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는 고르비 안믿는다
  • 모스크바 . 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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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지지 <모스크바 뉴스> 여론조사 결과 정부 신뢰도 크게 떨어져

요즘 모스크바의 분위기는 대단히 어수선하다. 생필품의 부족 현상이 계속돼 시민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이 말뿐이라며 불만에 가득 차 있을 뿐만아니라 공산당 만능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보수파의 목소리가 제28차 공산당대회에서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낮 기온은 섭씨 30도 내외. 7월의 모스크바로서는 이상 기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위도 잊고 열심히 줄을 선다. 술을 사기 위해, 과일을 사기 위해, 신문 매점 앞에, 식당 앞에 어디고 늘어선다. 호텔의 서비스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너무 많다. 국제전화나 팩시밀리는 차라리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편할 정도로 불통이다.

 개혁지지 논조를 펴온 주간신문 <모스크바뉴스> 7월15일~21일자에 실린 여론 조사에 의하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와 경제정책에 대한 여론은 4월부터 한달 사이에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리라고 보느냐는 설문에 대해 긍정적 반응이 4월에는 14%에서 5월에는 8%로 줄었으며, “실패보다 성공가능성이 크다”도 18%에서 10%로 줄었다. “성공보다 실패가능성이 크다 ”는 29%에서 35%로 늘었으며, 부정적인 답도 19%에서 35%로 껑충 뛰었다.

 현 집권 지도부를 어느정도 믿는냐는 물음에 대해 “완전히 믿는다”가 4월에 14%이던 것이 5월에 6%로 떨어졌고, “대체로”는 44%에서 33%로 줄었다. 반면에 “전혀 안믿는다”는 30%에서 46%로 뛰었다. 정부의 퇴진을 지지하느냐에 대해서는 찬성 46%, 반대 22%로 갈라졌다.

 반면, 개혁파 지도자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최고인민회의의 의장으로 선출된 것을 지지하는 여론은 84%로 나타났다.

 

줄어든 당의 영향력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은 아무데도 없다. 보수파조차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하자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투철한 공산당원 없이는 안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보수파는 복수정당제의 도입, 시장경제 도입을 위한 개인재산 인정 등 70년간의 공산당 독재정치의 전통에 위배되는 개혁조치를 모조리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개혁에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또 대외정책에 있어 “서독에 의한 동독 흡수”를 허용하고 동유럽의 민주화를 묵임함으로써 동유럽을 서방측에 넘겨준 것은 잘못이라고도 역설했다.

 당대회에서 . 보수파와 개혁파간에 격론이 벌어지자 보수파를 등에 업은 쿠데타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개혁파측에서 쿠데타를 경계하자고 나서자 군은 상하를 막론하고 정부 노선을 충실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말이 군부쪽 대변인 입에서 나오기까지 했다.

 시사주간《노보에 브레미야》(새 시대)의 편집부국장 블라디미르 쿨리스티코프씨는 공산당의 역할이 이미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당내 보수파의 영향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소련 공산당의 과오를 나치의 죄악에 빗대

 7월초 당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이대로는 살 수 없다>라는 영화가 모스크바에서 상영되었다. 소련 공산당의 과오를 나치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뉘른베르크 재판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이 영화를 보면서 관중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이제는 레닌에 대한 공공연한 비난도 흔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공산주의의주가가 떨어져버렸으며, 이러한 모스크바의 ‘反共 기류’는 아마 “서울에 비하면 약할지 모르나 미국보다는 강할 것”이라는 게 쿨리스티코프씨의 평가이다.

 5년 전 같으면 당대회의 결정은 그대로 ‘명령’이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하나의 ‘선언’에 그치며, 영향은 줄 수 있되 구속력은 없어졌기 때문에 정치?경제 문제에 결정적인 변혁을 가져올 수는 없게 되었다고 그는 해석한다.

 당대회 대의원선거에서는 보수파가 크게 득세했는데, 대의원 중 43%가 당료파와 정부 관리였다. 당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민주강령파에 속해 있는 사람은 총 4천7백명 대의원 중 1백4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치 개혁안이 채택되지 않아도 공산당엔 남겠다는 사람들 중에 상당한 동조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대회를 계기로 개혁파 인사들의 견해도 미니 인터뷰 등을 통해 신문에 많이 소개되었다. 그중 스비야토슬라프 표도르프라는 안과의사의 말은 소련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정책 초안 문서를 읽으면 사회민주당을 연상케됩니다. 그렇다면, 이름도 바꾸는 것이 어떨지요. 만약 私有는 毒이며 사회적인 것은 훌륭하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중추적 교리에서 이탈할 수 있다면, 만사 해결입니다. 우리는 이 도그마에 의해 너무 오랫동안 세뇌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서는 새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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