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태풍, 反양김 ‘통일전선’ 촉발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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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신봉자로 알려진 박씨는 양김씨를 “대중 영합성 정치가”로 분류한다. 그는 양김구도를 혁파해야 지역감정과 계층적 위화감이 없어진다고 주장해왔다.



 ‘10월 대변란’은 박태준으로부터 촉발되는가. ‘TJ 鐵心’이 A급 태풍의 위력으로 정치권에 다가가고 있다. 박태준 전 최고위원의 탈당은 민자당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노태우 대통령의 민자당 탈당으로 대선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했던 김영삼 총재는 박씨의 최고위원직 사퇴와 탈당으로 대권 시나리오를 또다시 써야 할 형편이다. 상대적으로는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고 하나 민주당 김대중 대표도 꼭 웃을 일만은 아니다. 박씨의 탈당은 반양김 연합전선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대선구도의 개편과 파란을 예고하는 것이며, 어느 당 후보도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거 양상이 혼미해짐을 뜻한다.

김우중 “박위원 성원할 뜻 있다”

 박 전 최고위원의 행보는 무엇일까. 김영삼 총재는 지난 10일 전남 광양에서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4시간 가까운 회동이 무위로 끝나자 “박 최고위원이 경제에 전념하겠다고 했다”며 그의 정계 은퇴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박 전최고위원 측근들은 그의 정계은퇴를 강력하게 부인한다. 김총재의 말은 어느 정도 자신의 희망사항을 담은 것 같다. 정치 관측통들은 박 전최고위원이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정치에서 손을 떼기는 어려우리라고 본다.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대선구도의 변혁에 그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신당 창당을 주도하는 이종찬 의원 진영은 박 전최고위원의 탈당으로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신당 추진 세력측은 이달 초순 창당을 선언하고 발기인 대회를 열기로 했었으나 “상황의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창당 일정을 늦췄다. 이의원은 이미 “10월 중 민자당의 한 거물급 인사가 탈당해 신당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의원과 함께 새정치국민연합을 이끄는 이영일 본부장은 “우리로서는 박 전최고위원 본인의 국민후보 수락 여부가 걱정일 뿐이다. 그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그를 신당 대통령후보로 추대할 가능성이 있음을 비쳤다.

 박 전최고위원의 탈당 전 행보를 살펴보면 정치권에서의 향후 역할을 유추할 수 있다. 그가 9월29일, 지난 2일과 5일 국민당 정주영 대표와 만난 것이 확인됐다. 그는 지난 3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만났고, 5일 정호용 의원과 만났다. 또 그는 이종찬 박철언 김용환 장경우 의원 등과 수시로 접촉해왔다. 국민당 정대표와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제3후보를 옹립한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대표가 대통령후보를 양보하고, 국민당과 신당이 합쳐질 수 있음을 뜻한다.

박태준 “박대통령 외에 섬길 지도자 없다”

 박 전최고위원의 행보 중 주목할 만한 대목은 김우중 회장과의 회동이다. 김회장은 현재 정치권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환 의원이 주선한 이 회동에서 김회장은 자신은 심부름을 할 뿐 대통령후보로 나설 생각이 없으며, 박 전최고위원을 성원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고 한다. 오랫동안 김회장과 친분을 유지해온 김용환 의원은 힐튼호텔의 한 방을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신당 창당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한편 김의원의 활동을 김우중 회장 후보 추대 움직임과 관련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한 소식통은 박태준 전최고위원을 매개로 한 정주영 대표와 김우중 회장의 화해 움직임을 전한다. 최근까지 두사람은 ‘앙숙’ 관계로 알려졌다. 신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두사람이 한번 만났다고 주장한다. 신당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정·재계에 흩어져 있는 반양김 세력이 하나로 묶이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는 양김씨를 배척하는 범여권 세력 또는 기득권 수구세력의 결속을 의미하며, 그 중심에 박 전최고위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 전최고위원의 측근 ㅇ씨는 9월말에 그의 탈당 결심을 전했다. 박 전최고위원은 민자당을 탈당하기 위해 김영삼 총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각제 선거 공약화’ 카드를 내민 셈이다. 박 전최고위원은 철저한 내각제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양김씨를 “대중 영합성 정치가”로 분류하면서, 양김 구도를 혁파해야 지역감정과 계층적 위화감이 없어지고 온 국민의 일체감 속에서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부문이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 권력구조를 내각제로 바꿔야 하며, 돈 안쓰는 깨끗한 정치를 위해 중·대선거구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평소 측근들에게 “고 박정희 대통령 이외에 지지하고 섬길 정치 지도자가 없다”고 말해왔다. 그의 내각제 공약화 주장은 한발짝 나아가 양김씨 배제를 노린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신당은 추진하는 새정치국민연합의 ‘내각제 선거공약화’ 움직임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합측은 9월말부터 박 전최고위원의 행보에 맞춰 권력구조에 관한 의견을 조정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종찬 의원은 원래 대통령제를 선호했다. 그러나 한 신당 추진 인사는 “대통령병에 걸린 양김씨는 내각제 개헌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내세울 국민후보는 자기의 임기를 줄여서라도 헌정을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다”라고 말한다.

