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
  • 박준웅 부장 ()
  • 승인 1994.08.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 특별 회견/"9월 이후 클린턴 주선으로"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은 한반도 문제에 관해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사람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뛰어난 판단과 분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월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 무렵 미국에 날아가 미국 조야의 매파 인사는 물론 미국민을 설득했다는 얘기나, 카터 전대통령으로 하여금 평양을 방문토록 촉진했다는 얘기는 정치의 길을 떠나 학술 연구 단체의 책임자로 변신한 후의 활동 내용을 전해준다. 미.북한 고위급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극적인 타협을 이루자 한 외국인 전문가가 제네바에서 김이사장의 분석과 예측이 92% 맞았다고 전화를 걸어왔다는 뒷 얘기도 들린다. 김이사장으로부터 앞으로 예상되는 한반도 주변 정세의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편집자>

앞으로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변화 할 것 같습니까? 미국과 북한이 수교로까지 가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일본과도 수교할 것이 예상되고. 그러면 북한이 본격적으로 국제 무대에 진입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한반도를 둘러싼 두 개의 큰 물줄기가 있는데 하나는 평화이고 또 하나는 통일이예요. 그것은 거역할 수 없어요. 이번 미. 북한 회담의 성과로써 냉전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이는 동북아 전반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이번 회담의 의의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한반도는 평화와 통일의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냉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 누구도 한반도에서 대립이 계속되거나 전쟁이 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이제부터는 남북한 합쳐서 6자 협력 시대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안보 문제에서도 6자 간에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제'같은 것이 성립될 수 있어요. 아시아.태평양 시대가 오면 동북아가 그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일본.유럽 여러 나라들이 북한에 접근하려 경쟁하고 있어요. 우리가 이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이번 미.북한 고위급 회담의 결과가 김정일 정권의 첫 작품인데, 과거 공산당 정권처럼 억지를 쓰는 게 아니라 상당히 합리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보였어요. 김정일이 국제 무대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등장했다고 봐야 돼요. 아무튼 집권 한 달만에 핵문제뿐 아니라 50년에 걸친 미.북한간의 적대 관계를 일거에 해결할 길을 연 것은 미국과 북한이 이룩한 큰 성과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래도 단기적으로 북한이 미국하고만 상대하려 들고, 또 최근 국내에 조성되고 있는 대북 강성 기류를 감안한다면 남북 정상회담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지 않습니까.
북한은 최근 한국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 사후 우리의 대응 태세나 공안정국 조성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우리 태도가 미국과 북한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고 한국과 미국 사이를 어색하게 하고 있으며, 남북대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큰 국면에서 보면 이러한 것은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북한이 한국을 제쳐두고 끝까지 미국과 가까워질 수도 없고, 미국도 그런 정책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도 그렇게 만만한 존재는 아닙니다. 크게 보면 정상회담도 열리고 남북 협력 시대도 올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대북정책입니다. 그리고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얼마만큼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빨리 능동적.적극적으로 자세를 전환해야 합니다. 북한을 둘러싸고 미.일.중.유럽 심지어 대만까지 경쟁적으로 북한에 접근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의 투자 가치는 상당히 높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경쟁 국면에서 주도권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북한은 개방시대로 들어가고 있으며, 과거와 같은 적대적 대결과 쇄국주의적 시대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민족을 위해서나 국익을 위해서나 잘 활용해야 합니다.

정부는 한. 미 공조가 잘 유지된다고 장담하고있지만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서 우리가 소외되고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대북. 통일 문제를 다루는 우리 외교에 잘못은 없습니까? 고쳐야 할 점을 무엇입니까?
한.미간에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반도 문제를 보는 시각과 발상은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제 냉전 시대는 끝나게 되었다는 인식입니다. 미국측이 볼 때 핵 문제가 해결되고 외교와 경협이 진행되면 이제 북한은 백% 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북한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한국 못지 않게 챙길 수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보아서 북한과의 관계 발전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지금 기승을 부리는 공안 세력, 통일을 거부하는 일부 기득권 세력, 그리고 언론의 일방적이고 과도한 선동 행위는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는 물론 당면한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거기다 일부 과격 좌경 세력은 반통일적 공안 세력에게 절호의 빌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합니다.

철학과 비전 문제는 궁극적으로 봐서 대통령에게 철학이나 비전이 없다, 그래서 일관된 통일 기조도 형성해 나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말로 연결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당시 철학과 비전을 겸비한 통일 정책을 내놓아 국민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같이 약간 퇴색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북한 핵 문제이고 하나는 보좌진의 협조가 잘 안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북한 핵 문제도 해결되어가고 있으니 이 문제도 다시 잘되기를 바랍니다.

