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교육’강조하는 20세기 지성
  • 김경동 (서울대교수 사회학) ()
  • 승인 1990.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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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종언≫ 저자 다니엘 벨 박사의 사상 편력

 “나는 경제에서는 사회주의, 정치에서는 자유주의, 그리고 문화에서는 보수주의를 믿습니다. 그래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나를 친구로 받아주는 이가 별로 없어요.” 이념적인 지향으로 말한다면, 회색분자의 기회주의적 발상으로 매도나당하지 않으면 천만다행일 이런 말을 다니엘 벨(71)은 서슴없이 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저술한 학자다운 자세다.

 그 책은 1960년에 처음 출판되었지만 88년에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재판을 냈다. 그리고 우리는 89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서 일어나 이데올로기의 대혁명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치 30년 전 벨의 예언이 적중한 사건인양 보이지만, 정작 장본인 벨은 “사회과학에서 예측이란 있을 수 없다”고 덤덤한 반응이다. 사회학자들 중에서 미래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 가장 앞장선 인물의 하나이며 ≪후기산업사회의 도래≫를 지은 벨이지만, 그에게 미래란 예측의 대상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진행하고 있는 변동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변화의 요인, 세력 및 기제들을 면밀하게 가려냄으로써, 그로 말미암아 생성되는 사회의 모습을 조직적으로 상정해보는 일을 충실히 할 때 우리 앞에 떠오르는 구성물일 따름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인간의 결정행위에 의한 선택이 깃든다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방한한 벨 교수가 중점적으로 다른 ‘제3의 기술혁명과 그에 따른 사회 경제적 변동의 성격’도 이와 같은 문맥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 제3의 기술혁명은 주로 컴퓨터와 전기통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이러한 기술의 혁신과 변화가 일어나면 저절로 일정한 사회변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결정론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기술이란 어디가지나 사회변동이 잠재적 가능성과 수단을 제공하는 것일 따름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선택이다.

 게다가 이 후기산업사회를 특징짓는 결정적인 변화는 인간이 창출하고 다루는 지식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이제는 단순히 새로운 재화를 생산하는 데 유용한 ‘기술적 지식’보다도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이론적 지식’이 핵심적인 중요성을 띠게 된다.

 그러므로 미래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무한한 유연성을 장려하는 교육이 혁신의 관견이 된다. 이런 교육은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정보화시대에는 특히 컴퓨터와 친해지는 교육이 요긴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식주입식 또는 입시 위주의 교육은 이런 관점에서 완전히 낙제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1학년때 컴퓨터 사용법에 익숙해지지 못하면 반드시 특별강습을 받아서라도 기초를 닦아야 진급할 수 있도록 필수과목으로 삼았다고 하며, 교수들에게는 대학에서 무조건 컴퓨터 1대씩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특히 대학원교육을 강화하고 ‘연구 개발’(R&D)에 집중투자를 해서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점을 그는 되풀이 강조한다.

 

정보화시대엔 컴퓨터 교육이 필수

 다니엘 벨은 청년시절의 사회주의자답게, 그리고 후일 마르크스주의에 실망한 지성인답게, 결국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매료하는 시대는 지나가기 마련임을 확언하면서도, 그에 필요한 전제조건을 잊지 않는다. 첫째, 경제가 계속 성장해야 하는데, 공산권에서는 우선 여기에 실패했다. 둘째, 민주화는 반드시 이루어녀야 하는데, 이점에서도 동유럽의 혁명은 설명된다. 그리고 셋째는, 자원의 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주의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바로 이것인데, 사람들은 사회적 가치의 향유에서 배제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 세가지 요건이 갖추어지면, 이데올로기의 미력은 사라질 수 있다. 기술의 혁신은 이와 같은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데 매우 요긴한 수단을 제공한다.

 젊어서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하였고, 20년 가까이 신문기자?잡지편집인 등 언론인으로도 활약하였으며, 지난해 은퇴할 때까지는 하버드대학 헨리 포드 II세 석좌교수직을 지내다가, 지금은 미국 인문과학학술원 상주학자로 계속 학문의 길에 정진하고 있는 다니엘 벨은, 사회학자이면서도, 역사에 대한 깊은 조예는 물론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의 원리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당대의 드문 학자이다. 자기 말대로 누가 “당신은 전문분야가 뭐요”라고 물으면, “나의 전문은 일반지식”이라고 대답할 만큼, 어쩌면 ‘멸종하는 종족’에 해당하는 20세기 마지막의 대표적 지성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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