 박 전최고위원 탈당은 노대통령 의사와 관련이 있는가. 이 대목에 정치권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만약 관련이 있다면 노대통령의 마음은 김영삼 총재에게서 떠났다는 말이 된다. 김대중 대표의 핵심 측근에 따르면 김대표는 노대통령과 김영삼 총재의 결별을 확신한다고 한다. 일부 관측통들은 이같은 시각은 “민자당이 낙심할 정도”인 최근 개각 내용으로 뒷받침된다고 말한다. 말썽이 됐던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의 주무 장관인 송언종 체신부장관조차 교체하지 않아 김총재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 시각도 있다. 현실적으로 노대통령은 영남권을 벗어나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견해다.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처럼 ‘노심’은 결국 김총재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노대통령 탈당과 현승종 총리 기용에는 노재봉 전 총리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이 취한 일련의 조처를 보면 자신의 구상대로 정국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한 관측통은 말한다. 그러면 노대통령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신당 출현을 알게 모르게 지지하는 것인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노심’의 풍향계라 부르는 이춘구 의원의 행보를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노대통령 직계 의원 24명을 ‘수요회’라는 모임을 통해 관리한다. 노대통령의 퇴임 후 보장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수요회는 ‘9·18 선언’으로 존재 의미가 불분명해졌다. 집권당 탈당과 중립내각 구성으로 노대통령의 퇴임 이후는 각당과 여론에 의해 집단보장 형태로 보장받게 됐기 때문이다. 수요회 내부에서도 ‘노심’이 반김영삼이냐, 아니면 관권선거 추방이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춘구 의원의 경우 박 전최고위원을 설득하기 위해 이한동·박준병 의원 등과 함께 포항에 내려간 사실로 볼 때 이미 김총재 지지로 마음을 확정했다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 비서관들도 ‘노심’을 모른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으로선 노대통령 외에 아무도 그의 본심을 헤아리기 어렵다. 노대통령이 상황을 관망중이며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노대통령 자신도 ‘노심’을 모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이 박 전최고위원의 탈당을 방관했을지언정 부추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관측통은 노대통령이 신당을 지지한다면 지금 서먹한 관계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자연스럽게 화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전 전대통령측은 완전 중립적인 입장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5공 세력의 본류라 할 수 있는 허문도씨와 장세동씨가 신당 창당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점은 전씨가 신당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박 전최고위원의 탈당으로 민자당 비주류 의원들은 심하게 동요하고 있고, 김영삼 총재는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김총재의 한 측근은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수성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위기감을 실토했다. 박철언 김용환 이자헌 장 경우 의원은 이미 탈당 결심을 굳혔고, 경선 때 이종찬 의원 진영에 섰던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망파의 수가 늘고 있다. 신당 추진측에 따르면 김복동 의원도 박 전최고위원의 행보에 따라 거취를 결정할 것임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강삼재 의원은 탈당 의원이 4~5명 선에서 끝나고, 당내 동요는 별 문제없이 수습되리라고 내다봤다. ”김총재는 수많은 위기를 돌파하면서 성장해왔다. 민자당이 이전의 막연한 낙관론에서 벗어나 어려운 현실을 절감하는 동시에 김총재의 확실한 색깔을 내보인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다."

김대표, 신당의 호남 공략 큰 부담

 한편 민주당 김대중 대표는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박 전최고위원의 탈당이 몰고올 파장이 클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일단 국면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보지만, 거세질 양김 배척의 물결에 휩쓸릴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은 신당의 호남 지역 침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동요가 심한 민자당 호남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김영삼 총재는 호남 지역에서의 득표를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정치인 박태준의 홀로서기는 가능할 것인가. 아직까지 그는 노대통령의 대리인으로서 정치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독자적인 정치 역량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셈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그가 대중성이 약한 점을 들어 득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박 전최고위원보다는 강영훈 전 총리가 더 유력한 신당의 ‘국민후보’로 거론된다. 박 전최고위원도 강 전총리를 추천했다고 한다.

 박 전최고위원의 앞으로 행보가 반양김 세력의 연대와 범여권의 결속을 촉발하는 뇌관이 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양김 구도를 깨지 못하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인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그의 진자 파괴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곧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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