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心, 盧心 꿰뚫었을까
  •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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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朴 연대 제3후보 옹립설 … 기득권 세력 “두김씨엔 안준다”와 상통
 朴泰俊씨의 이른다 ‘鐵心’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 돌려 박씨가 최근 반복해서 말한 바 있는 “정치에 대한 환멸과 역부족”에 주의해보면 그의 심경의 일단을 알 수 있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란 그가 옛 민정당 대표위원으로 임명되고 본격적인 정치인 역할을 시작할 때부터 최근까지 기존 정치권의 갖은 사람에게서 온갖 종류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는 90년 1월5일 민정당 대표에 임명된 그날부터 정치권의 권모술수에 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가 민정당 대표가 되어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것은 그가 유럽과 미국을 여행중일 때였다. 정계재편과 관련한 朴浚圭 전 대표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공석이 된 대표 자리에 앉힐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 고심하던 청와대는, 전국구 의원이면서도 정치권 복판에서는 물러나 있던 박태준씨에게 반강제적으로 자리를 떠맡겼다. 이렇게 해서 박씨는 1월5일 대표에 임명되었고 6월 당직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총장과 총무는 李春九·李漢東 의원이 각각 맡고 있었는데, 박대표가 구상한 개편안은 총장은 유임시키고 총무에는 金潤煥 의원을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구상을 들고 노대통령에게 보고하러 가던 박대표는 차안에서 총장과 총무에 朴俊炳·鄭東星 의원이 유력하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는 이 뉴스를 들으면서 기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추측 보도를 한다고 내심 냉소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노대통령을 만난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뉴스에서 들은 대로 이미 총장과 총무가 내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앞으로 당하게 될 수많은 배신의 시작일 따름이었다.

 나중에야 밝혀진 내용이지만 박대표 체제는 결국 3당 통합을 앞둔 과도체제에 불과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박대표를 명실상부한 민정당 대표라기보다 3당 통합을 한 다음의 단순한 민정계 관리자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속사정이야 어쨌든 박대표는 대표로 임명되던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민자당 최고위원을 맡게 되었다. 그것도 金永三·金種必의 다음 서열이었다.

 통합 민자당 최고위원으로 있는 동안 내각제 각서 파동 등을 겪으면서 그가 김영삼 총재에게 느낀 반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측근들에게 말하는 김총재는 △약속을 번번이 어기는 신의없는 사람 △경제지식 부족 등 자질이 없는 사람 △야당 식의 ‘어거지부리기’를 능사로 아는 사람 등, 한마디로 생리도 정서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영삼 대표에서 김영삼 총재로 바뀌는 동안 그는 민정계 관리자로서의 역할에도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대통령후보 경선 이전 김윤환 총장은 그에게 당무보고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상당수 민정계 의원들이 그보다는 김총장 밑으로 몰려가는 형국이었다. 노대통령의 9·18 탈당 조처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이춘구 의원 밑으로 민정계 의원들이 몰려갔다. 김윤환 의원 계보가 60명이라 하고, 이춘구 의원 계보가 30명이라 하니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빈 껍데기 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춘구 의원이 3일 전에 미리 노대통령으로부터 탈당 사실을 귀띔받았는데도 그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런 배신감은 지난 총선 때에도, 대통령후보 경선 때에도 있었다. 총선 당시 노대통령은 그에게 민정계 관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줄 것을 당부했고, 그는 모든 민정계 후보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포함한 물심 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결과 그에게 돌아온 것은 민정계 의원들의 등돌림밖에 없었다. 경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처음 확인한 ‘노심’은 완전 자유경선이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깨달은 ‘노심’은 김영삼 대표를 후보로 확정하기 위한 제한경선이었다.

 이런 정황으로만 보면 그는 노대통령이나 김총재 두사람 모두에게 심한 배반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의 민자당 탈당도 결국 이런 정치적 환멸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기만 할까. 현재 야권에서 제기하는 의문에 따르면 ‘철심’과 ‘노심’은 긴밀한 연대 아래 제3후보 옹립을 통한 정국의 대전환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3공부터 이어져온 기득권 세력이 결코 두김씨에게 현 기득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음모설’의 핵심 줄거리이다. 박씨가 신당으로 가느냐, 아니면 정계 은퇴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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