의원들의 의원직사퇴파동으로 돌변한 배경에는 야당내의 이런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 탓도 있다. 어차피 건너야 할 강이라면 여권에 떠밀려 물속에 들어가기보다는 한발 앞서 바지가랑이를 걷는 편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 야당 의원들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야권통합에 대한 재야의 압력도 만만치 않다. 임시국회의 파행 운영을 지켜본 이상 재야의 범민주 통합수권정당 촉구를 위한 추진회의(통추회의)에서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통합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며, 이른바 평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세력도 야권통합에 적극 나설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김대중총재의 선택의 폭과 시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민자당의 ‘어르기 전략’먹혀들지 의문

 김총재가 ‘정면충돌’전략을 택할 경우 정국은 순식간에 태풍권으로 진입하게 된다. 평민당의 의원직총사퇴는 곧 김총재의 ‘옥쇄’를 의미하며,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13대국회는 민자당만이 원내에 남는 一黨국회로 가게 된다.

 6공화국에 들어와 김총재는 盧대통령을 상대로 타협의 정국을 이끌어왔으나 번번이 역공을 당했다. 중간평가 유보에 협조했다가 공안정국으로 역습을 당했고, 지난해 12?15청와대 대타협의 결과로 그가 얻은 것은 3당합당이라는 ‘정치적 쿠데타’였다. 이런 과거 사례를 참고할 때 이번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가 강공책으로 ‘판’을 깰 것인지 아니면 또 한번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인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날치기 통과가 가져올 불리한 여론을 감안하면서도 힘에 의한 강공을 택한 민자당 지도부는 일단150회 임시국회가 불러일으킨 파란을 진정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16일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정기국회에서 지자제를 포함한 국가보안법 ? 안기부법 등에 대해 다시 논의하자”고 상설기구 설치를 제안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는 일단 지자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아 정기국회까지 시간을 벌면서 평민당의 강경대응을 완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민자당 지도부는 임시국회가 끝나면 곧 여름철 정치 休閑期를 맞는다는 계산으로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의원 전원이 의원직사퇴에 동참하는 등 13대 국회 해체론이 점차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이를 희석시킬 수 있는 묘수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에 의하면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인 경우에는 보궐선거를 실시하지 않을 수   있다.”따라서 사퇴서를 수리했을 경우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하는 것도 민자당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현재의 민자당 지지도로는 당선을 확신할 수 없고, 선거 과정에서 또 어떤 변수가 돌출, 민자당의 정국운영을 방해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민자당으로 하여금 민주당 의원들의 사퇴를 가볍게 처리하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이유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자당은 일단 사퇴서를 반려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대표도 기자회견에서 “헌법에 보장돼 있는 임기가 있으니 사표제출은 받아들이지 않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 폐회중에는 국회의장이 사퇴에 관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사태가 호전될 때까지 시간을 벌면서 입장을 유보하자는 전략이다.

 평민당 69석과 민주당 8석을 합한 77명의 의원이 국회에 등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국회는 민자당 단독의 一黨국회가 되고 말므로 국민적 비난은 감당하기 힘든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럴 경우 2백18석의 거대여당도 국회를 정상적으로 가동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또한 남은 임기를 원만하게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민자. “조기총선 땐 과반수도 낙관 못한다”

 따라서 민자당 또한 몇가지 선택을 앞에 놓고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물리력을 앞세운 정면돌파냐, 아니면 야권을 다시 국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협상이냐, 양자택일의 기로가 남은 셈이다.

 민자당으로서는 조기총선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이다. 민자당 중진 ㄴ의원은 “현상황에서 14대 총선을 치른다면 민자당이 과반수를 조금 상회하는 의석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민정계 중진 ㄱ의원은 “과반수도 낙관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민자당내 민주계 의원들은 “현재처럼 어정쩡한 민주계 이미지로는 다음 선거에 나서기가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총선 공포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김대표가 조기총선론을 받아들일 리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김대표는 16일 “조기총선은 있을 수 없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렇다면 민자당은 야당과의 타협만을 남겨놓은 셈인데 이 경우는 야당에 안겨줄 ‘선물보따리’가 문제가 된다. 평민당과 타협의 가능성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선물은 역시 지자제의 조속한 실시뿐이라는 점에서 對평민당카드는 그만큼 제한적이다. 이와 관련, 민자당의 한 고위층 인사는 “평민당과의 막후 절충을 통해 국회가 민자당 단독으로 운영되는 사태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평민당과의 막후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에서의 날치기 통과를 단순한 ‘스타일 구기기’정도로만 생각하는 여당 의원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민자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운 정면돌파 쪽을 택할 여지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제2의 공안정국이 우려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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