김정일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세계에서 김정일만큼 후계자로서 그렇게 긴 시간 정권의 모든 분야를 철저히 훈련 받은 사람은 없어요. 이러한 과정에서 당.군.정을 모두 장악했습니다. 일단은 김정일체제에 조금도 동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앞으로 2~3년이 김정일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그가 김일성의 카리스마적 후광 없이 단독으로 설 수 있느냐,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족벌문제, 보수와 혁신, 혁명 1.2세대 간의 문제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특히 군부를 잘 통솔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둘째, 북한에서 가장 급한 문제는 백성들의 배고픔입니다. 이것을 해결해서 김정일이 김일성보다 생활을 낫게 이끌어준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의 정권에 위기가 올 것입니다. 셋째는 그 사람의 건강입니다. 작은 키에 과도한 체중이 문제입니다. 전문가들도 김정일에게 여러 가지 성인병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김정일의 외교 노선은 어떤 방향이 될까요?
대미 외교 최우선으로 갈 것입니다. 그가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로 하는 것은 국제적 고립을 면하는 일과 경제 협력, 그리고 핵공격으로부터의 안전 보장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해결책을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중국도 일본도 아닙니다. 김정일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과 협력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대미 관계 개선을 열망하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반미 따위는 생각도 못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주사파 학생들이 반미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데, 그 주사파 사람들이 지지하는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친미하려 한다 이겁니다. 또 미군이 그래도 있어도 좋다는 것이 북한 정권의 생각입니다. 주사파 사람들은 이를 직시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배상금 지원과 미국 등 서방 기업들의 경제 진출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경제 회생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북한의 발전 잠재력을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 경제는 대미 관계 개선이나 외부 지원이 없어도 그리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대외 의존도는 11~12%밖에 안돼요. 이 정도는 중국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특히 한국과 급속히 벌어지는 격차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또 일본으로부터 배상금 40억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조총련에서도 40억~50억달러를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미.북한 관계가 잘 해결될 때만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아무튼 북한의 이번 미.북한 핵회담 성공을 계기로 서방과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면 그 전망은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70~80년대의 한국같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강점은 고도로 훈련된 인력과 값싼 임금입니다. 북한은 기회만 오면 큰 추진력을 갖고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과 경제 협력을 하면 절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인 시혜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의 두통거리인 사양 산업, 즉 섬유.피복.신발.완구 등을 북한에 가져가서 북한의 노동력과 결부시키면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매년 수백억 달러씩 수출을 늘릴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북한의 지하자원과 관광자원에도 합작투자를 하면 양측이 다 잘되고 덕을 볼 것입니다.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돈벌이를 하다 보면 서로 친해집니다. 적대감과 강경으로부터 협력과 온건으로 기울게 됩니다.

상호 사찰을 통해 북한 핵의 과거 문제가 투명해져야 하는 것이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입니다. 북한은 이에 대해 상호 사찰은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특별 사찰을 해서 과거 문제를 분명히해야 합니다. 이것이 분명히 되지 않으면 미국 내에서는 물론 한국이나 일본도 승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 북한은 앞으로 미국의 신뢰성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공정성에 믿음만 간다면 해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북한이 이 문제 때문에 모처럼 잘된 회담 성과를 망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지난번 미국에 가서 북한에 핵무기가2~3개 있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발언해서 물의가 일지 않았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한 일이 없습니다. 출처로 되어 있는 <워싱턴 타임스>기사의 어디에도 그런 말이 없습니다. 녹음이 되어 있는데 물론 거기에도 그런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당시 일부 언론의 오보와 정부의 의도적인 작용 때문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저는 그 대담에서 북한에 대해서는 핵을 보유할 어떠한 가능성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지적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저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 속에 북한이 핵을 2~3개 가져도 좋다는 말이 없다는 것은 그 후 국회 토론회에서 정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해야 합니까. 적입니까, 동반자입니까?
민족으로서는 동반자이지만 사상적으로는 적입니다. 전부 통틀어 하나로 단순화해서는 안됩니다. 북한은 민족으로서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 되지만 사상적으로는 대립과 경계의 적대적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 통일이 되기까지 북한이 자기 체제를 강요하고 우리 체제를 뒤집으려 하지 않는다면 동족의 처지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교류 협력해서 상호 공동 이익을 추구하면서 장차의 통일에 대비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경계는 해야겠지만, 저는 북한이 91년 남북합의서 체결을 계기로 한국과 공존할 방안을 세웠다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그런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계에서 공산주의는 끝났습니다. 소련에서는 이미 끝났고, 중국에서도 시장경제의 방향으로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모택동 시대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북한 하나만이 남았는데, 그들도 시장경제 쪽으로 개방을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사실 북한에게는 개방에 대한 법률.법령만도 합영법을 포함해 22개에 이릅니다. 이 중 16개가 지난 22년 동안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주도한 게 김정일이지요. 지금 북한은 개방을 서둘러 나진.선봉뿐 아니라 청진항도 개방했고, 원산.금강산 개발 계획과 서해안의 남포와 신의주 개발 계획 등을 세워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연내에 미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셨는데 그의 사망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김정일이 미국으로 가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있을까요?
오는 9월에 있을 미.북한 회담에서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때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도 함께 초청해, 지난번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아라파트 의장의 회담을 주선한 것처럼 남북한 영수들과 같이 한반도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상호 협력을 위한 역사적인 3자 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미국 등 주변 4대국의 협력을 얻어 남북이 화해와 협력 속에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는 것은 냉전 이후 세계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역사적 소명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큰 무리 없이 실현될 단계에 왔습니다. 그것은 미.북한 회담 성공이 결정적 계기를 만들고 잇지만, 이러한 화해와 협력이 양측의 현실적 이익과도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朴俊雄 부장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