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군축시대 먼동이 튼다
  • 표완일 국제부장 ()
  • 승인 1990.07.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對北 자세 유연해져, 북한 시각도 실질적으로 변해

 남,북한문제가 급속하게 돌아가는 듯 하다. 45년간 굳게 잠긴 문을 열 열쇠가 곧 손에 잡힐 것 같기도 하고, 공연히 소리만 요란하고 실속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가 일기도 하는 게 요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느낌이다.

 남?북관계에 뭔가 획기적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7월3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제7차예비회담의 결과였다. 이날 양측은 마지막 쟁점으로 남아 있던 본회담의 의제 표기순서에 합의함으로써 남북총리회담 개최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총리회담의 성사는 서울을 방문하는 延亨?북한총리의 盧泰愚대통령 면담과 그 후 평양을 방문하게 될 姜英勳총리의 金日成주석 면담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남북한 최고 위급회담인 盧?金회동의 전주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이같은 남?북관계 진전에 맞춰 흘러나온 서울-평양간 항공 직항로 활용 논의와 우리 정부의 최신판 북한지도 발행계획 발표 등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북한은 또 7월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위원장 許○) 성명을 통해 판문점 개방계획을 발표하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조평통의 성명은 그것의 선전성은 제쳐두더라도 적지 않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북한측의 일방적 선언에 대해 우리 정부는 그 전략적 의도에 유의하면서도 판문점의 남쪽지역도 개방하여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소나 휴전선 평화시 건설에 이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개 속에서 최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 남?북한 군축논의이다. 이 문제는 다가오는 남북총리회담의 핵심적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남 북 군축논의는 국제적 관심사

 88년 11월8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포괄적인 평화보장대책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군축방안을 제시한 바 있는 북한은 한?소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지난 5월31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을 발표했다. 이 제안은 그동안 우리측에서 주장해온 신뢰구축 조치와 관련된 내용을 일부 포함하는 등 신축성을 보이고 있어 남?북한 군축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주었다.

 이후 남?북한 군축논의는 국내에서 뿐 아니라 미?일 등에서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정부에서는 안보정책실무대책단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군비통제 방안’을 마련했으며 민간차원의 군축관련 세미나가 몇 차례 서울에서 열렸다. 일본 도쿄에서는 6월8일 환태평양문제연구소 주최의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려 서울대 河英善교수가 한국의 군축구상을 발표했으며 한?일?중?소 학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한반도 군축논의에 관한 한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의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6월21일 워싱턴의 진보적 성향의 민간정책연구기관인 케이토연구소는 한?미관계를 주제로 국제 학술세미나를 열고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관계의 근본적 재검토에 관해 토론했다.

 한반도 군축에 관한 한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행사는 7월5일부터 3일간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관한 학술회의’였다. 스탠포드대학의 국제안보?군비통제연구소(소장 존 루이스)가 주최한 이 회의는 비록 형식은 남?북한과 미국의 학자가 참석한 국제학술회의였으나 남?북한 학자들이 각각 양측 정부와 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남?북한 군축회의나 다름없었다. 당초 참석키로 돼 있던 북한측의 평화군축연구소 催鎭부소장이 외교부 국장 자격으로 판문점의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에 참석한 것은 이같은 사정을 잘 설명해준다. 이 회의에서는 북한측이 이미 5월31일 발표된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 내용상 새로운 진전은 없었으나 남?북이 각기 자신의 군축안을 가지고 마주앉아 대화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남?북한 군축논의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남?북한 군축논의가 활발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세계적 탈냉전?데탕트 조류, 한?소관계 진전 등 대내외적 여건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요인은 남?북한 스스로가 도도하게 밀려오는 새로운 국제조류를 타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각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우리측의 대북 자세는 전반적으로 수용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북측의 태도 역시 신축성을 보이기 시작한 데서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북한의 정부?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이 7월4일 연합성명을 통해 “국가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는 남북 양측의 사회제도 우열을 구분, 실력 비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한쪽의 제도 등을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밝힌 것은 북한의 대남 시각이 실질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엔 군축局은 7월말부터 4개월간 실시되는 연례 유엔군축훈련 과정에 처음으로 남?북한 군축관계 실무자를 각 1명씩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이 구체적 관심을 가질 만큼 한반도 군축문제는 이미 국제적 관심사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